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가 걷다 알아냈다…제초제 없는 '무농약' 제주 골프장 비결

천권필 2023. 4. 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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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을 쓰지 않는 제주 에코랜드 골프장 그린 위에 노루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사진 에코랜드GC

“노루들도 많이 와서 그린에서 누웠다가 가기도 하고, 야생오리나 꿩도 자주 나타납니다. 육지에서 온 손님들은 정말 좋아하고 신기해하죠.” -문성희 에코랜드GC 코스관리팀장
제주도에는 개장 이후 단 한 번도 잔디에 화학 농약을 뿌리지 않은 골프장이 있다. 2009년 제주시 조천읍에 문을 연 에코랜드 골프 앤 리조트(에코랜드GC)다. 2013년부터 잔디를 관리해 온 문성희 에코랜드GC 코스관리팀장은 14일 중앙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제까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골프장 잔디를 관리한다는 것이 불가능으로 여겨졌다”며 “10년 넘게 무농약 잔디 관리를 해오고 있지만, 화학 농약을 사용하는 골프장에 비하면 부족한 점이 많다”고 고백했다.

그의 말대로 대부분의 골프장에서는 잔디를 관리하기 위해 그동안 많은 양의 농약을 사용해 왔다. 환경부 조사 결과, 전국의 골프장 545곳에서 사용한 총 농약 사용량은 2021년을 기준으로 총 213t(톤)으로 전년보다 5%(11t) 증가했다. 면적(ha)당 사용량 역시 2010년 5.15㎏에서 2021년 7.18㎏으로 늘었다. 이렇게 골프장들이 잔디 관리에 더 많은 농약을 쓰면서 수질이나 토양 오염에 대한 우려도 크다.


골프장 잔디가 얼룩무늬인 이유


농약을 쓰지 않는 제주 에코랜드 골프장에서 야생오리 가족이 걷고 있다. 에코랜드GC
환경부에 따르면, 농약을 전혀 쓰지 않는 골프장은 전국에서 3곳(2021년 기준)에 불과하다. 이 중에서 2010년 조사를 시작한 이후부터 무농약 골프장으로 인정받은 곳은 에코랜드GC가 유일하다. 그만큼 농약을 쓰지 않고 오랫동안 골프장 잔디를 관리하는 게 어렵다는 뜻이다. 에코랜드GC는 처음부터 일체의 농약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허가를 받았다. 제주의 허파로 불리는 곶자왈의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수도권의 한 골프장에서 농약으로 잔디를 관리하다가 이곳으로 온 문 팀장도 처음에는 막막했다고 한다. 병이 확산되면서 봄·가을에는 정상 운영이 힘들 정도로 잔디 상태가 엉망이었고, 여러 친환경제제를 썼는데도 병을 억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문 팀장은 “제주도는 습도가 높아서 병이 많이 생기는데 약을 못 치니까 어려움이 많았다”며 “잔디별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2~3가지 잔디 품종을 섞어서 쓰게 됐고, 그런 이유로 다른 골프장과 달리 얼룩무늬 같은 색을 띨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해변 걷다가 발견한 잔디 관리 비법


제주 에코랜드 골프장에서 천일염을 섞은 물을 살포하는 모습. 에코랜드GC
농약 없이도 잔디를 관리할 수 있는 그만의 비결도 생겼다. 천일염, 즉 소금을 쓰는 것이다. 제주 해안가를 걷다가 우연히 바닷물이 잡초가 자라는 걸 억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제초제 대신 소금물을 뿌리자 잡초의 밀도가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났다.

“제주도 해안가에 보면 파도가 들어왔다 나가는 잔디밭이 있는데요. 자세히 보니 잔디는 잘살고 있는데 잡초들이 없더라고요. 자료를 뒤져 바닷물이 잡초의 생장을 억제한다는 걸 알게 됐고, 바닷물과 같은 비율로 천일염을 물에 녹여서 잔디에 뿌리고 있어요.” - 문성희 팀장
가장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그린에는 농약을 뿌리는 대신 곳곳에 구멍을 뚫어서 미생물을 땅속에 넣어주는 방식을 쓴다. 그는 “농약을 쓸 수 없기 때문에 병해충 예방에 가장 많이 신경을 쓴다”며 “토양 샘플을 조사한 결과 미생물이 시간이 지날수록 토양에 정착되면서 병 발생 빈도를 낮춘다는 걸 확인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잔디 상태가 안 좋다며 불만을 제기하던 고객들도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문 팀장은 “농약 알레르기가 있는 분들은 일반 골프장에 가면 몸이 간지럽다며 우리 골프장을 자주 찾는다”며 “아직은 무농약 관리가 성공적이라고 확신할 수 없는 단계라고 생각하고 잔디의 질을 높이는 게 남아있는 숙제”라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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