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보다 먼저 미혼부 한풀이…'규제 저승사자' 8개월 실험
지난달 23일 헌법재판소는 미혼부의 자녀 출생신고를 막아 놓은 가족관계등록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21년 통계청 기준 미혼부는 6307명에 달한다. 현행법상 혼인외 출생자는 원칙적으로 생모가 출생신고를 하게 되어있다. 생모와 연락이 끊긴 채 아이를 홀로 키우는 미혼부가 자녀 출생 신고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을 내린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까지 청구인 대리인으로 참여해 화제가 됐던 사건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보다 먼저 미혼부의 눈물을 닦아준 곳이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뒤 신설된 국무조정실 산하 규제심판부다. 전원 민간 전문가로 구성돼 관련 부처 및 이해당사자와 함께 정부의 규제 개선책을 논의하는 곳이다. 규제심판부는 헌재보다 앞선 지난해 9월 법무부에 미혼부 출생신고 제도에 대한 전향적 개선책을 권고했다. 단 한 명의 아동도 복지·의료 사각지대에 방치돼선 안된다는 것이 골자였다.
당시 규제심판부 회의엔 미혼부 단체인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의 꿈’의 김지환 대표도 참석했다. 김 대표는 미혼부 출생신고 제도에 대한 헌법소원을 낸 당사자 중 한 명이다. 김 대표는 통화에서 “규제심판부 회의에서는 언성이 높아질 정도로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다”며 “저희의 어려움에 공감해주고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주려 한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다”고 말했다.
규제심판부는 영국 정부의 ‘레드 테이프 챌린지’(Red Tape Challenge·RTC)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어진 곳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2011년 규제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약 2년간 RTC를 통해 전 국민으로부터 ‘나쁜 규제’에 대한 신고를 받아 규제 개선 총력전을 벌였다. 지난해 8월 출범한 규제심판부도 8개월간 굵직굵직한 규제 개선책을 내놨다.
대표적인 사례가 1호 논의 대상이던 대형마트 영업규제 개선안이다. 대형마트와 중소상인,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까지 이해 당사자들이 모두 참석해 몇 달씩 토론했다. 규제심판부에서 별도 협의체 구성을 권고했고, 이에 따라 발족한 ‘대·중소유통 상생협의회’가 대형마트 영업 제한시간(0시~10시)과 의무 휴업일에도 온라인 배송을 허용하는 규제개선안을 마련됐다. 또한 이를 발판삼아 대구와 청주에선 대형마트의 영업제한 요일을 공휴일에서 평일로 바꾸는 실험도 이어졌다.
이외에도 ▶인체용 의약품 제조시설에서 반려동물용 의약품을 제조할 수 있게 한 권고안 ▶18년째 같은 기준이었던 자동차의 최초 정기검사주기를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하는 권고안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최근엔 범죄 유발 우려가 제기된 편의점의 불투명 시트지를 둘러싼 담배 광고 외부노출 차단 규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평소 참모들에게 “규제 해소라는 게 용두사미로 끝나기 쉽다”며 “윤석열 정부는 끝까지 붙들고 가서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주문을 종종 한다고 한다. 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그 규제개혁의 출발점이자 끝이 바로 이 규제심판부”라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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