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엄마, 2만원만"…전세사기 당한 20대 마지막 말

심석용 2023. 4. 16. 17:3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14일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사건 피해자 임모씨가 스스로 삶을 내려놓았다. 16일 오전 인천 미추홀구 한 장례식장에서 김씨의 발인식이 엄수됐다. 심석용 기자

“‘미안해요 엄마’하면서 2만원만 보내달라더라고요….”
16일 인천 미추홀구의 한 장례식장. 검은 옷을 입은 중년 여성은 이틀 전 세상을 뜬 외아들과의 마지막 통화를 되뇌었다. 아들 임모(26)씨는 지난 14일 오후 8시쯤 인천 미추홀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같이 사는 친구가 시신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사망 닷새 전인 지난 9일 임씨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수술을 앞둔 어머니의 용기를 북돋워 주던 그는, 전화를 끊기 직전 힘겹게 “2만원만 보내달라”는 말을 꺼냈다. ‘20만원도 아니고 2만원이라니.’ 어머니는 의아했지만 더 묻지 못하고 아들에게 10만원을 보냈다. 모자의 대화는 이게 마지막이었다. 2만원조차 간절했던 임씨는 결국 스스로 삶을 내려놓았다. 그는 이른바 ‘건축왕’으로 불린 남모(61)씨에게 전세 사기를 당한 피해자였다.

유족들은 “임씨가 가정의 부담을 덜기 위해 일찍부터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다고 했다”고 말했다. 임씨는 고교 때부터 인천 남동공단 내 식품 제조업체에서 일했다. 수년간 공장에서 밤낮으로 구슬땀을 흘린 끝에 2019년 8월 전셋집을 마련했다. 준공된 지 얼마 안 된 한 연립주택이었다. 전세금 6800만원에 집을 계약한 임씨는 자립에 성공했다는 생각에 뛸 듯이 기뻐했다고 한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2021년 8월 임대인이 전세금을 900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당시 전세금으론 이사할 곳이 마땅치 않았던 임씨는 할 수 없이 재계약을 맺었지만, 1년 뒤 집이 임의경매(담보권의 실행 등을 위한 경매)에 넘겨졌다는 말을 듣게 됐다. 임대인은 연락도 받지 않았다. 계약을 중개한 부동산업자는 그저 “염려하지 말라”며 그를 안심시켰다고 한다.


뒤늦게 알게 된 조직적 전세사기


지난달 8일 서울역 앞에서 출발한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한 추모행진이 용산구 대통령실 방향을 향하고 있다.연합뉴스
임씨가 자신이 조직적 전세사기의 피해자라는 걸 알게 된 건 한참 뒤, ‘미추홀구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에 들어가서였다. 전세사기의 중심에 ‘건축왕’으로 불린 건축업자 남씨가 있었다. 남씨는 다른 사람 명의를 빌려 토지를 매입한 뒤 소규모 아파트나 빌라를 지었고 공인중개사를 시켜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대출금과 전세보증금 수입에 의존해 대출이자와 직원 급여, 보증금을 돌려막았다. 그러나 불어나는 이자를 감당하지 못했고, 지난해 1월부터 임씨 집을 포함해 남씨가 실소유한 주택 690채가 차례로 경매에 넘어갔다.

피해가 확인됐지만 구제는 요원했다. 주택 낙찰자가 나오더라도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돌려받을 수 있는 건 최우선변제금 3400만원뿐. 올해 6월 계약 기간 만료를 앞둔 그는 전세금을 잃고 신용불량자가 될 수도 있다는 공포에 시달렸다고 한다. 퇴직금을 받아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7년간 일한 직장도 그만뒀다. 대신 지인 소개로 서울의 한 보험회사에 들어갔지만 벌이는 넉넉지 않았다. 지난 2월 차량 접촉사고의 가해자가 되면서 부담은 더욱 커졌다. 임씨 지인은 경찰 조사에서 “전세 사기를 당한 상황에서 접촉사고까지 내면서 임씨가 힘들어했다. 어려운 상황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다”고 진술했다. 사망 당시 김씨 지갑에 있는 현금은 2000원뿐이었다고 한다.


‘건축왕’ 전세사기 피해자, 두 번째 극단 선택


지난 2월 28일에도 미추홀구 한 빌라에서 보증금 7000만원을 받지 못한 30대 전세사기 피해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휴대전화에 남긴 유서에서 ‘(전세 사기 관련) 정부 대책이 굉장히 실망스럽고 더는 버티기 힘들다. 저의 이런 결정으로 이 문제를 꼭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인천지검은 지난달 15일 사기와 부동산실명법 위반 등 혐의로 남씨를 구속기소 하고,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로 공범 A씨(46) 등 6명을 불구속기소 했다. 검찰은 이들이 지난해 1~7월 인천시 미추홀구에 있는 소규모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 161채를 빌려주고 전세보증금 125억원을 가로챘다고 판단했다.
지난 1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 주최로 전세사기 피해주택에 대한 한시적인 경매 중지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대대적인 전세사기 수사를 벌이는 동시에 피해 임차인을 위한 금융·법률·주거 지원 방안도 마련했다. 상습적으로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악성 임대인은 신상을 공개하고, ‘안심전세앱’을 통해 임대인과 임차인간 정보 비대칭성도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불가피하게 전셋집을 낙찰받은 임차인의 경우 청약에 있어 무주택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수사 중인 집들의 경매 중지와 피해자들의 우선 매수권 보장이 먼저”라고 주장한다. 미추홀구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최은선씨는 “낙찰이 돼 쫓겨나면 방도가 없다. 지금껏 나온 대책들은 실제로 도움이 안 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한편 남씨 측은 지난 5일 인천지법에서 열린 첫 재판에서 “(검찰 공소장의) 사실관계는 대체로 인정한다”면서도 “법리상으론 사기가 될 수 없다. 검찰의 법 적용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주장했다. 함께 법정에 선 A씨 등도 “(남씨 회사) 직원으로 일했을 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하거나 “1만 6천 쪽에 달하는 검찰 기록을 아직 복사하지 못했다”며 재판 연기를 요구하고 있다.

「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