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디저트에 담긴 메시지를 맛본다”...기획자와 바리스타, 셰프가 함께 만드는 ‘펠른’ [신기방기 사업모델]

박수호 매경이코노미 기자(suhoz@mk.co.kr), 윤혜진 매경이코노미 인턴기자(economy04@mk.co.kr) 2023. 4. 1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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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오마카세. 25만원이 훌쩍 넘는 하이엔드부터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가성비까지 종류도, 가격도 다양하다. 아직도 스시 오마카세나 우(牛)마카세밖에 모르는 분들이 계시다면 주목. 요즘은 커피와 디저트까지도 코스로 즐길 수 있다.

서울 연남동에 위치한 카페 ‘펠른’에서는 90여분 동안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커피와 셰프가 만든 디저트를 설명과 함께 맛볼 수 있다. 방송인 유재석 씨가 출연했던 방송에 나온 직후에는 4달 치의 예약이 마감됐을 만큼 인기인 카페로, 지금도 여전히 예약 경쟁이 치열하다.

군데군데 테이블이 위치한 일반적인 카페와 달리 펠른은 매장 인테리어부터 여타 카페와 다르다. 길쭉한 공간에 기다란 테이블을 놔 카페보다는 바(Bar)를 연상시키는 공간은, 일행과 바리스타 모두와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며 커피와 디저트를 충분히 즐길 수 있게 한다.

일반적인 카페와 달리 펠른의 내부 인테리어는 바(bar) 형식이다. 바리스타와 마주 보며 커피 내리는 모습을 직접 보고 설명 들을 수 있다. (펠른 제공)
자리에 앉으면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볼 법한 코스 설명서를 볼 수 있다. 이번 코스는 ‘논알코올’ ‘제로드링크’가 테마로, 식전주로 시작해 샴페인, 럼, 위스키로 이어진다. 물론 논알코올이 콘셉트기 때문에 알코올은 없지만 술과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고 한다. 설명서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자 바리스타가 다가와 오늘 진행될 코스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기 시작한다.
코스 설명서를 비롯한 깔끔한 세팅이 자리해 있다. (윤혜진 인턴기자)
이어 식전주를 주는데, 향긋한 루이보스에 석류를 섞었단다. 두 가지의 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달달하면서도 씁쓸한, 독특한 맛을 자아냈다. 식전주 이후로는 음료와 디저트가 함께 나온다.

샴페인이 테마인 ‘위스키 더치 하이볼’은 매장의 시그니처 커피인 ‘위스키 더치’를 이용해 각종 베리와 로즈마리를 더해 시원하고 청량한 맛을 살렸다. 함께 나온 펠른 쁘띠 3종은 휘낭시에, 마들렌, 붓세에 올리브와 절임과일을 곁들였다. 톡 쏘는 듯한 청량한 첫맛에 이어 커피의 씁쓸한 맛이 돌 때쯤 디저트를 맛보면 디저트의 단맛이 조화를 이룬다.

이어진 럼이 테마인 핸드드립 커피는 에티오피아 짐마 지역에서 생산된 원두를 사용한단다. 건자두 같은 녹진한 단맛과 후미에 황설탕 같은 달콤 쌉싸름한 맛이 특징인 이 커피는, 종이 필터가 아닌 스테인리스 필터를 이용해 추출해 오일리한 성분을 커피에 녹여 보디감과 무게감을 더했다. 함께 나오는 커피 캐비어 럼 파이는 한 알 한 알 직접 만드는 커피 캐비어와 실제 럼과 크림을 섞어 만든 럼 크림이 더해진 커피 젤 파이다.

마지막으로 위스키가 테마인 펠른의 시그니처 ‘위스키 더치’ 커피는 위스키 숙성 방식에서 착안한 더치 커피다. 실제 위스키는 들어 있지 않지만 위스키 플레이버를 커피에 녹여, 특유의 우디하면서도 다크초코 같은 맛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코스에서는 스타아니스 훈연으로 스모키한 뉘앙스를 극대화하였으며 실제 위스키를 먹는 것처럼 잔이나 얼음도 위스키용으로 제공한다. 디저트는 펠른 크림 앤 칩스로, 직접 만든 바닐라빈 아이스크림에 귀리 크럼블과 그라노파다노 치즈 칩스를 곁들여, 달달하면서도 고소하고 짭조름한 다양한 맛이 느껴졌다.

지난 2월 시작한 ‘논알콜’ 콘셉트의 디저트 3종과 커피 2종 연출샷. (펠른 제공)
코스를 즐기는 90여분 동안 모든 커피와 디저트가 맛있으면서도 특이해 호기심을 자아내고, 눈과 입이 즐거웠다. 펠른은 현재 연남점, 에스프레소 바, 판교점 3곳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지점마다 모두 다른 커피를 판매한다. 때문에 커피 애호가라면 지점 투어를 하는 것도 재밌을 듯하다.

이런 공간은 누가 만들었을까. 아무래도 바리스타나 F&B 종사자일 것 같지만 펠른의 박성호 대표는 영화를 전공하고 현재 광고 회사를 운영하고 있단다. 우리나라 특유의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대변되는 커피를 빠르게 마시고 소비하는 문화에서 벗어나 “커피를 오랫동안 마시고 경험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는 박성호 대표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인터뷰/ 박성호 펠른 대표
박성호 펠른 대표. (펠른 제공)
Q. 펠른의 이름(상호명)은 무슨 의미인가.

A. 독일어로 ‘방울져 떨어지다’와 ‘진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드립 커피를 내릴 때 커피가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것에서 착안했다. 그 방울이 꼭 진주처럼 보이지 않나. 상호명뿐 아니라 로고 디자인에도 진주의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만들었다. 테이블에 놓인 휴지 고정핀도 진주 모양으로 만드는 등 사소한 것에도 디테일을 느낄 수 있도록 신경 썼다.

사소한 디자인에도 디테일을 담은 세심함이 눈에 띈다. (윤혜진 인턴기자)
Q. 어떻게 커피·디저트 오마카세를 시작하게 됐나.

A. 처음부터 오마카세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빠르게 커피를 소비하는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문화’인데 커피에 집중해 오랫동안 마시고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이런 목적에 맞춰 바 테이블을 고안하게 됐다. 처음에는 드립 커피로 시작했는데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디저트도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커피와 디저트를 함께 선보였는데 반응이 좋아 연남점을 예약제 오마카세로 운영하게 됐다. 최근 커피 오마카세가 여럿 생기고 있는데 3년 전 시작한 펠른이 원조다.

Q. 코스를 바꾸는 주기는 어떻게 되나.

A. 네 달에 한 번 정도의 주기로 바꾸고 있다. 1년에 2~3번이라고 보면 된다. 현재 진행 중인 코스는 올 2월 시작한 코스로, 주제가 ‘논알코올’이다. ‘커피가 술을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기획을 시작했다. 그때마다 시의적절한 키워드를 골라 코스를 기획하는데, 손님들이 펠른의 코스를 경험하며 담고 있는 메시지들을 함께 즐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이번 주제는 ‘논알코올’이며 지난 주제로 ‘다채로운 한국’ ‘커피로 즐기는 세계 여행’ ‘향긋한 휴식’ 등을 다뤘다. 한식 디저트나 꽃의 생애주기 등의 키워드에서 착안한 주제들이다.

또한 펠른은 본래 광고 회사가 모희사기 때문에 펠른의 코스를 개발할 때 광고 회사의 기획자들과 바리스타(펠른에서는 마스터라 부른다, 이하 마스터), 셰프가 협업한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작업하기 때문에 이런 역량을 바탕으로 브랜드 컬래버도 여럿 진행하고 있다. 이 경우 브랜드가 지닌 미션을 커피와 디저트로 스토리텔링해 선보이는 것에 중점을 둔다. 최근 포르쉐나 현대자동차 등과 컬래버를 진행한 바 있다.

펠른이 이전에 선보인 코스들. (펠른 홈페이지 캡처)
Q. 코스를 구성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점이 무엇인가. 코스에 포함되는 커피는 매번 바뀌나.

A. 펠른에서는 ‘오마카세’라는 표현보다는 ‘페어링 코스’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그만큼 커피와 디저트의 상성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코스 구성 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점 역시 커피와 디저트의 상성이다.

이에 매 코스가 나올 때마다 메뉴가 모두 다르다. 기획자들이 기획과 스토리텔링을 제시하면, 마스터들과 셰프팀이 협업해 메뉴를 만든다. 펠른은 커피뿐 아니라 디저트에 강점이 있다고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다. 페어링 코스의 디저트는 모든 무스부터 커피 캐비어 한 알까지 손수 만든다. 커피 역시 인천에 따로 로스터리 공장이 있고, 경매를 통해 국내에 없는 원두들을 다수 보유하는 등 손님들이 특별한 커피를 만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코스가 바뀌면 모든 메뉴가 바뀌지만 바뀌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펠른의 시그니처 ‘위스키 더치’ 커피다. 12시간 추출한 더치 커피를 오크통에 이틀 숙성시켜 만든 위스키 더치 커피는, 위스키 숙성 방식에서 착안해 만들었다. 마치 위스키를 마시는 듯한 느낌을 자아낼 수 있도록 위스키 잔과 구형의 얼음까지 구현했으며 코스가 바뀌어도 늘 만나볼 수 있다.

펠른의 시그니처 ‘위스키 더치’ 커피. (펠른 홈페이지 캡처)
Q. 주요 방문층이 어떻게 되나.

A. SNS에 민감한 20대가 대다수일 거라 많이들 생각하지만 가격대가 있어서 그런지 그보다 연령대가 높은 편이다. 펠른은 소개팅 명소로 유명하기 때문에 30대 남녀가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 40대 이상의 중장년층들도 많이 오고, 부모님을 모시고 오는 경우도 잦다. 90분에 3만8000원이라는 가격이 저렴하지는 않은 만큼, 펠른은 비싸지만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확실히 자아내고 있다.

Q. 예약제로 진행하는 이유가 있다면. 재방문율이나 매출도 궁금하다.

A. 펠른은 현재 연남점, 에스프레소 바, 판교점 세 곳의 매장이 있는데 연남점만 예약제로 진행한다. 연남점을 일종의 펠른 브랜드의 ‘쇼룸’ 개념으로 생각하면 된다. 연남점에서 나온 메뉴들이 변형돼서 다른 곳으로도 출시가 되기 때문이다. 연남점의 경우, 고객이 90분가량 시간을 내야 하고, 마스터들이 모두 설명해주며, 셰프들이 하나하나 만드는 것이라 대량으로 내오기 어려워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다. 방송에 나온 이후 너무 예약이 어렵고 붐벼, 연남점 인근에 워크인 혹은 테이크아웃 할 수 있는 에스프레소 바를 만들었다.

재방문율은 60~70% 정도로 높은 편이다. 주로 코스를 새롭게 선보이는 새 시즌마다 새로운 코스를 경험하기 위해 재방문하는 손님이 많다. 때문에 펠른은 새 코스를 내놓은 직후가 가장 예약하기 어렵다.

연남점은 좌석이 10개로 한정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월매출이 6000만원 정도로 높은 편이다. 그러나 현대백화점 판교에 입점해 있는 판교점이 좌석도 많고 회전율도 워낙 빠르기 때문에 매출 1위다.

Q. 비건(채식) 메뉴도 있다고 들었다. 비건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A. 펠른은 트렌드와 이슈에 민감하려고 노력한다. 비건 메뉴는 연남점 인근에 위치한 에스프레소 바에서 만날 수 있다. 어떤 면으로도 오해 살 일이 없도록 계란조차 쓰지 않고 철저히 기준을 지켜 만든다. 비건이 점차 트렌드가 되고 인기를 얻고 있지만 아직까지 커피와 디저트까지 비건으로 찾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 비건 메뉴의 경우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

펠른의 비건 메뉴 ‘타카시 몽블랑’. (펠른 홈페이지 캡처)
Q.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A. 최근 펠른의 모회사인 광고 법인을 베트남으로 확장했다. 펠론도 브랜드 확장 차원에서 함께 가려 한다. 최근 싱가포르 등 동남아를 중심으로 예약이 늘고 있다. 때문에 앞으로 베트남을 비롯해 동남아로 판을 넓히고자 한다. (기자가 방문했던 평일 오후 2시에도 할머니, 부부, 아이로 이뤄진 외국인 가족이 방문했다.)

또한 펠른의 시그니처인 ‘위스키 더치’ 커피를 유통하고자 한다. 현재 펠른에서는 MD로 매장에서 실제 사용하는 원두를 판매하고 있다. 더 나아가, 패키징을 위스키 병으로 예쁘게 만들어 위스키 더치 커피를 판매할 계획이다. 오는 6월께 선보일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코스의 주제가 ‘논알코올’이듯이 펠른은 때마다 주요 키워드를 선정해, 그를 중점으로 메시지들을 담고 있다. 이처럼 요리사가 아닌 기획자가 요리 문화를 선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미식 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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