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근 아낀 것? 혹은 못뛴 것? KCG의 미스터리
[이준목 기자]
오세근(안양 KGC 인삼공사)은 KBL 최고의 토종빅맨이다. 어느덧 30대 중반의 노장이 되었지만 노련미가 더해지며 경쟁력은 여전하다. 봄농구 경험도 풍부하고 큰 경기일수록 강해지는 면모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올시즌 4강 플레이오프 들어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벤치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고양 캐롯이 반격에 나서며 안양 KGC를 잡았다. 4월 15일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2-23 SKT 에이닷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캐롯은 KGC를 89-75로 제압했다. 13일 1차전에서 프로농구 역대 최다점수차인 56점차(43-99)로 맥없이 참패하며 각종 불명예 기록을 세웠던 캐롯은, 이틀만에 설욕에 성공하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1승 1패가 된 두 팀은 경기 장소를 경기도 고양체육관으로 옮겨 17일 오후 7시 3차전을 치른다.
양팀의 4강전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나 마찬가지였다. 정규리그 5위 캐롯은 6강 플레이오프에서 4위 울산 현대모비스와 5차전까지 치르는 접전 끝에 4강에 올라왔다. 주포 전성현의 컨디션 역시 정상이 아니다.
반면 정규리그 1위 인삼공사는 전력-정규리그 상대전적(4승 2패)에서 모두 우위인데 4강에 직행했기 때문에 체력 면에서도 캐롯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실제 1차전에서 기대 이상의 낙승을 거둘때만 하더라도 KGC의 싱거운 스윕으로 시리즈가 일찍 끝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하지만 2차전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됐다. 1차전에서 나란히 부진했던 이정현(32점, 3점슛 4개)과 디드릭 로슨(24점 15리바운드 5어시스트)의 원투펀치가 56점을 합작하며 펄펄 날았다. 2년차 가드 이정현은 3쿼터에만 무려 17점을 쏟아부었고, 자유투 10개를 얻어내 100% 성공시킨데 이어 수비에서도 몸을 사리지않으며 경기 내내 최상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여기에 김진유(2점 6리바운드)가 투지넘치는 수비와 허슬플레이 등 궃은 일에서 팀에 공헌했고, 한호빈(11점, 3점슛 3개)은 적재적소에 외곽슛을 터뜨리며 식스맨들의 지원까지 뒷받침됐다. KGC는 캐롯의 강한 수비 압박에 고전하며 턴오버를 무려 19개나 저지르면서 자멸했다.
캐롯의 투혼이 돋보였지만 KGC도 반격할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KGC가 캐롯에게 가장 확실하게 우위를 점하는 포지션이 오세근이 있는 4번이다. 확실한 엘리트급 토종빅맨이 없는 캐롯은 오세근을 제어할 카드가 마땅치않다.
오세근은 2차전에서 14점 3리바운드 2어시스트를 올렸다. 자유투 4개와 3점슛 2개를 시도하여 모두 적중시키는 등 80%(4/5)에 이르는 야투 성공률을 기록할만큼 효율성도 뛰어났다. 문성곤이 초반부터 파울트러블에 걸리고 변준형이 캐롯 가드진에 고전한 KGC가 그나마 경기 중반까지 팽팽한 균형을 유지할수 있었던 것은, 오세근과 오마리 스펠맨의 활약 덕분이었다.
그런데 김상식 감독은 정작 승부처인 후반에 오세근을 거의 기용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캐롯과 KGC의 점수차가 크게 벌어지며 승부가 결정적으로 기운 것은 오세근이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KGC는 60-72로 끌려가던 4쿼터에 다른 주전들을 모두 기용했으나 오세근만은 여전히 투입하지 않았다. 결국 KGC는 막판까지 별다른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2차전에서 오세근의 출장시간은 불과 19분 38초에 그쳤다.
지난 시즌까지 KGC의 지휘봉을 잡았던 김승기 캐롯 감독은, 이날 KGC가 오세근을 적극 활용하지않은 것에 대하여 "고마웠다"며 의미심장한 멘트를 남겼다. 김 감독은 "오세근의 오늘 경기 초반 컨디션이 상당히 좋아보였고 위력적이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오세근을 적절하게 활용하지 못한 것이 이날 승부에서 캐롯에 유리하게 작용했음을 적장도 인정한 것이다.
반면 김상식 KGC 감독은 "오세근이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교체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김 감독의 설명은 뭔가 석연치않았다. 오세근은 35세가 된 올시즌에도 무려 52경기 평균 27분 21초를 소화하며 13.1점 6.4리바운드 2.2어시스트로 맹활약한바 있다.
KGC는 정규리그 1위로 4강에 직행하는 어드밴티지를 누린데다 지난 1차전에서는 팀이 큰 점수차로 낙승을 거두며 오세근의 출장시간은 8분 45초(2점 6리바운드)밖에 되지 않았다. 이처럼 충분한 로테이션과 관리를 받고 있는데도 체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힘들다. 오세근의 급격한 플레이오프 출장시간 감소에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는 이유다.
KGC 입장에서 가장 좋지않은 시나리오는, 오세근이 혹시 부상 등으로 긴 시간을 소화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경우다. 캐롯의 주포인 전성현 역시 돌발성 난청 증상으로 플레이오프에서는 로슨과 이정현에게 1,2 옵션 자리를 내주고 조연으로 물러난 상태다. 오세근 역시 커리어 내내 탁월한 기량에 비하여 잔부상이 많았던 케이스이었기에 철저한 관리는 필수였다.
KGC의 약점은 압도적인 전력에 비하면 승부처에서 믿고 맡길수 있는 해결사가 다소 부족하다는 것이다. 스펠맨의 득점력은 뛰어나지만 멘탈적으로 기복이 있고, 변준형은 캐롯 가드진을 상대하는데 어려움을 겪고있다. 2차전에서도 드러났듯이 캐롯과의 승부가 접전으로 갔을 때 KGC에서 가장 확실한 차이를 만들어낼수 있는 카드는 역시 오세근이다. 만일 오세근이 20분 이상도 안정적으로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몸상태에 뭔가 문제가 있다면, KGC의 플레이오프 통합 우승에는 빨간 불이 켜진다.
오세근의 컨디션 문제가 아니라면, 단순히 김상식 감독의 '전술적 판단미스'였을 가능성도 있다. 이날 캐롯은 스몰 라인업을 내세운 빠른 공수전환으로 상당히 재미를 봤다. 김상식 감독이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수비부담과 미스매치를 고려하여 오세근을 제외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캐롯이 원하는 시나리오대로 경기 흐름을 맞춰주는 패착으로 이어졌다.
김상식 감독은 올해 정규리그에서 무난한 경기운영과 로테이션으로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라는 대업을 이뤄냈다. 하지만 프로 사령탑으로서 봄농구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다. 단기전은 섣부른 로테이션이나 여유보다는 과감한 승부수와 총력전이 요구된다.
KGC로서는 전력과 체력의 우위를 활용하여 지친 캐롯을 몰아붙여 조기에 승부를 결정지을 필요가 있었지만, 2차전을 석연치않게 내주며 오히려 상대의 자신감만 다시 살려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나비효과가 앞으로의 승부에도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오세근은 남은 4강 PO시리즈에서 '게임체인저'로 돌아올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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