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치어리더의 웨이브, 저만 불편한가요?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게 스포츠지만, 그 안에 넘을 수 없는 여성의 한계는 있다.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스포츠는 치열하게 차별적이다. 이 차별적인 판이 콜드게임으로 끝나지 않게 불편함을 외친다. <편집자말>
[이진민 기자]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스포츠에 보이지 않는 한계가 있다. 한쪽에서 남성들이 땀 흘리며 뛰어다니고 다른 쪽에서 여성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응원하는 모습은 종목을 불문하고 스포츠 경기장에서 흔한 풍경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여성이 경기를 뛸 때 남성은 응원하는 역할을 맡을까? 아니다, 여전히 응원은 여성의 일이다.
기울어진 경기장에 어린이가 등장했다.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앳된 여자 아이들이 진한 화장을 하고 짧은 의상을 입는다. 그들이 웨이브를 선보이자 관중들은 환호한다. 어른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아이들이 어른 행세를 하는 기이한 현장. 스포츠는 언제까지 어린 여성의 응원을 고집할 것인가?
▲ 국내 프로 농구에서 어린이 치어리더가 처음 등장한 건 2007년이다(2009년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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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프로 농구에서 어린이 치어리더가 처음 등장한 건 2007년이다. 인천 전자랜드가 만 5세에서 12세 이하의 여성 어린이로 구성된 '리틀 팜팜'을 결성하였고 이후로 여러 구단에서 어린이 치어리딩을 선보였다. SK 나이츠의 '팝콘', 고양 캐롯의 '엔젤스' 등 현재까지도 어린이 치어리더는 활발히 진행 중이다. 해당 팀들은 구단에서 전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이 아닌 외부 업체와의 계약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
어린이 치어리더는 초등학생에서 중학생까지의 여자 어린이로 구성된다. 성별 제한이 없다지만, 무대에 오르는 건 주로 여자 아이들이다. 그들은 어린이들만 공연하는 한 번의 무대 외에 주로 성인 치어리더들과 합동 공연을 한다.
무대에서는 구단 유니폼을 수선한 의상이나 치어리더팀에서 자체 제작한 의상을 입는데 의상 길이가 짧고 타이트하여 신체 라인이 드러나고 배, 다리 등을 완전히 노출하는 게 일반적이다. 거기에 진한 메이크업까지 더하면 완벽한 '성인 치어리더'의 모습이다.
공연은 걸그룹 안무를 활용한 동작이나 일반적인 치어리딩 동작을 섞어서 구성하는데 문제는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한 안무가 섞여 있다는 것이다. 웨이브나 허리를 튕기고 특정 신체를 부각하는 안무는 미성년자가 따라 하기에 부적합하여 보이지만, 응원이란 명목 하에 펼쳐진다.
어린이다운 발랄함을 보여주는 게 성인 치어리더와의 차이점이라 하였지만, 그들의 모습은 지나치게 어른스럽다. 성인 치어리더가 입는 디자인에 사이즈만 줄인 듯한 의상을 입고 성적 대상화한 안무를 추는 모습을 결코 '어린이' 답지 않다. 그들이 말한 발랄함은 진짜 어린이의 얼굴이 아닌 어른들이 원하는 '어린 여성'의 모습이 반영된 건 아닐지 의문스럽다.
어린이 치어리더를 방관하는 구단
누가 경기장에 어린이 치어리더를 세운 걸까? 그 답은 경기 전반을 관할하는 스포츠 구단에 있다. 한 구단 관계자에 따르면 "치어리더는 구단 소속이 아니며 경기마다 이벤트 회사에서 운영하는 치어리더팀과 계약할 뿐, 전반적인 선발과 공연 구성은 고용된 팀의 몫"이라고 밝혔다.
한편, 구단이 고용한 치어리더팀은 업체가 달라도 돌아온 답변이 비슷했다. 한 업체는 "초등학교 저학년 팀과 고학년 팀으로 나누어 공연하며 너무 성인답지 않은 무대를 선보이려 노력한다"고 밝혔다. 다른 업체 또한 "만 15세 이하의 어린이만 참여시키며 아이들의 발랄함을 살릴 수 있는 무대를 선보인다"고 하였다.
무대에 서고자 하는 아이들이라면 다 환영한다는 지원 공고와 달리, 정작 무대에 서는 건 어린 여자 아이들이다. 이에 대해 한 업체는 "지원하는 남자 어린이가 적으며 '치어리더는 여성'이란 인식이 반영된다"고 답하였다. 이미 아이들은 성 고정관념 속에 여성을 응원하는 역할로 인식하였고 주로 여자 아이로 구성된 어린이 치어리더팀이 이러한 인식을 강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단은 어린이 치어리더의 선발 과정과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인식하고 있을까. 한 구단은 "치어리더 선발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고양 캐롯 점퍼스 역시 "응원단에 대해 자체적으로 관리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직접 선발하지 않아도 어린이 치어리더가 공연하는 곳은 경기장, 엄연히 스포츠 구단의 관할이다. 어린이들의 무대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어른들이기에 '모른다'는 답변은 그 무게가 더욱 가볍다.
그들의 응원이 신나지 않는 어른들
어린이 치어리더에 대한 관중들의 반응은 상반되었다. 아이들이 신나게 춤추는 모습을 보며 엄마, 아빠 미소를 짓는 관객들도 많았지만, 불편함을 호소하는 어른들도 존재하였다.
"짧은 치마를 입고 뛰어다니는 게 불편해 보인다", "어린 아이가 어른 흉내를 내고 거기에 어른들이 웃는 게 이상하다"라는 반응도 다수였다.
'치어리더 = 여자'라는 암묵적인 룰을 깰 수 없을까. 이에 대한 대안적인 문화 또한 등장하고 있다. 2019년도 미국프로풋볼(NFL)에서 역대 최초로 남자 치어리더가 '슈퍼볼' 무대에 등장했다. 더불어 2016년도 창립되어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 중인 '스크리미지 피플'은 오직 중년 남성들로 구성된 치어리더팀으로 전통적인 남성 이미지에서 벗어나 치어리딩에 대한 성 고정관념을 뒤집고 있다.
치어리더는 말 그대로 스포츠 선수와 팀을 향해 관중들과 함께 응원하는 역할이다. 결코 관중이 관람하는 유희적 요소가 아니며 즐겁기만 하다고 모든 형태의 응원을 허용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어린이 치어리더는 아이다움을 잃은 채 어른들을 격려하고 있다. 이제 그들이 진정으로 어린이답게 응원할 수 있도록 어른들이 제대로 된 응원을 보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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