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시30분, 유세 현장…기시다 테러, 아베 때와 판박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를 향한 폭발물 투척 사건은 사건 자체도 그렇지만, 그 이후의 대응에서도 일본의 정치·사회적 특성이 곳곳에서 배어 나왔다. 먼저 정치인 유세를 겨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해 7월 8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총기 저격 사건 발생 시간은 오전 11시30분쯤이고, 기시다 총리를 노린 폭발물 투척 사건도 오전 11시30분이었다. 장소도 비슷하다. 아베 사건 당시 범인 야마카미 데쓰야(41)는 간사이(関西) 지방인 나라(奈良)현의 참의원 선거 유세 현장에 군중으로 위장했다. 이번 사건 용의자 기무라 류지(24)도 100㎞가량 떨어진 간사이 지방 와카야마(和歌山)현의 중의원 보궐선거 유세 현장에서 사건을 일으켰다.
일본 정치인의 유세는 한국보다 빈도가 높고 태세는 느슨하다. 특히 선거 지원 연설은 후보들이 사전에 일정을 적극적으로 공개한다. 야마카미도, 기무라도 그 틈을 용의주도하게 노렸다.
범인이 무직의 남성이란 점도 같다. 두 사람 모두 스스로 사제 총과 파이프 폭발물을 만들었을 공산이 크다. 범행 현장에서 체포되는 순간 두 범인은 표정 변화가 없었다. 지난 15일 일본의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는 “경찰에 끌려가면서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나, ‘변호사가 오기 전에는 말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소름 끼쳤다”는 반응이 많았다. 실제 기무라는 묵비권을 행사해 범행 동기와 공범 유무 등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또 정치인 경호에서 미국과 일본 경찰은 너무 달랐다. 기시다 총리의 연설이 예정됐던 와카야마현 사이카자키(雑賀崎) 항구에는 200여 명의 군중이 몰려 있었다. 대부분 얼굴을 서로 아는 동네 어민들. 사건 후 외지인인 기무라의 모습에 일찍이 수상함을 느꼈다는 군중의 증언도 나왔다.
용의자 기무라가 서 있던 위치와 기시다 총리 간 거리는 불과 10m. 그런데도 일본 경찰은 청중에 대해 그 어떤 몸수색이나 소지품 검사도 하지 않았다. 조그만 사고 우려만 있어도 참석자들에게 가혹할 정도의 몸수색을 가하는 미국과는 접근 방식 자체가 다르다. ‘능동적 액션’보다는 ‘수동적 리액션’에 무게를 두는 일본적 사고가 바탕에 깔렸다.
그러다 보니 배낭을 메고, 그 안에 폭발물을 넣었던 용의자를 방치하고 말았다. 15일 기무라가 두 발째 폭발물에 불을 붙이려고 하는 순간 뒤에 있던 어부가 과감하게 헤드록을 하지 않았다면 큰 사고로 번졌을 공산이 크다. 지난해 아베 총격 사건 때도 범인은 회색 배낭을 메고 있었지만 프리패스였다.
사건 발생 후 기시다 총리의 일성도 일본스러웠다. 기시다 총리는 사건 직후 현장을 빠져나온 지 1시간20분 만에 JR 와카야마역에서 가두연설 차량에 올랐다. 현장에선 1500명의 청중이 지켜보고 TV에선 생중계했다. 기시다 총리의 일성은 이랬다. “조금 전에 사이카자키 연설장에서 큰 폭발음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건 경찰에서 조사하고 있지만 큰 걱정을, 폐를 끼쳤습니다. 사죄를 드립니다.”
자신의 안위에 대한 설명이나 폭력에 대한 비판에 앞서 일단 당시 모였던 군중과 주변 사람들, 국민에게 고개를 숙인 기시다 총리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폐 끼치지 말라’를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일본의 의식 구조를 그대로 반영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kim.hyun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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