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1호’라 쓰고 ‘기적’이라 읽는다[개척자 비긴즈]
나는 ‘개척자 Y’다. 험난한 교회 개척 여정 가운데 늘 기도하며 하나님께 ‘왜(Why)’를 묻고 응답을 구하고 있다. 개척은 그 자체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자 지향점이다. 출발선(A)에 선 개척자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Z)를 바라보며 묵묵히 걸음을 내디딜 때 당도할 수 있는 마지막 계단이 알파벳 ‘Y’이기도 하다. 그 여정의 열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개척 과정을 걷는 목회자에게 ‘1호 성도’는 한동안 유니콘 같은 존재다. 꿈에 그리는 존재이자 분명히 있을 거 같은 존재인데 눈앞엔 없다. 때로는 세상 모두에게 있는데 나에게만 없는 존재로 느껴지기도 한다. 많이 움직이고 일을 벌여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길텐데 막연한 개척만큼이나 함께 할 수 있는 성도가 누구일지 막연했다.
그렇게 꿈에 그리는 ‘1호 성도’를 만나기 위해 알고 지내던 분들과 참 많은 곳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교제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교회 개척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선배 개척자를 통해 전수받은 것 중에 기억 남는 한 마디가 있다. “교회 개척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하시죠’라는 권면도 중요하다.”
일타 강사의 족집게 과외 때 기출 문제 풀이를 들은 것처럼 눈이 번쩍 뜨인 한 마디였지만 적용하는 게 여간 어렵지 않았다. 개척 과정은 얘기할 수 있어도 함께 하자는 말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보험 상품을 파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친한 제자에게는 농담인 듯 진담을 섞어 “너는 우리 교회 와야지”가 흘러나왔다.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말이다. 그런데 친분이 있는 성도들에게는 절대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밥만 먹었고 그냥 커피만 마셨다. 혹자는 ‘영양가 없는 시간들’이라고 평가한다. 정말 그럴까. ‘스치듯 안녕’ 같은 시간일 뿐일까. 분명한 건 그 시간이 행복했다는 거다. 그거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목사님~ 잘 지내시죠?” 전에 사역하던 교회에서 짧은 시간에 네 차례의 심방을 했던 가정이었다. 우리 가정이 갤러리에서 찬양 예배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 개척을 준비하시나’ 싶어 궁금함도 풀고 안부 차 연락을 하신 거였다.
집사님의 다음 대사가 큐피트의 화살처럼 가슴에 꽂혔다. “저희 집에 심방 한 번 와주실 수 있나요?” 오랜만이었다. 가정을 방문해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며 함께 인사 나누는 시간. 꿈만 같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일상을 채웠던 심방. 때로는 힘들어서 남몰래 미루고 싶기까지 했던 그 심방이 지금은 너무 반가웠다.
주님으로 연결되는 게 감사했고 만날 수 있는 끈이 주님이라는 사실이 더없이 고마웠다. 개척은 사람이 연결되게 했고 마음이 연결되게 했다. 그렇게 찾아온 간만의 심방. 한참을 즐겁게 교제 나누던 중 집사님이 한 마디를 툭 떨어뜨렸다. “목사님~ 저희 집에서 예배드리는 거 어때요? 예전에 심방 오셨을 때 이곳이 마가의 다락방 같다고 하셨던 거 기억하시죠?”
놀라웠다. 예상치 못했던 장소이기도 했지만 그 장소엔 또 다른 의미가 담겨 있었다. 얘길 들어보니 미국에서 집사님의 언니가 한국에 잠시 들어오는데 예배를 같이 드리면 좋겠다는 거였다. 언니네 가족은 예수를 믿지 않았다. “가정에서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고 언니가 조금이나마 예수님을 알 수 있는 길이 열리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저희 가정이 1호 성도가 되면 어떨까 싶기도 하고요.”
순간 머리에 종이 울렸다. 예배 장소를 고민하던 사이 놓치고 있었던 게 있었다. 1호 성도를 통해 한 영혼에 우선순위를 둬야 하는 첫 마음을 회복하게 하셨다. 장소가 아니라 영혼이었다. 하나님께선 개척은 ‘영혼을 바라보는 마음’이 1순위라는 것을 1호 성도를 통해 다시 알게 하셨다.
이렇게 1호 성도를 만나다니. 안될 것은 없지만 너무 놀랐다. 아무 것도 못하는 막대기 같은 사람을 주님이 진짜 목사로 만들고 계신다는 게 느껴졌다. 한 영혼을 생각하며 예배를 준비했다. 또 다른 광야에서 드려질 예배, 그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될 성도, 그리고 그 예배를 기뻐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키보드, 보면대 등 도구를 챙겼다. 찬양 가사, 말씀 등을 적은 예배 안내지도 준비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집사님 댁을 찾았다. 그런데... 집사님의 언니네 식구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날 아침 일찍 놀러 나갔단다.
예배에 대한 부담도 있었을 거다. 처음 만나는 목사와 어색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기대했던 장면은 눈앞에 없었다. 이상하게 실망감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감사했다. 순간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가 마음에 쑥 들어왔다. 그랬다. 짧은 시간 1호 성도의 가정에서 드려질 예배를 준비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 것들이 차고 넘치게 많았다. ‘역시 하나님은 다 계획이 있으시구나.’ 우리는 함께 집사님 언니네 가정을 위해 기도했다.
그렇게 개척을 위한 예배가 생겼다. 사실은 다른 가정이 1호 성도가 될 뻔했다. 개척 준비 초기에 만났는데 막 사업을 시작한 가정이었다. 사업과 개척을 위해 함께 기도했고 밝은 미래를 같이 꿈꿨다. 사업장에서 심방도 이뤄졌고 그곳에서의 예배도 제안을 했었다.
그런데 행복했던 시간도 잠시 연락은 뜸해지고 “밥 한번 먹자”는 얘기는 바람결에 사라지는 인사말처럼 지나갔다. 먼저 연락하기조차 미안한 상황이 됐고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막막했다. 간간이 개척의 준비 상황들을 전했지만 반응은 전과 달리 뜨뜻미지근했다.
서로 미안해야 할 상황은 아니지만 말 그대로 미묘한 상황이 된 것 같았다. 카톡으로 안부 인사를 보냈지만 쉽게 지워지지 않는 ‘1’이란 숫자가 사람 마음을 애타게 한다. 숫자 ‘1’이 사라졌다. ‘이제야 카톡을 확인했구나.’ 한동안 답이 없다. 답답했다.
개척은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기도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도 한다. 그렇게 힘이 들 때, 개척을 위해 묵묵히 삽질하는 농부 같은 나에게 옳은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주님은 당신의 손으로 내 마음을 덮어주신다. 마음에 쉼을 얻는다. 다시 만날 힘을 얻는다. 계속 만나 밥을 먹을 수 있고 개척에 대한 소식을 전하게 하신다. 깨진 것 같지만 깨어진 곳에 흐르는 물이 주변이 적시고 꽃이 피어나게 하실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다.(Y will be back!)
최기영 기자 일러스트=이영은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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