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9년... '기억'하기 위해, 군산 시민들이 직접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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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향숙 기자]
▲ 기억공간속 헌화 지나가는 시민들이 데이지꽃으로 헌화했다 |
ⓒ 박향숙 |
세월호 참사 9주기 기억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 중 '살맛나는 민생실현연대' 회원(문규옥 사무국장) 한 분이 밤늦은 시간 학원 문을 노크했다. 세월호 기억식 전단지, 노란리본 사슬키링과 각종 스티커를 들고서 올해도 변함없이 추모식을 한다고 했다.
행사에 쓰일 재료들을 만드는 것만 해도 쉽지 않은 일, '살림은 하시면서 활동 하시죠?'라고 농담을 던지니 '그럼요, 부부가 함께 돕지요'라고 답했다. 올해도 그렇게 세월호를 기억하는 공간 속으로 따라 들어갔다.
"이렇게라도 함께 하는 기회가 있어 마음이 편해지네요"
군산 말랭이마을 2년차, 작년 4월 16일에는 책방 난간에 노란 풍선달고, 어린 초등학생들과 세월호에 관한 그림 그리기, 동화책 읽어주기 등으로 그날을 함께 기억했다. 올해는 다른 모습으로 만나고 싶어서 함께 거주하는 한복공예 이현미 작가(아올팀 단장)에게 속마음을 얘기했다.
"작가님, 올해가 벌써 세월호 참사가 9년째네요. 우리 말랭이 방문객들과 함께 기억할 수 있는 작은 활동 고민해봐요. 책방에서는 그림과 짧은 시로 '시화 캔버스 그리기'를 할까 해요. 그리고 체험활동에 따른 수익금은 적더라도 기부금으로 보내고요."
"좋아요. 한번도 주도적으로 해 본 적이 없어서 걱정이지만 함께라면 하고 싶어요. 저는 노란색 한복천으로 열쇠링을 만드는 체험, 그리고 양파물로 손수건을 염색해서 노란 손수건을 만드는 활동을 준비할게요. 이렇게라도 함께 하는 기회가 있어서 마음이 편해지네요."
말랭이마을의 '막걸리 체험장'은 전국에서 방문객이 찾아와 유명세를 타고 있다. 3월부터 그 옆에 <다시 봄날>이란 공간을 열어서 어린이 가족을 위한 시화 캔버스 만들기 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 말랭이마을의 세월호기억공간<다시봄날> 한복공예 이현미작가의 노랑 한복천 열쇠고리체험지도 |
ⓒ 박향숙 |
세월호를 기억하는 일을 해보자는 소소한 두 사람의 의기투합으로 지난 금요일(14일)을 시작했다. 이현미 작가는 한복 키링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본 재료를 준비하면서 본뜨기, 천 자르기, 바느질하기, 뒤집기, 다림질하기 등을 수십 번 했다. 또 한밤 중에 양파 껍질을 삶아서 하얀 손수건을 노란색으로 수십 번 염색했다. 수량을 조금만 준비해도 된다고, 어서 가서 쉬라고 해도, '체험활동을 준비하는 데 너무도 보람을 느낀다'고 걱정하지 말라고만 했다.
토요일(15일) 오후 군산의 옛 시청 앞에서는 시민과 학생들이 모여서 '세월호 9주기 기억식'에 참여, 세월호의 진실을 알아내고, 희생자 가족들의 상처를 보듬는 일에 앞장 섰다. 문규옥 사무국장의 말에 따르면, 작년 8주기 기억식을 진행하며 만나게 된 사람들과 함께 '세월호 군산 기억모임'을 만들었다고 한다.
▲ 세월호 관련 사진 전시 군산청소년들이 직접 준비한 사진전시회 |
ⓒ 박향숙 |
기억식 현장에는 안전교육 심폐소생술 체험, 세월호 리본과 풍선 나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편지 쓰기, 캘리그라피 엽서 나눔, 한국시낭송, 차 나눔 등의 부스를 설치하였다. 오고 가는 군산 시민들은 기억꽃(데이지 꽃말 : 평화, 새로 거듭남, 희망)과 세월호 리본 모양의 흰 천에 먼저 헌화를 하며 사전 행사를 이어갔다.
기억식에서는 노래패 놀자 공연, 류지정 작가의 캘리 대평 퍼포먼스 등이 있었는데 이때 흘러나온 음악에서 세월호 어머님들이 아이들 이름을 부르는 순간이 있었다. 기억식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함께 계속 울었다.
곧이어 4시 16분에 시민들의 묵념, 세월호를 기억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낭송, 띄움과 둥당애 분들의 '희망의 노래' 공연 등이 이어지고, 기억식을 마무리했다. 세월호 조형물로 준비한 '포토존'으로 세월호 관련 20여 점의 사진을 전시하기도 했다.
우리가 꼭 잊지 않고 기억할게
해마다 이날이면 신묘하게 날씨도 비에 젖는다. 이슬비가 내려 '말랭이까지 올 방문객이 현저하게 줄겠다'라고 생각하면서 체험활동 재료들을 꺼내놓고 사람들을 기다렸다. 첫 번째 손님으로 가까운 지인들이 찾아와서 한복작가의 마음을 설레게했다. 상냥한 말씨와 미소로 한복천 열쇠고리 만드는 법을 설명하는 그녀의 모습에 담긴 진심,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고마웠다.
▲ 군산시민들이 준비한 희망의 세월호 기억공간 오고가는 수 많은 분들이 함께 기억공간을 희망으로 물들였다 |
ⓒ 박향숙 |
사람마다 기억의 공간은 모두 다르다. 크기도 모양도 지속성도 색깔도 모두 다르다. 그런데 세월호와 같은 큰 참사를 기억하는 공간은 다를 수가 없다. 아마 어쩌면 다르면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무거운 추를 얹혀놓는지도 모른다. 그날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라도 살아있는 자의 부끄러운 양심을 고백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9년 전 4월 16일 오전, 학부모교육이 있어서 교육청을 방문하던 길에 방송으로 보았던 세월호 참사. 나는 바다를 바라볼 때마다 그때의 떨림과 무서움, 슬픔이 여전하다. 어디 나 혼자뿐이던가. 대한민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가.
주말 동안 체험 활동을 통해 얻은 수익은 군산의 시민단체를 통해 세월호 기억식 단체에 기부했다. 비록 크지 않은 금액일지라도, 주말 동안 말랭이 마을에 찾아와 함께 세월호의 아픔과 슬픔에 공감하며 체험활동에 참여한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오늘 하루 저 높은 하늘을 바라보자. 어제처럼 오늘도 회색빛과 안개가 가득한 낮 하늘 어디에서 노랑 나비들이 날아오는지, 어둔 밤 하늘 어디에서 봄날 새순 돋듯 푸른 별이 빛나는지 두 눈 크게 뜨고 바라보자. 그들에게 약속하자. '우리가 꼭 잊지 않고 기억할게. 우리가 꼭 진실을 밝히는 횃불이 될게'라고 두 손 꼭 맞잡고 약속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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