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트레몰로의 숲속 공간, 알람브라 궁전
이베리아 반도는 780년 동안 이슬람의 영토였다. 기독교 세력의 실지(失地) 회복 운동, 즉 ‘레콩키스타’는 매우 더뎠고, 1492년에서야 마지막 술탄 왕국 나스르를 멸망시켜 스페인 통합왕국을 세울 수 있었다. 나스르의 수도 그라나다에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궁전 알람브라가 있다. 이슬람 무어인들이 남긴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꼽힌다. 기독교도들도 알람브라의 빼어난 가치를 인정해 파손 없이 보존하고 건물들을 덧붙이며 여름 별장으로 사용했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능선에 성채를 쌓고 그 안에 6개의 중정형 건물군을 배치했다. 외관은 단순 견고한 요새지만 안마당으로 개방된 건물들은 복잡 다양한 공간을 이룬다. 이슬람은 사람과 동물 모양 장식을 우상으로 치부해 금지했다. 허용한 것은 기하학적 패턴과 쿠란의 문자뿐이다. 알람브라의 모든 벽은 아라베스크 문양으로, 모든 천장은 무카르나스 장식으로 가득하다. 아라베스크는 복잡한 기하학을 반복하는 패턴이며, 무카르나스는 동굴 천장의 종유석 모양으로 변화 반복하는 입체적 장식이다.
왕의 사적 공간이었던 ‘사자들의 중정’은 알람브라 건축의 백미다. 가느다란 돌기둥은 나무들의 줄기 같고 천장의 무카르나스는 무성한 잎이 달린 가지 같다. 마치 깊은 숲속에 들어온 인상이다. 그 사이로 안마당의 사자 분수에서 분출된 물이 흐른다. 신비한 숲속의 시냇물과 같이 양지와 음지를 하나로 통합시킨다. 어찌 돌이라는 딱딱한 재료로 이처럼 몽환적인 공간을 만들 수 있었을까. 19세기 스페인의 기타연주가이자 작곡가인 프란시스코 타레가는 이 궁전을 주제로 그 유명한 기타곡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작곡했다. 특유의 트레몰로는 한 음을 잘게 끊어 반복하는 연주법이다. 아라베스크와 무카르나스의 분절 반복하는 장식적 수법을 청각으로 표현한 것이다. 무한 반복 속에서 피어나는 애절한 멜로디는 함락 직전 고립무원에 처한 무어인 공주의 비극적 심정이었을까.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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