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장근석, '미끼'로 찾은 자신감
"나의 고정적인 이미지가 스스로를 갉아먹는 느낌이었다. 철저하게 부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이었다"
배우 장근석이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시리즈 '미끼'를 선택한 이유이자, 군 제대 후 복귀까지 5년이란 시간이 걸린 배경이다. '미끼'는 유사 이래 최대 사기 사건의 범인이 사망한 지 8년 후, 그가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이를 둘러싼 비밀을 추적하는 범죄 스릴러로, 장근석의 연기와 이미지 변신으로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징근석은 과거에 악덕 기업의 편에 서 잘나가던 변호사 출신이었지만, 한 사건으로 인해 형사가 된 구도한 역을 맡았다. 구도한은 폐허가 된 눈빛으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아역배우 출신의 꽃미남이라는 테두리에 갇힌 자신의 모습이 환멸스러웠다는 장근석은 대중에게 새로운 걸 보여주기 위해 구도한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군 제대 후 다음 작품 만큼은 지금까지의 장근석과 전혀 연관성 없는 접근이 필요하다 고민하다 이렇게 시간이 길어질 지는 몰랐어요. '미끼'의 가제가 '범죄의 연대기'였는데 제목부터 장근석스럽지 않아서 끌렸어요. 그래서 읽어봤더니 지금까지 읽었던 장르물과는 아예 다른 인상이더라고요. 장르물 자체가 저에게는 기회가 없었고, 대본도 잘 읽혀서 감독님을 만나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다행히 포기하지 않고 만난 게 '미끼'죠."
변호사 출신의 형사는 흔치 않은 설정이다. 형사로서의 직감을 발휘하며 사건을 따라가면서 변호사의 기질이 번뜩 스치는 장면들이 구도한을 평범한 형사가 아님을 말해준다.
"내면에는 형사와 변호사의 두 개의 캐릭터가 존재하고 있었어요. 과거의 자기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했다면 지금의 구도한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렇다고 과거 변호사였던 감각을 모두 버렸을 거란 생각을 하진 않았고요. 그래서 과거의 모습은 숨겨놓은 거라 설정했어요. 그런 모습을 어떻게 하면 설득력 있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지난 1월 27일 6개의 파트로 구성된 시즌 1이 공개된 후 지난 7일 파트 2가 금요일마다 시청자들과 순차적으로 만나고 있다. 장근석은 치열한 고민과 함께 구축된 구도한을 보며 스스로 만족감을 느꼈다.
"구도이 플랫하고 절제돼 있는 캐릭터다 보니, 이 친구가 왜 이런 삶을 살게 됐는지 배경과 이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초반에는 구도한의 배경이 전혀 서술돼 있지 않았거든요. 제가 이 캐릭터 되기 위해서는 의문점이 없어야 했기 때문에 작가님과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공개 후 완성될 걸 보니 지금까지 제가 보낸 시간이 허송세월은 아니었구나 싶었어요. 고민했던 흔적들이 잘 투영된 것 같더라고요. 저의 모습은 제가 알잖아요."
실제로 장근석은 약 8개월의 촬영 기간 중, 3시간 이상 잠을 잔 적이 없었다. 촬영장 뿐 아니라 집에서도 구도한의 긴장감을 유지해,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구도한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잘 해내고 싶은 간절함 때문이었다.
"촬영 전날에도 구도한의 표현방식이 절제돼야 한다는 걸 인식하려고 노력했어요. 드라마를 순차적으로 찍지 않으니 지난 번 텐션을 메모하고 분석하길 반복했고요. 그러다 보면 잠이 안 오더라고요. 촬영장에서는 극 초중반까지는 구도한의 기운을 유지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스태프들과는 매일 보니까 그들의 기운과 합도 중요했거든요. 나중에는 그래도 장근석과 구도한이 반반인 모습으로 지낸 것 같아요."
구도한은 장근석이 데뷔 후 처음으로 수염을 기른 와일드한 모습으로 이목을 끈 작품이기도 하다. 수염을 기르자고 제안했던 건 다름 아닌 김홍선 감독이었다.
"이전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장치가 뭐가 있을까 고민했지만, 단순히 남자답게 보이려고 결정한 쉬운 트릭은 아니었어요. 촬영 전에 감독님과의 술자리에 면도를 안 하고 갔는데 그 모습이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때 캐릭터를 준비하고 있던 터라 피곤해 보이기도 했는데 그게 구도한과 어울리는 분위기라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파트2가 다 공개되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장근석. 그는 이야기의 힘과 김홍선 감독이 가진 집요함과 연출력을 믿고 있다.
"제가 아는 김홍선 감독님은 장르물만 특화된 분이 아니라는 겁니다. 제가 30년 넘게 배우 생활하면서 이렇게 평범하지 않은 앵글은 처음 봤어요. 본인은 평범한 앵글은 싫다고 하더라고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어려워도 참신한 걸 추구하는 분이었어요. 그게 김 감독님의 장기라고 생각해요. 이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불친절하고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 모든 게 의도가 된 것들이니 기대해 주세요."
자신을 깨부수는 작업을 마친 장근석은 이제 조금 더 공격적으로 새로운 캐릭터와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제가 마초병에 걸렸기 때문에 구도한을 한 건 아니었어요.(웃음) 저는 꽃미남, 로맨틱한 이미지를 꺾어보고 싶었기 때문에 선택한 거였어요. '미끼'는 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작품이네요."
올해로 데뷔 한 지 31년차가 된 장근석. '아시아 프린스'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지금의 자리에 올라왔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그런 시간들이 오히려 자신을 지치지 않고 연기에 빠져들 수 있게 만들었다고 믿는다.
"오랜 시간 배우 생활을 하면서 느낀 건 모든 삶에는 굴곡이 있다는 겁니다. 한 우물을 오래 판다고 해서 그 분야의 최고가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변수가 있더라고요. 변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좋지 않은 결과가 나타나더라고요. 저의 30년은 그랬어요. 그런데 저는 변수가 있기 때문에 인생이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한결같이 좋기만 하고 매너리즘에 빠져있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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