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in전쟁사]美 기밀유출 논란에 재조명받는 '첩보전'…"고대 이집트부터 시작"
SNS 등 사이버공간까지 확대되는 첩보전
편집자주 - [뉴스in전쟁사]는 시시각각 전해지는 전 세계의 전쟁·분쟁 소식을 다각적인 시각으로 알려드리기 위해 만들어진 콘텐츠입니다. '뉴스(News)'를 통해 현재 상황을 먼저 알아보고, '역사(History)'를 통해 뉴스에 숨겨진 의미를 분석하며, 다가올 가까운 미래의 '시사점(Implication)'을 함께 제공해드리겠습니다. 일요일마다 여러분 곁으로 찾아가며, 40회 이후 책으로도 출간될 예정입니다.
최근 미국 국방부와 중앙정보국(CIA) 등의 기밀정보로 추정되는 문건들이 사회관계서비스망(SNS)을 통해 대거 유출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전세계적으로 화제가 됐습니다. 미국 정부가 중국이나 러시아 등 적성국가 정보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유럽 등 동맹국들의 내부 정보와 지도자들을 도청, 감청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국제적으로 파장이 커졌죠.
특히 해당 정보가 온라인 게임을 하던 미 군인에 의해 확산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각국 정보기관들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게임용 채팅 어플리케이션인 '디스코드(Discord)'를 통해 해당 문건이 전 세계로 순식간에 확산되면서 수습이 어려워졌기 때문인데요.
첩보요원들이나 공식적인 외교채널만이 아니라 전 세계로 퍼져있는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 등을 통해 정보가 얼마든지 유출될 수 있다는 게 알려지면서 언제, 어디서 유출사고가 날지 알기 어려워졌기 때문이죠. 이번 시간에는 이 복잡 미묘하게 펼쳐지는 첩보전의 세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뉴스(News) : 디스코드 비공개 채팅방에서 시작된 기밀문건 유출
먼저 관련 뉴스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정부 기밀 문건을 게임 채팅앱인 디스코드에 처음 퍼뜨린 것으로 알려진 용의자가 20대 미 주방위군 소속 군인으로 알려지면서 충격을 주고 있는데요.
1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따르면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기밀문건이 최초 유출된 디스코드 대화방의 운영자인 잭 테세이라를 체포했습니다.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방위군 공군 내 정보관련 부서에서 근무하는 군인으로 알려졌죠. 현재 미 사법당국에서 테세이라를 상대로 기밀 문건의 유출 목적과 경위, 공범 여부, 문서 조작 등에 대해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그는 디스코드 게임 채팅방 중 하나를 운영하던 방장으로 같이 게임을 하던 친구들에게 자신이 가진 정보를 과시하고자 일부 문건들을 공개했던 것으로 알려졌죠. 이후 여러 경로를 통해 기밀 문건이 다른 채팅방과 SNS 등에 확산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후 이 문건들은 디스코드 공개 서버에서 발생한 게이머들간의 말다툼 와중에 공개채널에 퍼지면서 세간에 알려지게 됐다고 하는데요.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의 조사연구단체인 벨링캣의 조사 결과 해당 기밀문건은 한 게임의 공개 채팅 서버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의 피해 상황을 두고 친러시아 게이머들과 반러 게이머들이 논쟁이 붙었고, 한 게이머가 비공개 채널에 들어가있던 일부 기밀문건들을 공개하면서 퍼졌다고 합니다.
해당 기밀 문건들은 최초 유출 이후 한 달 정도 뒤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로 알려진 '포챈(4chan)'에 나돌면서 더 빠르게 확산됐다고 하네요. 대부분의 내용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첩보 내용들이었고, 일부 내용은 미국 정보 당국이 도청이나 감청 등을 통해 취합한 동맹국들에 대한 내용이었죠. 미 당국이 적성국가 뿐만 아니라 동맹국의 정보 취합에도 도청이나 감청 등의 방법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비판여론이 커지고 있습니다.
◆역사(History)1 :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눈' 조직부터 시작된 첩보전의 역사이렇게 전 세계에 걸쳐 치열하게 전개되는 첩보전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독일 베를린의 '스파이박물관(German Spy Museum)'에 따르면 첩보전의 개념은 인류 역사의 시작과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수천년전인 고대 이집트에도 '파라오의 눈(the eyes of the Pharaoh)'이라 불리던 첩보원 조직이 존재했을 정도라고 하네요.
성경에는 좀더 자세한 고대 첩보원들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구약성경 여호수아기에는 기원전 15세기 모세의 후계자로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였던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공격할 때, 정탐꾼 2명을 파견했다는 내용이 등장하죠. 이들은 여리고성의 주민인 라합이란 여인의 도움을 받아 스파이 활동을 마치고 무사히 성밖으로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도 수백개 지역국가들이 난립해 경쟁했던 고대 춘추전국시대부터 첩보전이 크게 발달하게 되는데요. 전략의 교과서로 알려진 '손자병법(孫子兵法)'에서 간첩의 종류를 5개로 나눠 설명할 정도로 이미 세분화돼 있었습니다. 손자병법 13편인 '용간(用間)'편에 따르면 간첩은 향간(鄕間), 내간(內間), 반간(反間), 사간(死間), 생간(生間)으로 분류된다고 합니다.
향간은 현지 주민으로 구성된 간첩조직, 내간은 적국의 관료들을 포섭해 만든 간첩조직을 뜻하며 반간은 이중간첩, 사간은 허위정보를 적 간첩에게 유포시키는 것이며 생간은 직접 본국에서 파견한 간첩이 정기적으로 보고하는 형태를 뜻합니다.
중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무수히 많은 첩자들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요. 한국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첩자는 고구려 장수왕의 밀사로 알려진 '도림(道琳)'이란 인물입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도림은 승려로서 바둑을 매우 잘뒀다고 하는데, 당시 바둑을 매우 좋아하던 백제 개로왕이 그를 국사로 임명하면서 국정을 좌우하게 됐죠.
이후 그는 개로왕에게 각종 토목공사를 일으킬 것을 권해 백제의 국력을 낭비하게 했으며, 이로인해 백제의 민심이 크게 악화됩니다. 도림의 작전이 성공해 백제가 혼란해진 틈을 타 장수왕은 서기 475년 백제의 수도인 한성을 공격해 함락시키고, 개로왕은 이 전투에서 신하들의 배신으로 죽음을 맞게 됐죠.
이후 현대적 개념의 조직적인 대규모 첩보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6~17세기 유럽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스파이라는 단어도 이때부터 많이 쓰이기 시작했는데요.
온라인 어원사전(Online Etymology Dictionary)에서 '스파이(Spy)'라는 영어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중세 프랑스어 단어인 'espiier'라는 단어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이 단어는 원래 "관찰하다, 염탐하다"라는 뜻으로, 이 단어의 영향은 간첩행위를 뜻하는 영어 단어인 'espionage'에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당시 혼란스러웠던 유럽에서 최고의 스파이로 알려졌던 인물은 영국 엘리자베스1세의 비서관이자 국무장관이었던 프랜시스 월싱엄(Francis Walsingham)이란 인물이라 합니다. 그는 런던부터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첩보요원들을 주요 지역에 촘촘히 파견해 전 유럽에 걸친 정보망을 펼쳐놨던 인물로 현대 첩보조직의 기반을 만든 인물로 유명하죠.
그는 1586년, 당시 엘리자베스 1세의 왕좌를 위협하고 있던 여왕의 5촌 조카, 메리 스튜어트(Mary Stuart)의 반역혐의 증거를 찾기 위해 그녀를 함정에 빠뜨릴 계략을 짭니다. 당시 스페인의 국왕인 펠리페 2세는 영국과 분쟁 중이었고, 영국 본토를 침공해 엘리자베스 1세를 축출하고 카톨릭교도인 메리를 여왕에 앉히겠다고 공언한 상태였죠.
월싱엄은 메리가 프랑스 대사와 주고받은 밀서를 매수해 확보한 후, 그녀를 반역죄로 체포합니다. 메리는 1587년 2월에 반역죄로 처형되고, 이후 영국과 스페인은 1588년 유럽의 3대 해전 중 하나로 알려진 칼레(Calais) 해전을 벌이게 되는데요. 여기서 무적함대를 잃게 된 스페인은 전성기가 끝나고 이후 국력이 급격히 하락하게 됐죠. 이 전투의 승리 또한 월싱엄이 전 유럽에 깔아두었던 첩보망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역사(History)2 : 은퇴한 첩보원이 탄생시킨 '007 제임스본드' 시리즈이후 전쟁의 규모가 확대되면서 첩보조직 또한 점점 커지게 되는데요. 특히 20세기로 접어들어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각국간 첩보전이 더욱 치열해졌고 이에따라 국가 안보를 위해 타국의 정보를 취득하는 첩보조직과 반대로 타국 첩보원들의 활동을 억제하기 위한 방첩조직이 함께 발전하게 됐습니다.
이 2개 조직을 합쳐 '정보기관(Intelligence Agency)'이라 부르게 됐는데요. 대표적인 조직이 첩보 전문 조직인 미국 중앙수사국(CIA)과 방첩조직인 미 연방수사국(FBI)이죠. CIA는 1947년, FBI는 이보다 앞서 1908년에 창설됐습니다. 이러한 정보기관들은 주로 각국에 파견된 첩보요원들로부터 얻어지는 이른바 인간정보인 '휴민트(HUMINT)', 통신 감청 등을 통해 얻어지는 정보인 '시긴트(SIGINT)', 또한 이미 공개된 정보들을 취합해 얻어지는 '오신트(OSINT)' 등 여러 방면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죠.
2차대전 이후인 냉전시대부터는 이 첩보원들이 미디어를 통해 대중적 인기 또한 얻게 됐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영화 '007 시리즈'에 등장하는 스파이인 코드명 '제임스 본드(James Bond)'입니다. 영화 속의 제임스 본드는 영국 비밀정보부(SIS) 소속 스파이로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데요. 이 작품은 본래 1억부 이상 팔린 소설에서 비롯됐습니다.
이 007 시리즈의 원작자는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이란 인물로 원래 작가가 아니라 실제 2차대전 당시 영국 SIS에서 활동했던 첩보요원 출신 군인입니다. 그는 로이터 통신의 모스크바 주재 통신원으로 근무하다가 1939년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SIS에 소속돼 첩보 및 방첩업무를 맡게 됐다는데요. 전쟁이 끝나고 예편한 뒤 생활비를 벌고자 자신의 경험담을 담아 007 시리즈를 집필했으며, 큰 성공을 거두게 됐다고 합니다.
◆시사점(Implication) : 시공간 경계 사라지는 첩보전의 세계, 단단히 방비해야냉전기 종식 이후 현대의 첩보전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됐습니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오늘날에는 스마트폰이 거의 모든 국가와 지역에 보급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온갖 종류의 정보가 떠돌게 되면서 정보통제가 매우 어려워졌기 때문이죠.
스마트폰에 들어있는 정보를 밖으로 빼돌릴 수 있는 일명 '백도어(Back Door) 칩' 의혹은 미국과 중국간의 패권분쟁에도 큰 영향을 끼쳤는데요. 미국과 영국 등 서방국가들을 중심으로 중국 휴대폰 제조업체인 화웨이 스마트폰의 백도어칩 탑재 의혹이 커지면서 중국 업체들의 5세대(5G) 통신망 사업에 규제가 내려지는 등 외교적 분쟁으로 번지기도 했습니다.
이번 정보 유출건을 계기로 그동안 정보 유출 사각지대로 놓여있던 게임 채팅앱이나 커뮤니티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도 강화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점점 정보유출 수법에서 시공간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고, 첩보전에서는 적도 동맹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된만큼 우리 정보당국에서도 방첩에 더욱 신경을 써야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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