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살인나겠더라' 층간소음이 초래한 비극

이준목 2023. 4. 15.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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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리뷰] KBS1 <시사직격>

[이준목 기자]

'층간소음'은 더 이상 이웃간의 사소한 다툼이 아닌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된 지 오래다. 극에 달한 층간소음 갈등이 법적 공방은 물론, 폭행과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도 빈번하다.

4월 14일 방송된 KBS1 <시사직격>에서는 '내 집이 지옥이 되다. 층간소음 공포' 편을 통하여 최근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층간소음 문제의 현 주소와 해결방안을 조명했다.

아랫집에서 층간소음 피해를 제보한 이예은(가명)씨의 세 가족은 지난 2022년 분양받은 아파트에 당첨되어 마련한 '내 집'에서 행복한 새 출발을 꿈꿨으나, 입주 이후로 벌써 1년째 악몽같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예은씨는 "처음 왔을 때는 행복했는데, 윗집에서 이사를 오면서부터는 악몽같은 날들이었다"고 호소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제보자가 증거로 촬영한 영상에 따르면, 윗층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와 문닫는 소리 등 각종 생활소음은 층간소음기준인 38dB를 두 배 가까이 뛰어넘는 67.8 dB까지 나온 것으로 측정됐다. 예은씨가 관리사무소를 통하여 여러 번 항의했지만 윗집은 연락을 받지 않고 개선되는 것도 없었다고. 실제로 제작진의 취재 중에도 소음은 계속됐다.

윗집은 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소음을 줄이기 위하여 추가로 매트 시공을 하는 등 나름 노력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다자녀를 키우다보니 매번 통제하기 어렵고, 자신들도 계속된 이웃의 항의와 연락에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반대로 아랫집에서 올라오는 소음 때문에 윗집이 고통받는 경우도 있었다. 제보자 측은 소음 문제로 아랫집과 몇 차례 대화를 한 이후 '보복성 천장치기'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제보자 측의 녹음과 영상에 따르면 건물이 울릴 만큼 심각한 수준의 소음과 진동이 계속되고 있었다.

최근 층간소음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온라인에는 아예 '층간소음에 대한 복수하는 법'에 대한 노하우들이 상품화되어 잇달아 올라오기도 했다. 수백만원을 들여 이사를 할 바에는 10만 원으로 복수하라고 부추기고 '보복소음용 음원'까지 제작되기도 한다. 온라인에서는 실제 이러한 제품들을 구매해서 사용해봤다는 후기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이러한 보복형 소음은 현실에서는 스토킹 혐의가 인정되어 형사처벌을 받는 경우가 상당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층간소음 보복상품 구매자들은 "경찰을 불러도 효과가 없으니까 직접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왜 흉기를 휘두르는지 알겠다.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보복용 스피커를 산다는 것은 전쟁하겠다는 의미"라며 감정의 골이 대단히 깊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냈다.

층간 소음이 주는 스트레스는 상대에 대한 분노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피폐하게 만들 수 있다. 아파트 아래층 층간소음 피해자 김영애(가명)씨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 해 현재 공황장애 진단을 받아 치료 중이라는 사실을 고백했다. 영애씨는 아들도 분노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 하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라며 망치를 찾는 모습에 충격을 받아 원룸에 따로 나가살게 했다고 밝히며 눈물을 흘렸다.

촬영기간 동안 제보된 층간소음 사례만 28건, 이 중에는 갈등이 1년 이상 장기간 이어진 경우가 17건에 이르렀고 최장기간은 10년까지 이른 사례도 있었다. 또한 제보자들은 극심한 층간소음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 해 집을 비우고 밖으로 떠도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이는 오래된 노후 아파트나 신축 아파트도 모두 예외가 아니었다. 사람이 가장 편안하게 쉬어야 할 나만의 공간이 하루아침에 생지옥으로 변한 것이다.

층간소음에 대한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은 사례가 2021년 인천의 한 빌라에서 벌어진 흉기 난동사건이었다. 당시 경찰의 미숙한 대응으로 대처가 늦어지면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범인은 사건 3개월 전 윗집으로 이사온 40대 남성이었고 사건의 원인은 바로 층간소음이었다.

평소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었던 가해자는 계획적으로 범행을 준비해서 일가족을 살해하려다가 미수에 그쳤다. 하지만 피해자 박상철(가명)씨 가족들은 당시 큰 중상을 입었고 지금까지도 육체적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당시 대량의 피를 쏟으며 뇌경색과 심정지까지 왔던 아내는 반신불수가 되어 휠체어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었고, 딸 역시 얼굴에 큰 부상을 입었다.

최근 5년간 국내에서 벌어진 층간소음 관련 형사 사건을 조사해본 결과, 전체 사건수는 물론이고 강력범죄의 비중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국민들이 층간소음을 판단하는 민감성이 높아졌고, 코로나19 이후로는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수치상으로 2020~2021년에 층간소음 관련 범죄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층간소음 관련 형사 재판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폭행(135건), 협박(130건), 상해(119건), 주거침입(60건) 순으로 나타났다. 총 491건 중 아파트가 278건으로 역시 가장 비중이 높았지만, 기타 공동주택이나 오피스텔, 원룸 등도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또한 층간소음으로 인한 강력범죄시에는 이해관계 당사자만이 아닌, 경찰관(23건)이나 관리사무소 직원-경비원(11건) 등이 피해를 입는 경우도 많았다. 승재현 한국법무정책연구원 박사는 "층간소음은 살인까지 이어지는 명백한 범죄다. 더 이상 국가가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봐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층간소음 갈등에서 가장 위험한 사례는 '방화'다.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자칫 공동주택 공간에서 애꿎은 이들까지 대량의 인명피해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웃과의 층간소음 갈등으로 방화를 시도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60대 남성의 이야기는 큰 충격을 줬다.

그런데 이런 층간소음 갈등은 단지 이기적인 입주민들간의 사적인 문제인 것일까. 2019년 감사원이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다수의 아파트들이 층간소음을 막을 수 있는 '표준바닥구조' 규정을 지키지 않고 시공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조사 대상 중에는 최소기준 규정에도 미달한 아파트가 전체의 60%(114세대)에 이르렀다.

입주자들은 층간소음에 대한 내용이 아파트 계약서 등기부등본에 명시할 수 있게 하여 사전에 입주자들이 정확한 성능을 파악해야만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논란이 된 건설사와 시공사는 감사원의 조사에 나오고 뒤늦게야 재발방지와 후속대책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예은씨의 아파트는 청약 당시 경쟁률이 수백대 1에 달했으며 최근 실거래가도 9억원에 이르는 고급 아파트였다. 유명 건설사 브랜드의 이름값을 믿었던 예은씨는 현재 자신들 외에도 층간소음을 호소하는 입주민들이 많다며 건물이 과연 제대로 지어졌는지 의구심을 드러냈다. 놀랍게도 해당 아파트는 바닥충격음 시험결과 기준 미달인 최하등급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제작진이 인터뷰한 한 대형 건설사 직원은 "층간소음 없는 집에서 살고 싶다면 비용이 더 들어갈 수밖에 없지 않나?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는 곳이지, 사회에 공헌하는 곳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다른 건설사에서는 "층간소음은 입주민들이 중재해야지, 건설사가 중재할 것은 아니다. 건설사는 짓고 나면 빠진다. 층간소음 하자가 나면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그 이상으로 잘 짓고 있다"고 주장하며 책임을 회피하기도 했다. 바로 건설사들의 사회적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애초에 아파트 건설규제를 더욱 강화했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층간소음 분쟁 해결을 위하여 2012년 설립된 '이웃사이' 센터는 연간 민원간 4만 건 이상에 이른다. 총 22명이 근무하는 센터는 2016년부터 증원이 없는 상태이고, 코로나19기간에는 속출한 민원에 대기기간만 무려 69일이 소요되기도 했다고.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구조물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없는 한, 입주민들이 개인적인 노력으로 층간소음문제를 100% 해결하는 것은 어렵다. 중재를 하더라도 민원에 대한 불만은 계속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국토교통부는 2020년 6월, 층간소음 사후 측정 및 확인제를 발표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후확인제가 시공회사의 잘못이 인정될 경우, 피해보상과 재시공 등에 대하여 '권고'가 아닌 '강제'가 되었어야 했다며 한계를 지적했다. 또한 시공 기준을 강화했다는 국토교통부의 주장과 달리, 바닥충격음 측정이 임팩트볼과 뱅머신 방식에 따라 소음도가 다르게 측정된 것으로 드러나며 실제로는 오히려 건설사만 더 유리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건설사와 시공사, 정부 등 각 책임주체들이 구조적으로 초래한 층간소음 문제를 외면하거나 소홀하게 대처하는 사이, 모든 피해와 해결은 오로지 평범한 이웃들간에 감당해야하는 몫이 됐다.

층간소음을 둘러싼 갈등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사실 쉽지않다. 피해자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소음을 막기 위하여 노력하거나 결국 이사를 선택하고, 가해자로 지목된 이웃들은 그들 대로 억울한 오해나 누명을 호소하며 주변의 거듭된 압박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몇 번 이런 일을 겪다보면 정말 살인나겠더라"는 한 주민의 호소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우리 주변의 현실이다. 소음도 소음이지만 내 근처의 이웃이 가장 두려운 적이 된 현실, 갈등이 깊어지면 자칫 보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은 피해자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이제라도 건설사는 아파트를 제대로 짓고 끝까지 책임을 질수 있어야 하며, 정부는 사후확인제가 사후약방문에 그치지 않도록, 보다 실효성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숙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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