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기고 녹슨 '9살 노란 리본'…"잊지 않겠다" 팽목항의 그날
황희규 2023. 4. 16. 08:00
“올해 팽목항은 조금 차분해진 분위기네요. 여전히 잊지 않기 위해 찾았습니다.”
경남 진주에 사는 신희원(29)씨는 15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현 진도항)을 찾았다. 그는 올해로 네 번째 팽목항을 방문했다. 신씨는 진주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광주광역시까지,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팽목항까지 왔다고 한다. 그는 “10주기 전에 꼭 오고 싶었다. 늘 함께 응원하는 사람 많으니 힘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는 16일로 9주기를 맞는다.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승객 304명(전체 탑승자 476명)이 사망·실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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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슬고 찢기고…세월의 흔적
이날 노란 리본이 그려진 빨간 등대가 지키고 있는 팽목항 방파제에는 세월호 추모를 위한 발길이 이어졌다. 방파제에 설치된 리본 조형물은 녹이 슬었고, 샛노랬던 리본은 색이 바래고 찢어진 상태였다. 어린 자녀와 찾은 정찬영(45)씨는 “아빠가 돼 보니 유족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게 됐다. 뉴스로만 보던 팽목항을 직접 찾으니 눈물이 났다”고 했다.
세월호 선체가 거치된 전남 목포신항에도 추모 발길이 잇따랐다. 서울에서 온 박혜숙(59·여)씨는 미수습자 5명의 사진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박씨는 “같은 ‘엄마’로서 아직도 바닷속에서 가족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들의 사진을 보니 눈물이 쏟아졌다”며 “지금이라도 가족 품에 안길 수 있도록 기도했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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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 가족들, 사고해역 찾아
세월호 유족들은 ‘선상 추모식’을 위해 16일 오전 7시쯤 해경이 준비한 경비함정을 타고 참사 해역을 찾는다. 뱃길로만 3시간을 달려 ‘세월’이라고 적힌 노란 부포가 떠 있는 침몰 지점으로 향한다. 묵념한 뒤 희생자 넋을 기리는 마음을 담은 국화를 바다에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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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곳곳에서 세월호 추모 행사
이날 오전 10시 목포신항에서는 ‘참사 9주기 기억식’이 열린다. 희생자를 위로하며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자리다. 오후 1시에는 팽목항 일대에서 ‘팽목기억문화제’가 열린다. 문화제 행사에서는 세월호 방파제에 위치한 ‘기억의 벽’ 중앙에 설치된 석판에 희생자 304명 이름 가운데 초성을 새긴다. 이름 석 자가 아닌 초성을 새기는 것에는 ‘우리가 모두 304명일 수도 있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음+모음+자음'으로 구성되는 국어의 음절 가운데 초성은 음절 첫소리인 자음을 가리킨다.
경기도는 ‘세월호 참사 9주기 기억식’에 맞춰 이날 오후 4시 16분부터 1분간 안산시 단원구청 일대에서 추모 경보 사이렌을 울린다. 도는 지난 12일부터 18일까지 1주일간 추모 기간으로 정하고, 이 기간에 수원 광교청사와 의정부 북부청사, 수원 팔달구 옛 도청사 등 4곳 국기게양대에 세월호 추모기를 게양하고 있다. 세월호기는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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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해양안전관 10월 개관
팽목항에서 500여m 떨어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일원에 국민해양안전관이 오는 10월 개관한다. 안전관은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해양안전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만든다. 해양안전체험시설과 유스호스텔, 해양안전정원(추모공원), 추모 조형물 등이 들어선다.
진도·목포=황희규 기자 hwang.heegyu@joongang.co.kr적용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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