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숲 하루아침에 밀고 편백나무 심는다니... 말이 되나"
[차원 기자]
▲ 지난 12일 찾은 서울 은평구 봉산의 모습. 지난 2월 말부터 기존 나무 벌목과 편백나무 식재가 이뤄졌다. |
ⓒ 차원 |
미세먼지 농도가 올해 최고치를 기록한 지난 12일. 서울시 은평구 구산동 봉산에서 민성환 생태보전시민모임 대표를 만났다. 함께 산을 오른 지 얼마 안 돼 나이테를 훤히 드러낸 나무 그루터기, 그리고 편백 묘목들이 나타났다. 베어진 나무들은 곳곳에 쌓여 있었다.
은평구(구청장 김미경)는 2014년부터 봉산 편백나무숲 조성을 위한 벌목을 진행하고 있는데, 지난 2월 말 확장 공사를 시작했다. 은평구의 지난 3월 '봉산 편백나무 힐링숲 기본계획 수립 용역 과업지시서'에는 편백나무숲을 추가로 조성해 지역 문화관광자원으로 육성하려는 계획이 적혀있다(관련 기사: 봉산 참나무 베어내고 편백나무 숲 조성 나선 까닭은? https://omn.kr/2381r ).
한때 풍부한 생물다양성과 대규모 팥배나무 군집으로 서울시 생태경관보전지역에 지정되기도 했던 봉산이었지만, 이날 이곳에서 그러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음은 민 대표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기후위기 이렇게 심각한데 숲 없애는 게 말이 되나"
- 지금 봉산은 어떤 상황인가.
"은평구가 편백나무숲 조성을 위해 계속 확장 공사를 하고 있다. 팥배나무, 참나무, 아까시나무, 소나무, 단풍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사는 자연림을 잘라내고 거기다 편백나무들을 심은 것이다. 벌목 면적이 1헥타르, 베어낸 나무가 직접 세어보니 306그루에 달한다.
▲ 민성환 생태보전시민모임 대표가 잘린 나무들을 가리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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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업 진행 사실은 언제 알게 됐나.
"지난 3월 봉산 바로 밑 산새마을에 사시는 분이 산책을 나오셨다가 공사 현장을 보고 저한테 알려주셨다. 그래서 급하게 현장을 조사하고 은평구에 공사를 중단하라 요구했지만 무시하고 그냥 편백나무들을 심어버렸다. 지역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숙고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 실망스럽다. 구민 참여를 중요시하는 은평구 아닌가. 편백나무숲 확장 조성 사업을 올해에 그치지 않고 단계적으로 몇 년에 걸쳐 진행하려고 하는 듯해 걱정이다."
- 은평구는 잘라낸 나무들이 나이가 있는 '4영급(31~40살)' 이상 나무들이라, 숲 관리를 위한 결정이었다는 입장인데. 4영급 이상 나무들은 탄소흡수량이 줄어들지 않나.
"보통 나무들은 100년 가까이 산다. 오래 사는 나무는 천 년 넘게 살기도 한다. 40살이 넘었다고 늙었다, 잘라내도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무리다. 그 기준도 산림청에서 산림 경영 차원에서, 목재 순환을 빨리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설정해 놓은 기준이다. 더구나 이 지역은 산림 경영을 위해 조성된 숲도 아니다. 그런 식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자연림이고, 보존을 중심에 두어야 할 곳이다.
탄소흡수량은 적절하지 않은 변명이다. 기존 숲을 없애고 나무를 심는 것은 탄소 흡수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우선 기존 숲이 탄소 흡수를 하는 부분이 없어지는 것이기도 하고, 숲은 나무 외에도 토양을 통해 탄소를 흡수한다. 토양을 거대한 '탄소 흡수기'라고도 부르지 않나. 근데 벌목은 토양 생태계를 망가트린다. 온실가스가 역으로 배출된다. 나무 베는 과정에서 기계도 사용한다. 이런 과정을 보면 어떻게 새로 나무를 심어서 얻을 수 있는 탄소 흡수 기능이 원래 숲을 유지하는 것보다 더 크다고 단언할 수 있나 싶다."
▲ 편백나무 묘목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민성환 생태보전시민모임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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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백나무가 다른 나무들에 비해 탄소 흡수 기능·피톤치드 발산이 월등하다는 주장도 있다.
"잘린 기존 나무들도 탄소 흡수 기능이 뛰어나다. 그런 논리라면 탄소 흡수를 위해 거리의 모든 나무를 다 편백나무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탄소 흡수를 위해서라면 기존의 숲을 잘 가꾸고 관리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추가로 나무를 심을 것이라면, 그것이 편백나무든 뭐든 숲이 없던 곳을 새로 숲으로 조성하면 된다. 그렇게 전체적인 숲의 면적을 넓혀나가는 것이 맞다. 그런데 이렇게 기존 자연림을 파괴해버리는 방식은 정말 아니다.
자연림일수록, 다양한 식생들이 어우러져 사는 숲일수록 그런 숲의 기능이 훨씬 높다. 그리고 편백나무만 피톤치드를 발산하는 게 아니다. 모든 나무는 피톤치드를 발산한다. 기존 참나무 숲도 피톤치드를 발산하고 치유의 기능을 했다. 근데 그걸 잘라내고 이 숲을 편백나무만 존재하는 곳으로 바꾸겠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 새로 심은 묘목들이 다 자라려면 몇 년 정도 시간이 걸릴까.
"수십 년을 더 기다려야 할 거다. 꽤 오랜 기간 끊임없이 관리해야 할 텐데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편백나무는 사실 중부지방에 자라는 나무가 아니지 않나. 주로 일본 등 다습한 지역에서 자라고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나 남해안 지역에서 가꾸는 나무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생하지 않은 공간에 나무를 심으면 나무 입장에서는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는다. 만약 편백나무가 이곳에 맞았다면 자연 상태에서 관찰이 됐을 텐데 그렇지 않다. 이곳의 기후·토양 조건과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봤을 때 자연림 대비 훨씬 관리가 힘들 것이다."
- 다른 지역에도 이런 사례가 있나.
"수십 년 전에는 있었지만 환경 이슈가 중요해지고 생물다양성이 중요해진 지금 이렇게 막무가내로 숲을 밀어버리고 단일 종의 숲을 조성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 생태보전시민모임, 그리고 모임이 속한 기후행동은평전환연대의 입장과 요구가 궁금하다.
▲ 봉산 편백나무 치유의 숲. 은평구는 지난 2014년부터 편백나무숲 조성 사업을 진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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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들이 이같이 은평구의 편백나무숲 확장 계획을 백지화하라는 요구를 내세운 가운데, 은평구는 <한겨레> 편백나무숲 관련 보도에 대한 해명자료를 통해 "벌채 규모는 1헥타르(1만㎡)가 아닌 약 7000㎡이고, 수량 또한 고사목 등을 제외하면 306그루가 아닌 238주"라고 주장했다. 이어 "편백나무숲 구간은 서울시 생태경관보전지역의 확대 필요성이 제기된 구간과는 약 350m 떨어져 있다"고도 해명했다.
은평구는 또 해당 자료에 "지속가능한 산림순환경영 활성화를 실시하겠다"며 ▲생활환경보전림 구역의 지역특색수종 후계림 조성과 다층림 형성 추진 ▲불량 임분 수종갱신을 통한 산림경영으로 이산화탄소 흡수량 상승 기대 ▲목재수로, 목재흙막이, 목교, 비오톱 등 벌채목 활용 통한 산림순환경영 등을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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