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10m 뒤서 날아온 '은색 통'…"범행 수분 전 현장 도착"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를 노렸던 폭발물 테러의 충격파가 일본 사회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선거 지원 연설 중 총격 테러로 사망한 지 불과 9개월 만에 또 현직 총리가 테러 위험에 직면하면서다.
일본 경찰은 16일 사건 현장에서 확보한 폭발물을 근거로 범행에 쓰인 도구가 쇠파이프 폭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체포된 기무라 류지(木村隆二·24)를 조사하고 있다. 교도통신은 기무라 소지품에서 칼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기시다 총리는 사고 다음 날인 이날 총리 관저에서 “민주주의 근간을 이루는 선거에서 폭력적 행위가 자행된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범행을 비난했다.
앞서 15일 오전 11시 30분경 오사카 남쪽 와카야마(和歌山) 현에 있는 사이카자키 항구를 찾은 기시다 총리 뒤편으로 1m도 채 되지 않은 곳에 폭발물이 떨어졌다. 기시다 총리는 현장에 있던 경호원과 어부 2명의 발 빠른 대처에 무사했다.
총리 10m 뒤에서 날아온 ‘은색 폭발물’…50초 뒤 쾅
기시다 총리는 오는 23일 예정된 와카야마 중의원 보궐선거 지원 연설을 위해 이날 오전 이곳을 찾았다. 항구에 도착한 기시다 총리는 어민들을 만나 현지 특산품인 새우를 먹고 연설장으로 이동했다. 기시다 총리의 연설 예정 시간은 11시 40분. 자리엔 약 200명의 청중이 몰려 있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11시 30분경 은색 통 하나가 청중 사이에서 기시다 총리 쪽으로 날아들었다. 기시다 총리는 놀라 뒤를 돌아봤고, 경호원은 재빨리 폭발물을 발로 쳐내면서 들고 있던 방패 모양의 보호 장비를 펼쳐 기시다 총리를 대피시켰다.
경찰보다 어부가 빨랐다
그런데 기시다 총리로부터 약 10m 떨어진 거리에 있던 용의자 기무라를 순식간에 제압한 건 현장에 있던 어부들이었다. 현장 참석자들이 올린 영상 속에선 낚시 조끼에 빨간 옷을 입은 한 어부가 용의자를 붙잡고 팔로 목을 감아 도망가지 못하게 제압하는 모습이 담겼다. 기무라 제압에 나선 다른 어부는 68세로 알려졌다. 이들 어부가 용의자를 붙잡으며 막는 사이 경호원과 경찰들이 뛰어들어 기무라를 바닥에 눕혀 현장에서 체포할 수 있었다. 기무라를 제압한 어부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성이 뭔가를 던지고 배낭에서 무언가 또 꺼내려 해 붙잡았다”고 말했다. NHK는 이 은색 통이 날아든 지 약 50초 만에 폭발음이 들렸다고 전했다. 이날 폭발에도 불구하고 현장에 있던 경찰 1명이 가벼운 부상을 입었고, 현장에 있던 70대 남성이 경상을 입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질 정도로 피해가 적었다.
경찰 ‘쇠파이프 폭탄’에 무게
이날 현장에선 은색 통으로 보이는 폭발물 1점도 압수됐다. 일본 경찰은 사건 폭발물 처리반을 동원해 분석에 들어갔다. NHK는 압수된 폭발물은 끝부분에 도선 같은 것이 나와 있다고 전하면서 쇠파이프 폭탄일 가능성이 높다는 경찰 관계자 말을 전했다.
쇠파이프 폭탄은 도화선을 이용해 내부에 있는 화약이 터지도록 하는 것으로, 목격자들은 기무라가 ‘라이터에 불을 붙이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는 증언도 했다. 실제로 경찰은 용의자로부터 라이터를 압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이니치 신문은 용의자 가방에서 범행에 쓰인 것과 비슷한 통 여러 개가 발견됐다고도 전했다. 직접 폭발물을 제조했을 가능성이 높단 뜻이다. 경찰은 기무라의 가택도 수색했는데 폭발 위험성을 고려해 인근 주민을 대피시켰다. NHK는 경찰이 가택 수색을 통해 휴대전화와 컴퓨터, 화약으로 보이는 물건과 공구류를 압수했다고 전했다.
요미우리TV는 이날 지역 어업협회가 공개한 CCTV(폐쇄회로TV)를 근거로 기무라 용의자가 폭발물을 던지기 수분 전 범행 장소에 도착했다고 전했다. 기무라로 보이는 인물이 화면에 포착됐는데, 오전 11시 18분경 연설 장소로 걸어가는 모습이 찍혔다. 요미우리TV는 기시다 총리가 탄 차량이 현장에 도착한 시점은 오전 11시 17분이라고 전하며, 폭발물이 날아든 시각이 오전 11시 25분경인 점을 고려하면 용의자가 불과 사건 몇분 전 현장에 도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된 기무라는 “변호사가 와야 이야기하겠다”며 묵비권을 유지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기무라의 최근 행적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9월 효고(兵庫) 현 가와니시(川西) 시의회 시정보고회에 참석해 시의원에게 시의원 보수를 묻기도 했다. 당시 행사엔 유권자 약 70명이 참석했다. 시의회 관계자는 “20대 청년의 참가가 드문 일로 정치에 관심이 많은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폭발물 테러 사건으로 일본에선 경호 문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아베 전 총리 피격 사건 때와 동일하게 길거리 선거 지원 연설 중 벌어진 사건이기 때문이다. 아베 전 총리 사건으로 일본 경찰청은 선거 연설이 잦은 곳에 대해선 현 경찰과 경찰청이 합동으로 현장을 확인하는 예비 심사를 한다. 경호 경비계획도 작성하는데, 이번 사건이 발생한 와카야마는 연설이 잦은 곳이 아니라서 예비심사 절차는 없었다고 NHK는 전했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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