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포스터 속 오역…'초월번역' 원한다면 [엑's 초점]
(엑스포츠뉴스 이창규 기자) 영화 '바비'의 캐릭터 포스터 문구 훼손 논란이 불거지면서 국내 개봉하는 외화들의 메시지 훼손 사례들이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지난 12일 워너브러더스 코리아는 공식 SNS를 통해 주연인 마고 로비를 비롯해 라이언 고슬링, 아메리카 페레라 등 7명의 모습이 각각 담긴 '바비' 캐릭터 포스터를 공개했다.
그런데 해당 포스터는 '바비', '켄' 이라는 문구만이 담겨 논란이 일었다. 북미판 포스터에는 실제로 바비를 가지고 인형놀이를 하듯 여러 설정들이 담긴 문구가 있었기 때문.
마고 로비의 경우 '바비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Barbie is everything), 라이언 고슬링은 '그는 그냥 켄'(He's just Ken)이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이를 모두 단순히 '바비', '켄'으로 의미를 축소시켜 번역한 것. 심지어 아메리칸 페레라는 다른 극중 인물들과는 달리 실제로 사람이기 때문에 'She's a human'이라는 문구가 적혔음에도 '인간'이라는 문구로 표기됐다.
게다가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유럽 지역과 태국 등 동남아 지역은 물론, 인도네시아 처럼 이슬람 문화권에 있는 나라에서도 해당 문구가 그대로 번역됐던 터라 더욱 비판이 많았다.
3일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관계자는 엑스포츠뉴스에 "특별한 의도는 없다"면서 "국내 마케팅 시작 전 먼저 캐릭터 비주얼과 캐릭터명을 소개하기로 한 것이다. 국내 마케팅 시작 시점에 맞춰 전체 24종 캐릭터 포스터를 다시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결국 워너브라더스 코리아는 공식 SNS에 포스터의 문구를 수정하고 24종 캐릭터 포스터를 공개했지만, 이전에 공개한 포스터 문구와 관련한 별다른 언급이 없어 반응은 좋지 않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종종 있어왔다.
2009년 개봉했던 우디 앨런 감독의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의 국내 포스터에서는 스칼렛 요한슨의 가슴 부분을 포토샵으로 부각한 것이 발견되면서 비판을 받았다.
2017년 개봉했던 '우리의 20세기' 또한 원제인 '20th Century Women'에서 의도적으로 여성을 뺀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마이크 밀스 감독이 작품에 대해서 "나를 키워준, 20세기를 살아온 여성들에 대한 러브레터"라고 언급했던 만큼, 원제가 갖고 있는 의미를 훼손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뿐 아니라 '세상을 바꾼 변호인'은 원제가 'On the Basis of Sex'였기에 개봉명이 변경된 것에 대해서는 큰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으나, 포스터의 번역이 문제가 되었다.
미국 연방 대법원의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젊은 시절을 그린 작품인 만큼, 북미 포스터에서는 'Heroic'(영웅적인), 'Inspiring'(영감을 주는), 'Marvelous'(놀라운) 등의 문구가 큼지막하게 담겼다. 하지만 국내 포스터에서는 완전히 다른 의미가 담긴 '러블리한 날', '꾸.안.꾸한 날' 등의 문구로 대체되었다.
최초 공개된 포스터에서는 '빌어먹을 차별을 무너뜨릴 결정적 한방'이라는 내용으로 영화의 메시지를 그대로 담아냈던 것을 감안하면 의도적으로 페미니즘을 지우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당시 포스터 번역을 담당했던 CGV아트하우스 측은 "해외 이미지를 활용해 자체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에서 오리지널 콘텐츠의 의미를 본의 아니게 훼손했다"며 사과했다.
이와 관련해 이학후 영화평론가는 "포스터도 영화의 일부분 아닌가. 그렇다면 그것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창작자에 대한 존중의 태도를 갖고 홍보를 진행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과거 영화의 오역 사태도 비슷한 측면에서 봐야한다. 상업영화도 예술의 일부 아닌가. 어떤 창작물이든 창작자의 의도를 존중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물론 외화의 경우 번역을 통해 개봉명이 바뀌는 일이 드문 것은 아니며, 오히려 적절한 의역으로 인해 '초월번역'이라며 원제보다도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사랑과 영혼'의 경우 원제가 'Ghost'였는데, 유령, 귀신이 아닌 영혼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동시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추가해 영화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담아냈다.
'지랄발광 17세' 또한 적절한 번역으로 호평을 받은 케이스다. 원제인 'The Edge of Seventeen'은 '17살의 끝'으로 직역할 수 있는데, 'edge'라는 단어를 변형한 은어 'edgy'는 힙스터, 중2병처럼 10대들이 남들과 달라보이기 위해 오만가지 허세를 부리는 단어로 쓰인다. 이 때문에 국내 개봉명을 'edgy'에 맞춰서 번역하게 됐고, 보다 강렬한 제목으로 인해 작품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이외에 '미녀 삼총사'(원제 'Charlie's Angels')와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원제 'Music And Lyrics') 또한 영화의 느낌을 잘 살렸다는 평을 받는다. 특히 후자의 경우 '음악과 가사'라는 단순한 원제를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가 떠오를 수 있게끔 번역했다는 좋은 평을 받았다.
이러한 호평을 받는 의역의 경우, 작품이 갖고 있는 의미를 잘 함축해냈거나 작품에 대한 이해도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의미를 명확하게 한 케이스다.
그러나 작품이 담고 있는 기본적인 메시지를 배제하거나 훼손하는 오역은 작품의 홍보에 방해만 될 뿐이다. 적절한 의역을 거쳐 '초월번역'이라는 평가를 받는 작품들이 왜 호평을 받게 된 것인지 홍보를 맡은 담당자들은 깊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사진=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바비' 공식 계정,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포스터, '세상을 바꾼 변호인' 포스터, 소니 픽처스
이창규 기자 skywalkerle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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