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제 못 풀면…내년 ‘정권 심판’ 총선으로 [신율의 정치 읽기]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 정치판은 무척 ‘다이내믹’하다. 유럽에서는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일이 우리나라에서는 일주일 간격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당연히 1년 후 총선을 전망하는 것이 쉽지 않다. 더구나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선거 구도가 어떻게 형성될 것인가 예상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일각에서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출마 여부에 주목한다. 한동훈 장관 출마에 주목하는 이들은, 한동훈 장관이 제2의 윤석열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동의하기 힘들다. 윤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성장한 이유는, 정치권력에 맞서 싸우다 두들겨 맞음으로써 ‘권력에 의한 피해자’ 이미지를 얻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은 피해자에 대한 동정의식이 유난히 강해, 피해자 이미지를 통해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 장관은 다르다. 한 장관은 현재 정치권력의 일원이다. 야당으로부터 맞아도 피해자 이미지를 얻기 쉽지 않다. 그렇기에 한 장관은 제2의 윤 대통령이 되기는 쉽지 않다. 한 장관이 어느 정도 정치력을 갖고 있는지도 미지수다. 결론적으로 한 장관 출마 여부가 총선 판을 흔드는 ‘사건’이 될 수 있다는 예상은 합리적이지 못한 추론이다.
내년 총선 결과를 예상하기 위해서는, 어떤 선거 구도가 형성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내년 총선도 다른 선거와 마찬가지로 정권 심판론 혹은 야당 심판론, 둘 중 하나의 구도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어떤 방향으로 민심이 흐를 것인가는 판단하기 쉽지 않다.
지난 3월 31일 발표된 한국갤럽 정례 여론조사(3월 28부터 30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 응답률은 10.3%,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를 보면, 우리나라 유권자의 주관적 정치 성향은 보수 31%, 중도·성향 평가 유보가 43%, 진보가 26%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수치를 보면, 우리나라 유권자의 이념 지형은 탄핵 이전으로 회귀하는 것 같다. 2017년 이전에는 보수 우위 이념 지형이었는데, 탄핵 충격파로 진보 우위로 돌아섰다 다시금 보수 우위 정치 지형으로 변하고 있다는 의미다.
주관적 이념 지형만 보면, 국민의힘이 유리해 보인다. 하지만 해당 조사에서 국민의힘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과 똑같이 33%다. 국민의힘은 민주당보다 중도층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판형(版形)은 국민의힘에 유리하지만, 국민의힘은 이런 유리한 판형을 잘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여론조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갤럽이 4월 7일 발표한 여론조사(4월 4일부터 6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 응답률 9.1%,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를 보면, 내년 총선에서 여당 승리를 기대하는 응답자는 36%, 야당 후보가 다수 당선되길 기대한다는 응답은 50%에 달했다.
같은 기관의 한 달 전 조사에서는 총선에서 여당이 다수 당선돼서 정부를 지원해야 한다는 응답이 42%, 야당 후보들이 다수 당선돼 정부를 견제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44%였다. 이런 변화 추세를 감안하면, 내년 총선은 정권 심판론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윤 대통령의 위기관리 능력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3월 31일과 4월 7일에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윤 대통령 지지율은 국민의힘 지지율보다 낮다. 이는 윤 대통령 지지율이 회복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지율 확장성이 여당보다 떨어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이렇게 된 원인으로 후쿠시마 처리수 방출 문제와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여부, 주 69시간제 그리고 김성한 전 안보실장 사임으로 상징되는 대통령실 외교 안보 라인 혼란 등을 들 수 있다. 연이은 국민의힘 최고위원들의 망언 시리즈도 한몫했을 테다.
이런 원인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 미리 진화했다면 지지율 하락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국민의힘 최고위원들의 ‘망언 퍼레이드’에 대해 김기현 대표가 진작 강경하게 대응했다면, 망언이 시리즈로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최소한 대통령실이 조기에 모종의 시그널을 여당 지도부에게 보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 있다.
후쿠시마 ‘처리수’ 문제도 그렇다. 우리는 후쿠시마 오염수라고 하지만 미국은 ‘처리수’ 혹은 ‘방출수’라는 표현을 쓴다. 미국과 우리 용어의 상이함을 설명하면서, 일본이 오염수를 처리하는 과정을 소상히 밝히고 11개국 전문가로 구성된 IAEA전문가그룹이 이를 감시 통제한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각인시켰다면, 후쿠시마 문제가 이토록 커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민주당은 IAEA가 일본과 미국 친화적이라는 입장을 갖고 있는 듯하다. 민주당의 의구심 관련 처리수 방출 당사국들과의 국제 공조를 통해 해결하겠다고 했으면 어땠을까.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문제 역시, WTO에 의해 수입 금지가 결정돼 있는 수산물을 정부가 나서 수입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분명히 했으면 논쟁조차 되지 않았을 테다. 근로 시간 문제 역시 정부가 “주 69시간제를 없던 것으로 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으면 지금과 같은 혼란이 있었을까. 결국 윤석열정부와 대통령실의 위기관리 능력에 문제가 있다고밖에 할 수 없다.
이런 문제를 시정하지 못하면 내년 총선 선거 구도는 정권 심판론이 될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 정권이 지금부터라도 위기를 조기에 진화하는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이유다. 최근 불거진 미국 정부에 의한 도감청 의혹을 빠르게 대응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조짐이다.
총선 승리를 위해 여권이 풀어야 할 과제는 또 있다. 바로 영남당이라는 지역 정당 이미지를 벗어나는 일이다. 4월 7일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거에서, 수도권 4선 출신 김학용 의원을 제치고 TK 지역 3선 윤재옥 의원이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윤 신임 원내대표는 장점이 많은 정치인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당을 위해 뛰어난 전략을 구사하는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TK 출신이다. 당 지도부가 영남 일색이라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중도층에 어필하기 매우 어려워진다. 현재도 중도층 지지 측면에서 민주당에 밀리고 있는데, 영남 원내대표까지 선출됐으니 이제는 중도층에 다가가기 더욱 어려워졌을 수 있다.
그뿐인가. 김기현 대표 역시 전당대회 당시 인지도가 높지 않다는 비판을 들었는데, 원내대표까지 대중적 인지도가 높지 않은 인물이 당선됐다. 당연히 대중에 어필하기도 더욱 어려워졌다. 때문에 국민의힘은 전략을 아주 잘 짜지 않는 한, 총선에서 고전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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