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학교 학부모 모은 뒤…'패드립' 충격 준 '1타 강사' 정체

신혜연 2023. 4. 16.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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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초중학교에서 서초경찰서 학교전담경찰관 박진호 팀장이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초경찰서 학교전담경찰팀은 종종 등하굣길에 통학 지도를 하며 아이들과 소통한다. 박 팀장은 "아이들이 경찰들 말을 담임선생님 말씀이나 부모님 말씀보다 더 무겁게 여기기 때문에 통학 지도가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신혜연 기자

"얘들아, 그런 말 쓰면 안 돼. 그 말 한마디가 네 발목을 잡을 수도 있어."

지난 14일 오후 3시쯤, 서울 서초구 서초중학교 학생들이 우르르 정문을 빠져나왔다. 'SPO'란 글자가 적힌 검은 조끼를 입은 서초경찰서 학교전담경찰관(SPO) 박진호 팀장이 친구에게 욕을 하며 장난을 치는 남학생을 멈춰 세웠다. 박 팀장은 요즘 아이들이 쓰는 욕 한 마디 한 마디가 신경 쓰인다. 사소한 장난이 심각한 학교 폭력으로 번진 사례를 자주 봤기 때문이다.

지난달 16일엔 이 학교 강당에 학부모 400명이 모였다. 학부모 대상 학교 폭력 예방 교육이 있던 날이었다. 6년째 SPO로 일하며 스스로 '학교 폭력 예방 1타 강사'를 자처하는 박 팀장이 강연자로 나섰다. 그는 우선 생생한 학교 폭력 사례들을 가감 없이 제시했다. '충격 요법'이었다. 아이들이 쓰는 욕설과 사이버 공간에서 이뤄지는 '패드립(패륜적 농담)', 같은 반 여학생의 몸 사진을 공유하며 "가슴 크다, 만져보고 싶다" 등의 대화를 하다 불법카메라촬영죄로 처벌 받은 사례 등을 소개했다.

15분 정도의 짧은 강연이었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곳곳에서 "세상에"와 같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강의 듣기 전 농담 삼아 '청심환 드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적나라하게 준비하거든요. 부모들은 아이들 문화를 전혀 모릅니다. 우리 아이도 언제든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예방만 잘해도 학교 폭력 상당 수를 막을 수 있어요." 박 팀장의 말이다.

박진호 팀장이 정리한 학교 폭력 대표 유형. 박 팀장은 학부모가 이 유형만 잘 숙지하고 있으면 아이들의 학교 폭력을 예방하기 수월하다고 말한다. 자료 서초경찰서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1학기 전국 초·중·고교 학폭위 심의 건수는 모두 9796건이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원격수업을 진행한 2020년 8000건대로 줄었지만, 대면 수업이 재개된 2021년 다시 1만 5000여건으로 늘었다.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한 강남 3구 역시 지난해 학교 폭력 접수 건수가 전년보다 2배 가까이 폭증했다. 경찰은 비상 대책을 고민했고, 가정에서 이뤄지는 예방 교육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에 서초서 SPO팀은 2달 넘게 생생한 사례 중심의 강의안을 준비했다. 지난 한달간 이어진 교육에는 관내 학부모 1900여명이 참여했다.

서초경찰서 학교전담경찰관 박진호 팀장이 학생들 앞에서 강연하는 모습. 새 학기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교 폭력 예방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박 팀장은 ″강연을 듣는 사람이 아이들이다보니 눈높이에 맞춘 교육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사진 서초경찰서

장기적인 교육 효과는 지켜봐야겠지만, 당장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강의를 들은 한 고등학교 교사는 "남학생 수만 1200명이 넘는 큰 학교라서 사고도 잦다. 지난해 16건의 학교 폭력 신고가 접수됐다. 그런데 교육 덕분인지 올해는 아직 신고가 한 건도 없었다. 교육을 들은 학부모들이 가정에서 많이 조심시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교육안 준비에 앞장선 박 팀장은 교육부로부터 학교 폭력 예방 표창장을 받기도 한 베테랑이다. 그런 그의 철학 중 하나는, 학부모들의 태도 변화가 진정한 학교 폭력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 말만 듣고 무조건 사건을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나 법정 싸움으로 가져가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아이들이 부모에게 사실을 다 말하는 걸 꺼리는 경우도 많아요. 그리고 처벌이 된다 해도 마음의 상처가 낫지 않죠. 승자 없는 게임일 수 있습니다."

또한 박 팀장은 여전히 '진정한 사과와 화해를 통한 재발방지'를 강조한다. 3년 전 경험 때문이다. 당시 3개 패로 갈라진 아이들은 온라인상에서 서로를 헐뜯으며 학교 폭력을 가했다. 이를 안 한 아이의 부모는 다음날 붙같이 화를 내며 학폭위를 요구했다. 그러나 박 팀장은 "학부모님 자녀도 가해 사실이 있다"고 설명하고, 아이를 불러 가해 학생으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부터 받을 수 있게 했다. 가해 학생은 박 팀장 지도에 따라 100줄이 넘는 반성문을 3번 써서 SNS에 올렸다. 결국 오해가 풀리며 아이들 모두 무사히 학교를 졸업했다. 학폭위가 열렸다면 연루 학생만 10명이 넘어갔을 큰 사건이었다.

그는 "인근에 법조타운도 있어선지 법정 싸움까지 가기도 너무 쉬운데, 저는 오히려 '가장 중요한 건 내 아이가 상처 받지 않고 끝나는 것'이라고 부모들을 설득합니다. 지루한 싸움 동안 아이들이 계속 상처를 받거든요." 박 팀장의 조언에 법조인 학부모가 마음을 바꾸기도 했다고 한다.

서초서는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학부모 학교 폭력 예방 교육을 추가로 진행할 예정이다. 박 팀장은 "학부모 대상 교육이 더 활성화돼야 합니다. 한순간의 잘못으로 학생들 인생에 평생 오점이 남지 않게 하려면 어른들이 먼저 나서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신혜연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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