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현실이 더 잔혹? 실화로 쌓아 올린 긴장감

양형석 2023. 4. 1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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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영화 <공모자들>

[양형석 기자]

<접속> <편지> <약속> 등 90년대 후반 한국의 멜로 영화는 두 글자 제목이 유행했다. 이는 멜로뿐 아니라 다른 장르에도 번졌고, 1999년 한국영화 흥행기록을 세웠던 강제규 감독의 <쉬리>와 2001년 800만 관객을 돌파했던 <친구> 역시 두 글자 제목을 사용한 바 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중에서도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나 김한민 감독의 <명량> 등이 짧고 간결한 두 글자 제목이었다.

2010년대 이후에는 제목 뒤에 부제를 붙이는 것이 유행했다. 윤종빈 감독은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로 재미를 본 후 차기작 <군도>에서도 '민란의 시대'라는 부제를 사용했다. 사실 제목 뒤에 부제를 붙이는 것은 할리우드에서도 종종 사용된 바 있다. 특히 마블 히어로 영화들은 속편에 단순하게 '2','3'를 붙이는 대신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앤트맨과 와스프: 퀸텀매니아>같은 부제를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2012년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이 1300만에 가까운 관객을 모은 후에는 제목 뒤에 '~들'이라는 접미사를 붙이는 게 유행했다. 실제로 <감시자들>과 <기술자들>,<내부자들> 등은 '~들'이라는 접미사를 붙여 제목을 지었고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도둑들>보다 불과 한 달 늦게 개봉했던 임창정 ,최다니엘 주연의 범죄스릴러 <공모자들>은 <도둑들>에 이어 '~들'이라는 제목이 유행하는데 도화선 역할을 한 영화였다.
 
 <공모자들>은 관객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주제의 영화임에도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며 선전했다.
ⓒ 씨너스엔터테인먼트(주)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들

<공모자들>은 지난 2009년 중국여행을 떠났다가 아내가 납치돼 장기를 적출 당했던 어느 신혼부부가 실제 겪었던 비극적인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다. 물론 영화로 제작되는 과정에서 많이 각색됐지만 상상만 해도 끔찍한 내용의 사건이 허구가 아닌 실화였다는 사실은 관객들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공모자들> 외에도 현실에서는 '영화 같은 실화'가 많이 발생하는데 이를 모티브로 한 영화들도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2013년 겨울에 개봉해 1100만 감독을 동원했던 양우석 감독의 장편 데뷔작 <변호인>은 군부독재 시대였던 1981년 부산에서 일어난 용공조작사건인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다. 송강호가 연기한 주인공 송우석 변호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만들어진 캐릭터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1980년대 실제 부림사건을 변호한 바 있다.

주연을 맡은 마동석과 윤계상뿐 아니라 진선규, 박지환, 허성태 등 좋은 배우들을 대거 배출했던 액션 코미디 <범죄도시> 역시 2004년에 있었던 금천경찰서의 '조선족 조폭 소탕작전'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다. 물론 주인공 마석도와 장첸을 비롯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주요사건들은 영화적 재미를 위한 허구였다. 작년에 개봉한 2편으로 천만 관객을 모은 <범죄도시>는 오는 5월 이준혁이 빌런을 맡은 3편이 개봉될 예정이다.

2013년에 개봉했던 전도연과 고수 주연의 <집으로 가는 길>은 남편친구의 부탁으로 프랑스로 향하던 주인공이 짐 안에서 대량의 마약이 발견되면서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섬에 있는 교도소에 수감되는 내용의 영화다. 이 역시 2004년 코카인이 담긴 가방을 운반하던 한국인 여성이 프랑스 경찰에 의해 구속돼 교도소에 갇히게 된 실화를 모티브로 제작됐다. 이 사건은 2006년 KBS <추적60분>에서 다뤄지면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2017년에 개봉해 24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도 성공한 영화 <재심>은 2000년에 있었던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응답하라1994>로 스타덤에 오른 후 영화 <히말라야>를 흥행시킨 정우가 박준영 변호사를 모델로 한 이준영 변호사를 연기했다. 여기에 드라마 <미생>과 영화 <동주>로 주가를 올리던 강하늘은 살인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10년을 보낸 현우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코믹연기 전문' 임창정의 거친 마초 연기
 
 임창정의 평소 이미지와 캐릭터를 기대한다면 <공모자들>은 실망스런 영화가 될 수도 있다.
ⓒ 씨너스엔터테인먼트(주)
 
1997년 영화 <비트>와 3집 앨범을 동시에 '대박'으로 이끌며 전성기를 맞은 임창정은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 연예계를 대표하는 만능 엔터테이너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색즉시공>과 <위대한 유산>,<시실리 2km>,<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1번가의 기적> 등 여러 영화에서 보여준 임창정 특유의 짠하면서도 유쾌한 연기는 '배우 임창정'의 트레이드 마크로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렇게 인간적인 코미디 배우로 자리를 잡던 임창정에게 장기밀매 총책 영규 역을 맡았던 <공모자들>은 배우인생의 큰 도전이었다. 실제로 임창정은 <공모자들>에서 그 동안 보여줬던 코믹한 이미지를 완전히 지우고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장기밀매에 나서는 영규 캐릭터를 잘 표현했다(물론 영규처럼 아무리 그럴 듯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해도 현실에서 장기밀매에 가담하는 것은 결코 용서 받을 수 없는 강력범죄다).

<공모자들>을 연출한 김홍선 감독은 흥행을 위한 어설픈 표현과 편집으로 영화의 완성도를 떨어트리느니 표현이 다소 강하더라도 관객들에게 확실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겠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따라서 <공모자들>은 고어물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이 보기엔 표현이 상당히 거칠고 잔혹한 장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공모자들>은 등급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전국 164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공모자들>은 두 번에 걸친 반전을 통해 관객들을 놀라게 하는 영화다. 먼저 영화 중반 장기밀매 총책이었던 영규는 납치한 채희(정지윤 분)의 장기를 적출하지 않고 살려준다(채희는 영규가 생전 형님으로 모셨던 용철의 여동생이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두 번째 반전은 영화 내내 실종된 아내 채희를 애타게 찾던 상호(최다니엘 분)가 장기밀매 브로커였다는 점이다. 상호는 영규가 감옥에 간 영화 엔딩장면에서도 장기밀매 브로커 일을 계속 이어간다.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 지하철역의 장기밀매 광고를 보고 실제 브로커와 접촉하며 <공모자들>의 각본을 쓴 김홍선 감독은 2014년 두 번째 영화 <기술자들>로 256만 관객을 동원하며 두 편 연속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물론 2017년 <반드시 잡는다>와 작년에 개봉한 <늑대사냥>처럼 흥행에 실패한 작품도 있었지만 2019년 스타배우가 나오지 않았던 공포 스릴러 <변신>으로 180만 관객을 동원하는 등 뛰어난 감각과 역량을 가진 감독으로 꼽힌다.

'부드러운 남자' 최다니엘의 반전연기
 
 최다니엘이 보여주는 반전연기는 <공모자들>에서 관객들을 가장 놀라게 하는 장면이다.
ⓒ 씨너스엔터테인먼트(주)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양언니'로 불리는 조감독을 연기하며 주목 받은 최다니엘은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황정음과 사귀고 신세경의 짝사랑을 받는 이지훈 역을 맡아 스타덤에 올랐다. <공모자들>에서는 평범한 보험회사 직원인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장기밀매 브로커로 활동하는 이상호를 연기했다. 영화 속 피해자인 채희 역시 이상호가 타깃으로 지정한 후 몇 년 동안 공 들여 접근한 상대다.

특히 영화에서 아내가 실종된 후 순진한 얼굴로 다급하게 아내를 찾을 때의 연기와 영규에게 정체를 드러낸 후에 보여주는 연기는 상당히 이질적이다. 상호는 보험설계사라는 직업을 이용해 장기가 필요한 사람과 장기적출대상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브로커다. 최다니엘은 <공모자들> 이후 2015년 <치외법권>에서 다시 한 번 임창정과 연기호흡을 맞췄지만 <치외법권>은 전국 34만 관객으로 흥행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공모자들>에서 영규가 짝사랑하는 여객선 매표소직원 유리를 연기한 조윤희는 사실 영화보다는 TV드라마에 더욱 익숙한 배우다. <공모자들>에서 유리는 장기이식수술이 필요한 아버지(최일화 분)를 살리기 위해 중국에서 수술을 받기로 하지만 결국 소득 없이 아버지의 장기만 적출 당하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큰 충격을 받은 유리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병원 옥상에서 투신해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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