[윤석만의 시선] ‘국립○○대’로 개명한다고 경쟁력 높아질까

윤석만 2023. 4. 17.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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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논설위원

얼마 전 교육부가 국립대 명칭 변경을 허가하는 ‘국립학교 설치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올 하반기부터 ‘국립○○대’란 명칭을 쓸 수 있게 한 것이다. 2021년 부경대와 안동대가 처음 이런 요구를 했고, 11개교가 동참하면서 이번 개정이 이뤄졌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방 국립대들이 학교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개명은 보통 일이 잘 안 풀릴 때 한다. 이름이라도 바꿔 운이 트이길 바라서다. 연예인처럼 남들에게 불리는 어감과 이미지가 중요해 가명을 쓰는 경우도 있다. 배우 인교진은 데뷔 후 3차례나 이름을 바꿨다. 하지만 그가 정작 전성기를 맞은 건 현재의 본명을 다시 쓰면서다. 이름이 안 중요하다고 할 순 없지만, 본질은 본인의 노력과 재능에 달려 있다.

「 고등교육 질 높여야 선진국 가능
OECD 최하위권 대학투자 늘려야
교육 패러다임 바꿀 ‘룬샷’ 필요

‘국립○○대’ 시행령 개정 소식을 듣고 허탈한 마음이 든 것도 그 때문이다. 인공지능(AI)과 에듀테크의 발전으로 대학 존립까지 위협받는 상황에서 교명을 변경하는데 2년씩이나 매달려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방의 한 사립대 교수는 “다 같이 ‘벚꽃 엔딩’인 상황에서 재정이 탄탄한 국립대일수록 본질적 개혁에 앞장서야지, 이름만 바꿔 사립대와 경쟁하겠다는 건 꼼수일 뿐”이라고 했다.

개명으로 사립대와의 비교우위에서 반짝 효과를 볼 순 있다. 그러나 이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대학 정원은 47만 명인데, 입학자원은 올해 42만 명에서 내년 37만 명으로 급감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43년 만 19세 인구는 23만 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진학률(44%)을 적용하면 신입생 수는 10만 명에 불과하다. 단적으로 20년 후엔 70~80%의 대학이 폐교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대학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문 닫을 대학은 하루빨리 퇴로를 열어주고, ‘살아남을’ 대학은 어떻게 혁신할지 로드맵을 짜야 한다. 폐교 도미노 앞에 발만 구르고 있을 게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대학 혁신을 서둘러야 한다. 레이 달리오의 ‘국가번영이론’처럼 지식과 기술을 팽창시켜 국가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은 바로 강한 교육력이기 때문이다(『변화하는 세계질서』).

번영을 위해선 산업화의 각 단계마다 그에 적합한 교육시스템이 준비돼 있어야 한다. 해방 직후 한국은 문맹률이 78%에 달했지만, 1949년 교육법 제정과 1959년 보편적 의무교육 시행으로 산업화의 기틀을 다졌다. 1967년 직업훈련법을 만들어 산업역군을 키웠고, 1970~80년대까지 공고·농고·상고의 전성시대로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다. 1990년대 이후 높은 대학진학률은 화이트칼라 직군을 두텁게 했다.

특히 초·중·고 교육에 집중투자해 세계 최고수준에 올랐다. 사교육을 뺀 중·고생 1인당 공교육비(1만4978달러)는 OECD 국가 중 2위다. 그러나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1만1290달러)는 최하위권이다. 미국(3만4036달러), 영국(2만9911달러) 등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선진국 중 대학생 공교육비가 초등학생(1만2535달러)보다 적은 유일한 나라다. 산업이 고도화할수록 고등교육 투자가 높아지는데 우리만 거꾸로다.

국제 학업성취도평가나 올림피아드대회 등에선 늘 최상위권인데 대학만 가면 수준이 떨어지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실제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2022년 대학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63개국 중 46위였다. IT와 반도체 등 산업은 최첨단을 향해 달려가지만 정작 대학은 과거의 체제와 관성적 매너리즘에 갇혀 시장에 필요한 인재를 못 키워내고 있다.

이제부터 대학개혁 논의는 ‘벚꽃 엔딩 너머’여야 한다. 고등교육 투자를 늘리되 AI·바이오 등 미래 산업의 근간에 맞춰 대학 교육의 틀을 싹 바꿔야 한다. ‘살아남을’ 대학엔 과감한 ‘룬샷’도 필요하다. 학문 간 벽을 허물고 전공을 통폐합해 선진국의 발전 단계에 맞는 대학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대표적으로 창의적 융합인재 양성이나 R&D 생태계 구축, N잡 시대의 평생교육 등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가장 우려되는 건 ‘인서울’ 사립대와 지방 국립대다. ‘벚꽃 엔딩’에 비껴 있다고 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립대는 정부가 재정을 계속 투입하는 한 문을 닫지 않는다. 하지만 정부 투자를 계속해도 대학이 분골쇄신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높일 수 없다. 조만간 13개교가 ‘국립○○대’로 개명한다. 이들이 비슷한 수준의 사립대보다 학비가 싼 것 말고 어떤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지 스스로 답을 보여줘야 할 때다.

윤석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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