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의 미장센] ‘킬링로맨스’ 뇌를 빼기 위한 2가지 장치, 화면과 내래이션

김혜선 2023. 4. 1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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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 로맨스. (사진=워너브러더스 픽처스)

“민트초코같은 영화”

배우 이하늬가 정의한 ‘킬링 로맨스’의 한줄평이다. 그만큼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영화라는 얘기다. 그래서 온갖 투자사에서 ‘킬링 로민스’ 시나리오를 보고 거절했다. 이 ‘미친’ 시나리오는 워너브라더스 코리아를 만나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킬링 로맨스’는 일반적인 영화의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일단 자로 잰 듯이 짜맞추는 ‘이야기’가 없다. 개연성은 개를 줬다. 하늘을 나는 타조에 무슨 개연성이 필요하단 말인가. 대신 ‘킬링 로맨스’는 좌충우돌 돌아가는 상황과 예측 불가능한 어지러움이 묘미인 영화다. 제대로 즐기려면 일단 ‘뇌를 빼고’ 봐야한다.

그래서 이원석 감독은 두 가지 장치를 준비했다. 하나는 ‘원스 어 폰어 타임’으로 시작하는 내레이션이다. 외국인 할머니가 등장해 동화책을 펼치며 읽는 장면은, 이 영화는 ‘현실’에 가까운 영화가 아니라 동화 같은, 혹은 우화 같은 이야기가 될 것을 시사한다.

‘킬링 로맨스’ 속 내레이션은 관객이 ‘이게 뭐지?’라고 당황하는 순간에 얼른 끼어든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건의 연속에서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어요!”라며 이것은 동화임을 다시 한 번 깨우친다. 정신없는 롤러코스터 속에서 튕겨져 나가지 않도록 ‘안전 바’를 단단히 해 둔 셈이다. 

또 하나의 장치는 영화 초반 화면 비율이 4대3 (1.33:1)이란 점이다. 일반적인 영화 비율은 16대9(1.85:1)이나, 2.35대 1로 가로로 더 넓은 화면비를 보이지만 ‘킬링 로맨스’ 초반에는 옛날 TV 화면 같은 비율을 썼다. 이는 양옆이 잘린 화면으로 옛날 TV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동시에, 동화책 한 권을 꺼내든 것 같은 착각도 준다.
영화 '킬링 로맨스' 스틸컷. 영화 초반부에는 어설픈 세트장이 등장한다. '존 나(이선균)'가 멋있게 여래(이하늬)를 구해낸다. (사진=워너브러더스 픽처스)

이런 기법은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도 쓰였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웨스 앤더슨 감독은 여러 시대를 표현하기 위해 ‘화면비’를 사용했다. ‘킬링 로맨스’에서도 톱스타 여래가 활약하던 과거 시점에서 4대3 비율의 화면이 쓰인다. 그리고 이 화면비에서는 배우도, 장면도 모두 ‘올드’하다. 연기는 과장되고, 촬영된 곳은 어설픈 세트장이다. 분홍빛이 도는 키치한 색감을 바라보며 관객은 점점 ‘아, 이 영화 B급이네’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제 ‘킬링 로맨스’라는 롤러코스터에 탑승을 완료한 것이다. 7년 후 여래는 마냥 행복하지 않은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화면비도 현재와 같은 16대9 비율로 넓어진다. 이제 절대 예측 불가인 영화를 즐기며 어지럽게 뱅글뱅글 도는 일만 남았다.

김혜선 기자 hyeseo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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