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장비제한·美 보조금 갈림길…K반도체 갈 길은

조인영 2023. 4. 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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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中 때리기에 韓 반도체 '현상 유지' 어려워져
생산 시설 재배치 고려할 듯…투자축 이동 가능성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 예정지인 경기도 용인시 남사읍 모습. ⓒ뉴시스

핵심 전략물자로 떠오른 반도체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날로 첨예해지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 좌절', '미국 중심 공급망 재구축'을 키워드로 관련 법안을 쏟아내는 한편 동맹국들의 참여를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미·중 사이에 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 반도체 보조금, 중국 내 반도체 장비 반입을 두고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높아지는 미국의 압박에 단기적으로는 '현상 유지 허용'에 매달리되 장기적으로는 생산 시설 재배치로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올해 ▲미국 반도체 보조금 신청 ▲반도체 장비 대중 수출통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대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 정부는 현지 투자 기업에 조 단위 보조금을 지원하는 반도체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을 지난해 7월 발효한 데 이어 석 달 뒤인 10월에는 첨단 반도체 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제한하는 '대중 반도체 수출통제' 조치를 시행했다.


미국은 반도체 기업에 390억 달러(약 51조원) 규모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대신 반도체 시설 접근 허용, 초과이익 공유, 민감한 회계자료 제출, 중국 공장 증설 제한을 약속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회계자료 제출 요건은 재무자료뿐만 아니라 주요 생산 제품, 생산량, 상위 10대 고객, 생산 장비, 원료 등 기업 영업 비밀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반도체 기업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중국 공장 증설 제한의 경우 첨단 공정은 생산능력을 5% 이상을, 이전 세대인 범용(legacy) 반도체는 10% 이상 늘리지 못하도록 세부조항을 공개했다. 당장 중국 철수를 고민해야 할 정도의 강력한 조치는 아니나 앞으로 10년이라는 조건을 걸고 있어 기업들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중국 내 반도체 장비 반입의 경우 겨우 1년 유예만 받아둔 상황이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출구 전략은 더욱 시급해졌다.


미 상무부는 두 기업이 중국에 장비를 수입할 수 있는 기간을 1년 허용했는데, 이 유예조치는 오는 10월 종료된다. 반도체 기업들은 반복적인 연장 신청으로 리스크 최소화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역시 추가 신청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美 '中 때리기'로 韓 반도체 '현상 유지' 힘들어질 듯…출구전략 시급

다만 미국의 반도체 정책은 곧 중국의 영향력 축소 및 자국 반도체 제조 역량 강화를 골자로 하고 있는 만큼 언제까지나 한국 기업들의 편의를 봐주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같은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 미국은 해외 기업의 중국 내 첨단설비 반입을 점진적으로 축소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 나이스신용평가는 '미국의 산업정책과 신용위험' 보고서를 통해 "가장 긍정적인 상황은 장비 반입에 대한 유예 기간이 지속적으로 연장되는 것인데, 이는 불확실성이 매우 높다"고 진단했다.


한국신용평가도 '예상보다 깊은 메모리 업황 침체, 극복 가능한가' 자료에서 "미국의 정책목적상 지속적인 유예 연장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며,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의 중국 외 지역으로의 설비이전 등 대응시간을 일부 확보해주는 수준에서 유예가 연장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나이스신용평가

이 같은 전망은 중국에 상당 규모의 제조 기반을 둔 삼성과 SK에 큰 부담이다. 웨이퍼 출하량 기준으로 현재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전체 낸드플래시 중 40%를, SK하이닉스는 우시와 다롄에서 D램과 낸드를 40%, 20% 생산하고 있다. 전공정 설비 외에도 양사는 각각 쑤저우와 충칭에 패키징(후공정) 공장을 두고 있다.


이런 대규모 사업장을 운영하기 위해 삼성전자는 170억6000만 달러(22조2000억원), SK하이닉스는 249억 달러(32조4000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솔리다임(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대금까지 더하면 337억4000만 달러(43조9000억원)에 이른다.


다만 미국은 '중국 공장 증설 제한' 압박 속에서도 수출 통제 규정 준수 시 제한적이나마 생산설비 기술·공정 업그레이드를 허용해 반도체 업체들의 숨통이 트일 수 있도록 했다.


또 보조금 사전 신청 제출시 엑셀(재무툴) 사용이 필수 요구사항이 아님을 서두에 명시해 운신의 폭을 넓혔다. 삼성과 SK는 이 같은 틈새를 발판 삼아 미 상무부의 요구 수준을 완화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단기적으로는 이 같은 '현상 유지 허용'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예상되나, 중장기적으로는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출구 전략을 실행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갈수록 중국 내에서 첨단 반도체 생산·판매가 어려워지는 만큼 생산시설 재배치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매년 강화되는 반도체 공급망 정책의 학습효과이기도 하다.

반도체 생산기지, 중장기적으로 한·중 →한·미로

나이스신용평가는 출구전략으로 국내 팹의 생산 용량 확장 및 중국 팹 용도 전환을 제시했다.


이 기관은 "구형화되는 메모리 물량을 중국 팹에서 전담하고 국내 팹에서는 차세대 칩 생산 용량 확장에 집중하는 방식"이라며 "이후에는 시장 경쟁력 있는 칩 라인 전환을 통해 중국 팹이 경쟁력을 완전히 상실하기 전까지 부가가치를 최대한 창출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한국신용평가는 "중국 팹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초미세화 제품 생산은 어려울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중국 팹에서 생산될 레거시(범용) 제품 활용 방안과 한·중 팹간 믹스 조정이 중요할 전망"이라고 했다.


삼성·SK가 중국 의존도를 낮추게 되면 반도체 시설 중심축은 기존 한·중에서 한·미로 점진적으로 옮겨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흥·화성·평택 등 국내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는 삼성은 용인 '첨단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에 20년간 300조원을 투자해 자국 내 제조 역량을 대폭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미국에는 10조원 이상을 투자해 테일러시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으며, 향후 11개의 팹을 추가로 투자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메모리 초격차·파운드리 일류화전략이 한·미 무대를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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