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읽기] 중국 정치의 태감화(太監化)
비서는 크게 두 부류다. 주인의 의식주를 챙기는 생활비서와 정사를 돕는 정치비서다. 춘추시대 천하를 주유한 공자의 곁에도 자로(子路)와 안회(顔回)가 있어 공자의 생활문제를 해결하고 언행을 기록했다. 황제의 생활비서는 환관(宦官)이고, 그 우두머리는 태감(太監)이다. 정사를 보좌하는 정치비서는 군기대신(軍機大臣)인데 봉록(俸祿)이 없다. 재상과 달리 군기대신의 봉록은 국가재정에서 주는 게 아니라 황제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관료가 아니라 가노(家奴)의 신분이란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흔히 비서에 따르곤 하는 부정적인 이미지는 환관 또는 태감의 정사 간여와 관계가 있다. 황제 옆 사람(身邊人)이다 보니 황제의 신임을 얻기 쉽고 이를 발판으로 주제넘게 나서다 말썽을 일으킨다. 그래서 예로부터 망국의 징조 중 하나로 환관의 발호가 꼽힌다.
최근 중국 인터넷 공간엔 ‘국가의 태감화(太監化)’를 우려하는 글이 떠돈다. 태감화가 갖는 문제는 인격은 없이 권력의 비위를 맞추거나 시비를 따지지 않는 채 이익만 좇는 것이다. 그 결과 실제적으론 상사의 일을 돕는 게 아니라 상사의 체면을 지키는 데 그친다. 과거 태감이 육체적 거세자였다면 현재의 태감은 정신적 거세자로 일컬어진다.
중국에서 태감화 운운의 말이 나오는 건 지난해 20차 당 대회와 지난달 양회(兩會)를 거치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비서 출신이 대거 요직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권력 서열 2위 리창 총리는 시진핑이 저장성 당서기로 있을 때 비서장 역할을 했다. 서열 5위 차이치는 정치국 상무위원 신분으론 드물게 이번에 당 중앙판공청 주임을 겸하게 됐다. 시 주석의 생활과 경호 등을 책임지는 것으로 생활비서에 가깝다.
서열 6위 딩쉐샹 상무 부총리는 바로 차이치에 앞서 당 중앙판공청 주임을 맡았다. 당 최고 지도부인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 중 3명이 시진핑의 비서나 비서 출신인 셈이다. 시 주석은 얼마 전 러시아 방문 때 차이치를 마치 비서처럼 데리고 갔다. 그런가 하면 리창의 총리 취임 후 일성은 앞으로 국무원의 모든 일은 시진핑 핵심(核心)을 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태감화의 문제는 태감이 황제에게 절대복종하듯이 당의 주요 지도자들이 1인자에게 절대 충성하느라 시비를 말하지 않고 선악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덩샤오핑이 마오쩌둥과 같은 ‘괴물 황제’가 다시 출현하는 걸 막기 위해 고심 끝에 출범시킨 견제와 균형의 집단지도체제는 그렇게 중국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 모양새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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