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경찰 조사 참여기

2023. 4. 16.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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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허름한 파출소를 개조한 지방경찰청 분소를 방문했다. 요즘 ‘건폭’ 논란으로 뜨거운 타워크레인 기사 40여 명에 대한 피의자 신문절차에 변호인으로서 참여하기 위해서다. 팀장과 향후 피의자 조사 방법에 대해 논의한 결과, 팀장을 포함한 수사관 4명이 6일 동안 오전 4명, 오후 4명씩 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경찰 조사는 일정에 맞춰서 질서 있게 진행되었다. 경찰은 자신들의 원칙에 충실하게 타워크레인 기사들에게 미란다원칙 등 피의자의 권리를 주지시킨 뒤 증거를 바탕으로 조목조목 추궁했고,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충실히 답했다. 조사 과정에서 서로 목소리를 높인 경우도 있었지만, 대체로 수사관들은 친절했고, 조사가 끝난 뒤 겁먹은 타워크레인 기사를 위로하기도 했다. 이 수사관들이 앞으로 어떤 결론을 내리든 원칙을 지키는 이들의 모습에 믿음이 갔다.

그리고 며칠 후, 인구 10만명이 안 되는 소도시 경찰서를 방문했다. 이번에는 고소인과 함께 참고인 조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고소인은 60대 후반의 여성으로 치매를 앓고 있다. 고소인은 1급 장애를 가진 둘째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몇 년 전 ‘통장에 돈이 있으면 기초생활수급자 지위가 취소되니 통장 비밀번호를 알려주면 관리해 주겠다’는 70대 초반 이웃 남성의 말에 속아 전재산 1억원을 편취당했다고 주장한다.

고소인은 미리 약속된 시간에 경찰서를 방문하였으나, 이 사건을 담당하는 팀장은 자리에 없었다. 다른 수사관에게 방문한 이유를 이야기하고 한참의 수소문 끝에 팀장이 나타났다. 고소인이 치매를 앓고 있어서 피해 진술이 어려울 수도 있으니 이 사건에 대해 고소인으로부터 몇 달 동안 들어서 잘 알고 있는 셋째 아들과 동석할 수 있도록 요청하면서 치매 진단서까지 제출하였으나, 팀장은 단칼에 거절했다.

그리고 조사가 시작되자마자 팀장이 고소인에게 비웃음을 흘리며 고압적인 목소리로 ‘그 돈 어디에 썼어요?’라고 묻는다, 황당해서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자, 얼버무리며 ‘오늘은 조사가 안 될 것 같다. 추후에 다음 조사 일정을 알려주겠다’며 일방적으로 조사를 끝냈다.

어쩔 수 없이 경찰서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고소인과 아들은 팀장의 태도에 분통을 터트리면서도 이런 사람이 담당 수사관이라는 사실에 못내 불안해했다. 팀장이 예단을 가지고 고소인에게 무례한 태도를 보인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소인에게마저 이런 식이라면 과연 이 팀장은 그가 수사하고 있는 다른 피의자들에게는 어떤 태도로 수사에 임할지 걱정이 앞섰다.

지난해 12월 14일 새벽, 막차를 놓치고 추위를 피해 경찰서 지구대를 찾은 70대 할머니를 경찰이 내쫓아 논란이 된 바 있다. 공개된 영상 등에 따르면, 70대 할머니는 추운 새벽에 부산의 한 지구대를 찾아왔다. 할머니는 부산역에서 출발하는 마지막 기차를 놓치고 첫차를 탈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잠시 한파를 피하려고 지구대를 찾은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는 지구대 소파에 앉아 있다가 40분쯤 뒤 경찰관에 이끌려 밖으로 내보내졌다. 지구대 내부 CCTV에는 한 경찰관이 할머니의 팔을 강제로 잡아끌고, 다른 경찰관이 문을 잠그는 모습이 담겨있다. 이런 사실이 보도되면서 화가 난 시민들이 해당 지구대에 항의 전화를 하자 경찰은 적반하장 격으로 ‘계속 화를 내세요’라며 응대했다고 한다.

민중의 지팡이. 흔히 경찰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민중이 어려울 때 쓰러지지 않도록 버팀목이 되어준다는 의미일 것이다. 경찰 대부분은 실제로 민중의 지팡이로서의 역할을 다 하고 있다고 믿는다. 다만, 민중을 향해 칼을 날리는 일부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에 흠집을 내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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