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접경지, 생태적 가치 지닌 볼음도... 한강하구 이야기
녹색연합은 1998년부터 봄이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도보순례를 떠납니다. ‘녹색순례’라는 이름으로 활동가들은 그해에 가장 치열했던 환경현장을 찾아 걷습니다. 녹색순례 22년, 그 발걸음은 아파하는 이 땅의 신음소리에 귀 기울이며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2023년 23번째 녹색순례단은 정전 70주년을 맞아 남북의 철책으로 가로막혀 있는 한강하구를 따라 걷습니다.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만나는 그곳을 따라 걸으며 드넓은 갯벌, 생명, 그리고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접해봅니다. 순례는 7박 8일(4월 5일~4월 12일) 동안 진행됐으며, 3편의 기사를 연재합니다. <기자말>
[녹색연합]
'녹색순례'라는 이름으로 떠난 도보순례길, 거센 바닷바람을 맞으며 인천 강화도와 석모도 사이 석모수로를 따라 선수선착장에 도착한 순례단은 볼음도행 배를 타기 위해 개별적으로 승선신고서를 작성한다. '본인이 출입하는 지역은 볼음도 민북지역이므로, 국가 안전보장에 저해되는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주의사항이 적혀있다.
▲ 한강을 따라 흘러들어온 쓰레기 |
ⓒ 녹색연합 |
해안가에 즐비한 해양쓰레기
한 시간 정도 물길을 타고 볼음도에 도착한 순례단은 녹색연합 깃발을 들고 해안가를 따라 걷는다. 걷는 중, 해안가에 즐비한 해양쓰레기를 마주한다. 볼음도 동측은 한강하구를 맞이하는 입구에 해당해 한강을 따라 흘러온 쓰레기가 쌓이는 구조이다. 해양환경공단 자료에 따르면, 전체 해양쓰레기 발생량의 약 40%는 하천, 해안가 등 육상기인, 약 60%는 어구, 양식장 등 해상기인으로 추정된단다. 장마철만이 아니라 대다수가 일상적으로 흘러들어온 쓰레기이다. 때문에 하천에서부터 쓰레기를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 해양쓰레기 수거 활동중인 녹색순례단 |
ⓒ 녹색연합 |
순례단은 상대적으로 지뢰 위험이 덜한 볼음도 남측 영뜰해변에서 해양쓰레기를 수거했다. 가벼운 스티로폼, 비닐 등은 바람에 날려 해안가 안쪽 수풀에 안착한다. 특히 스티로폼은 잘게 부숴져 수풀 위에, 모래 위에 눈이 내린 것처럼 보인다. 30분 정도 짧은 시간에 수거한 쓰레기가 수십포대에 달했다. 수거 후 어떤 종류의 쓰레기가 있는지 분류까지 하며 주요 쓰레기 기인을 직접 확인하고, 소회를 나누었다.
해양쓰레기 주 원인 중 하나인 어구(어업활동에 쓰이는 그물, 부표 등)를 관리하기 위한 수산업법 전부개정법률안이 2021년 12월 국회를 통과했다. 이를 근거로 어구 전 주기 관리를 위한 실태조사에 착수하고 관리방안이 수립될 것이다. 하천 유입 쓰레기 관리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하천에 직접 쓰레기를 버리지 않더라도 도심 속 고속도로변 쓰레기가 빗물에 휩쓸려 지류로, 하천으로,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 800년 된 할아버지 은행나무. 할머니 은행나무는 북한 황해남도 연안군에 있다. |
ⓒ 녹색연합 |
한편, 볼음2리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800살 '할아버지 은행나무' 이야기를 통해 한강하구, 황해도와 볼음도의 역사문화가 함께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 은행나무는 높이 25m, 가슴높이의 둘레는 9m로 천연기념물 제304호이다. 800여 년 전 황해남도 연안군에 있는 부부나무 중 홍수로 떠내려 온 수나무를 건져 이곳에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할머니 은행나무'는 황해도 연안군 호남리 호남중학교 뒷마당에서 자라고 있으며 높이 19m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 갯벌에서 먹이활동 중인 멸종위기종 저어새 |
ⓒ 녹색연합 |
2021년 7월, <한국의 갯벌>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국의 갯벌> 범위는 서천, 고창, 신안, 보성-순천갯벌 등 5개 지자체 갯벌에 한정돼 있다. 등재 당시,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정부에 인천 등 주요한 갯벌을 제48차 회의(2026년 예상)까지 추가로 등재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인천갯벌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행정, 시민사회가 움직이고 있다.
인천갯벌 면적은 전국갯벌 면적의 약 35%에 달한다. 장봉도와 송도 습지보호지역, 대이작도 해양생태계보호지역을 비롯해 천연기념물 문화재인 강화갯벌이 있다. 이 외에도 가치가 충분한 갯벌이 여럿 더 있다. 세계유산은 국내법으로 보호하는 곳만 지원자격이 있다. 세계유산이 되더라도 추가 규제는 없다.
▲ 볼음도 주민이 그레질로 직접 잡아온 백합 |
ⓒ 녹색연합 |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흘러드는 곳에 위치한 볼음도에는 다양한 갯벌이 발달돼 있다. 동서로 긴 볼음도는 한강물을 막아서면서 남쪽으로 모래갯벌이 길게 발달하고 북쪽으로는 펄갯벌이 우세하다. 북쪽은 접경지역으로 접근이 제한적이지만, 남쪽은 경운기나 트렉터로 30분 이상 나가야 할 정도로 드넓다. 갯벌에는 민챙이, 백합, 범게 등 다양한 저서생물들이 서식하고, 이를 먹이로 하는 저어새, 검은머리물떼새, 알락꼬리마도요 등 세계적인 멸종위기 조류가 찾아온다.
갯벌은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돼주기도 한다. 상합이라고도 하는 백합은 조개 중 으뜸으로 주로 모래가 많은 갯벌에 서식한다. 전라북도 새만금 방조제 건설 이후 장봉도, 볼음도와 주문도 인근 갯벌이 우리나라 백합의 최대 생산지가 되었다. 주민들은 백합 채취 도구인 그레를 이용해 백합을 채취한다. 큰 백합은 성인 주먹만하다.
또한 지역의 환경수용력을 고려하고, 자연 속에서 인성과 감성을 기를 수 있는 생태관광 일환으로 갯벌체험을 진행하기도 한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갯벌체험을 통해 드넓은 갯벌의 생동감을, 오래전부터 주민들이 갯벌과 바다를 대하는 태도와 방식을 느낀다.
과정 중에 볼음도 주민을 만나 혹시 순례단에 당부할 말이 없는지 물었다. '갯벌을 지켜달라'는 이야기도 좋다고 하니, "갯벌은 우리가 지켜야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주민들에게 갯벌은 단순히 이용하는 공간을 넘어 함께 지키고 가꿔야 할 공간인 것이다.
4월 5일부터 12일까지, 7박8일간의 여정을 마쳤다. 순례단은 이 곳들을 직접 두 발로 누비면서 한강하구 중립수역의 의미를, 여전히 지역에 남아있는 전쟁의 아픔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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