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빼다가 '경적 시비'...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이야
[백세준 기자]
▲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사람들' 포스터 |
ⓒ 넷플릭스 |
미래가 보이지 않는 대니(스티브 연)는 속이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수리가 필요한 집을 고쳐주고 있지만, 일감이 없어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다. 가정 상황도 넉넉하지 않다. 같이 사는 동생은 매일 코인과 게임에 빠져 있고, 사업을 하다 망한 부모님은 한국에 도피하다시피 가 있다. 장남인 대니는 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압박감과 잘 살아보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대한 불만이 공존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전에 산 물건을 환불하려고 마트에 갔으나 직원에게 면박만 당하고 그대로 들고 차에 올라탄다. 빨간 픽업 트럭을 후진할 때 흰색 SUV가 경적을 심하게 울리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 난폭 운전으로 둘의 질긴 인연은 시작된다. |
ⓒ 넷플릭스 |
흰색 SUV 운전자 에이미(앨리 윙) 또한 대니와 마찬가지로 분노로 가득하다. 일평생 일에 전념해 '고요하우스'라는 사업을 왕성하게 성공한 뒤에도 실력 없는 예술가 남편(죠셉 리)과 어린 딸을 돌봐야 한다. 겉으로 봤을 때는 돈 많고, 단란한 가족처럼 보이지만 실상 남편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사업 운영과 돌봄에 지쳐 있는 인물이다.
엎치락 뒤치락 추격전을 벌이던 둘은 남의 집 화단도 망가뜨릴 정도로 동네를 시끄럽게 만들었다. 동네 주민은 휴대폰으로 그 모습을 촬영해 SNS에 올리고 세상에 박제시킨다. 결국 대니는 에이미의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놓친다. 하지만 자동차 번호를 외운 그는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수소문해 에이미의 집까지 찾아가 복수를 실현한다. 한 번의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아 사건은 점점 커진다.
지난 6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은 마치 가득 찬 물컵에 물 한 방울만 더 넣으면 넘칠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둘의 사회경제적 배경은 완전히 다르지만, 내면에 분노를 품고 있는 것은 공통점이다. 또한 등장인물의 대부분이 동양인이다. 대니는 한국계 미국인, 에이미는 중국·베트남계 미국인이다. 에이미의 남편도 일본인이다.
이들은 자신의 고국이 아닌 곳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의무(대니), 사업적으로 성공했지만 실패한 결혼생활을 그래도 유지해야 한다는 의무(에이미) 등에 쫓기며 살고 있다. 막중한 책임감에서 둘은 벗어날 수 없어 발버둥 치는 삶을 살고 있던 와중에 서로를 만나 어딘가 모를 공감대도 형성하기도 하고, 그간 쌓아놓았던 분노의 감정을 서로에게 분출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각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등장인물들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에 묘한 긴장감이 유지되며, 무엇보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특히 한국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요소들이 군데군데 숨겨져 있어 그 맥락과 내용을 받아들이면 재미가 더욱 배가 된다. 또한 제작과 연출을 맡은 이성진 감독 또한 한국인이라서 한국인만의 정서인 '화병'을 표현하고 있는 듯해 공감하기 쉬운 요소다.
내용 외적으로도 한 편당 30분의 러닝타임이며 총 10부작으로 구성돼 있다. 매 회 도입부에 팝아트 같은 그림을 보여주고 시작하는데 그것도 볼거리이며, 재미있는 영화를 만든다고 소문이 난 제작사인 A24가 맡아 믿고 봐도 좋다.
뿐만 아니라 출연진들의 연기가 살아 있다. 영화 <버닝> <미나리> 등으로 이름을 알린 스티븐 연과 스탠드 코미디언으로 유명한 앨리 윙의 날것 그대로의 연기는 10부작을 다 보게끔 하는 흡인력이 대단하다. 영화 <애프터 양>에서 '양'을 연기한 저스틴 민도 출연해 아는 사람이라면 "어?" 하는 소리가 절로 튀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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