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주행, 국가채무비율 늘었다…'비기축국 평균' 첫 추월

정진호 2023. 4. 16.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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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이 기축통화를 쓰지 않는 선진국 평균보다 높아졌다. 사상 처음이다. ‘건전 재정 국가’란 한국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다. 저출산·고령화가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지출을 통제하는 수단인 재정준칙은 여전히 국회 문턱을 못 넘고 있다.


올해 GDP 대비 국가채무 55%


16일 국제통화기금(IMF) ‘재정 점검 보고서(Fiscal Monitor)’에 따르면 지난해 말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정부 채무(D2) 비율은 54.3%에 달한다. 지난해 10월 IMF가 재정 보고서에서 예상한 채무 비율(54.1%)보다 0.2%포인트 상향됐다. D2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부채에 비영리 공공기관의 부채를 더한 것으로, 국제 비교 기준으로 사용된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IMF는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올해 연말엔 55.3%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 세계는 코로나19가 확산한 기간 경제충격을 줄이기 위해 확장 재정으로 대응했지만, 지난해부터 한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긴축으로 돌아섰다. 국제사회가 나랏빚을 줄여가고 있지만 한국만 빚을 계속 쌓는 식으로 역주행하고 있다.

한국 국가채무 비율 계속 오른다


미국 달러, 유로, 일본 엔, 영국 파운드와 같은 기축통화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를 뜻하는 비기축통화국의 국가채무 비율을 보면 이 같은 기조가 명확히 나타난다. IMF가 선진국으로 분류한 국가 중 한국을 제외한 비기축통화 10개국(노르웨이·뉴질랜드·덴마크·몰타·스웨덴·싱가포르·아이슬란드·이스라엘·체코·홍콩)의 지난해 말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평균 52%다. 한국은 54.3%로 10개국 평균을 넘어섰는데, 지난해가 처음이다.

그 차이는 점차 더 벌어질 예정이다. IMF는 10개 비기축통화국의 평균 채무 비율이 올해 말 51.5%로 낮아질 것이라고 봤다. 지난해보다 1%포인트 증가할 것이라는 한국 채무 비율 전망과는 정반대다. IMF는 10개국의 평균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계속 낮아져 2027년엔 48.5%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봤는데 한국에 대해선 같은 기간 57.8%까지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축통화는 국제 거래에서 결제수단으로 주로 쓰이는 화폐인 만큼 정부 채권 거래 수요가 많다. 반대로 비기축통화국은 채권 수요가 제한적이다. 전문가들은 비기축통화국은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높아졌을 때 채권 위험도가 급격히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예타 면제는 확대, 재정준칙은 제자리


재정 건전성에 이미 ‘경고등’이 들어왔고, 전망도 어둡다. 정부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에서 사회보장성기금 수지를 뺀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GDP의 3% 이내로 관리하는 내용의 재정준칙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지난해 9월 정부는 재정준칙을 법제화하면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는데, 사회간접자본(SOC)이나 연구개발(R&D) 예타 면제 범위를 1000억원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만 국회를 통과했다. 나랏돈을 더 쉽게 쓸 수 있게 됐지만, 이를 통제할 수단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기재위 경제재정소위 위원들과 참여연대, 경실련 주최로 재정준칙 법제화 문제 긴급 좌담회 열렸다. 연합뉴스
지난해 합계출산율(여성 1명당 평생 낳을 아이 수)이 0.78명을 기록하는 등 가파른 저출산·고령화도 재정엔 부담으로 작용한다. 앞으로 세금을 낼 사람은 줄어드는데 복지 등 재정 부담은 늘어서다. 김인준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국가채무가 늘어나면 나중엔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워진다. 재정운용 자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며 “늘어난 국가채무가 미래세대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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