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눈에 불을 켜고 찾는... 매우 위험한 하숙집
[김종성 기자]
▲ SBS <꽃선비 열애사>의 한 장면. |
ⓒ SBS |
SBS 사극 <꽃선비 열애사> 속의 하숙생들은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하다. 과거시험을 준비하며 이화원이라는 고풍스런 양반집에 기숙하는 이들은 1970년대나 1980년대의 운동권 하숙생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정치적 위험성을 띠고 있다.
이화원 하숙생 넷 중 셋이 폐위된 세손이거나 이 세손을 호위하는 무사일 수 있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래서 전임 세자 및 세손을 폐하고 왕위를 찬탈한 이창(현우 분)이나 이 정권을 지탱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곳은 매우 위험한 하숙집이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헌법으로도 불리는 1972년 헌법(제7차 개정 헌법) 제53조 제1항에서 '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나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이유로 계엄과 별도의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제2항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하는 긴급조치를 할 수 있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고 예고했다.
1975년 4월 8일 박 정권은 이런 긴급조치를 고려대학교를 상대로 발했다. 이날 선포된 '헌법 제53조에 따른 대통령 긴급조치 제7호'는 "고려대학교에 휴교를 명한다"고 한 뒤 "국방부장관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병력을 사용하여 동(同)교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라며 군대 투입까지 규정했다.
이는 대한민국 공권력이 고려대 하나를 상대로 긴급조치를 시행하는 한국 현대사의 진풍경이었다. 총 9건의 긴급조치 중에서 일곱 번째가 대학 하나를 겨냥했다는 사실은 말기의 박 정권이 그만큼 불안했음을 방증한다.
▲ SBS <꽃선비 열애사>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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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선비 열애사>의 이창은 박정희처럼 대담하지는 않지만 폭군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세자인 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그는 인명살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사람들의 생명을 스스럼없이 해한다.
나라를 제대로 건사하지도 못 하면서 왕권 유지에만 급급한 이창이 반드시 찾아내고 싶어하는 것이 폐세손 이설이다. 이런 이창의 처지를 생각하면, 이화원은 박정희가 선포하지 못한 열 번째 긴급조치의 대상이 되고도 남는다. 이창의 기세로 보면, 그는 대학 휴교가 아니라 하숙집 휴업을 명령하는 긴급조치 제10호를 발포할 만한 인물이다.
이처럼 위험한 하숙집인데도, 그 안에서는 알콩달콩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하숙집 사장 윤단오(신예은 분)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이 집 하숙생들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중년에 들어선 만년 고시생 육육호(인교진 분)는 평소에는 윤단오와 하숙생들에게 위안을 주지만, 과거시험 당일만 되면 가슴이 울렁거리며 평정심을 잃는다. 그래서 이날만큼은 조카뻘인 다른 하숙생들에게 조금의 모범도 되지 않는다.
나머지 세 명인 강산(려운 분), 정유하(정건주 분), 김시열(강훈 분)은 함께 산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웬만한 친척 이상의 우애와 협동을 보여준다. 강산과 정유하는 윤단오를 사이에 두고 눈에서 불꽃을 튀기는 일종의 연적 관계이지만, 동료 하숙생의 의리를 지키는 것을 잊지 않는다. 위험한 하숙집인 이화원은 이들의 이런 관계로 인해 정겨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도시 거리의 전봇대나 대문에 '하숙 구함' 또는 '하숙인 구함'이라는 광고문이 붙어 있던 시절이 어느덧 옛날이 됐다. 1982년 9월 22일자 <조선일보> 8면 좌단에는 골목길 한옥 옆의 전주에 "하숙인 구함"과 전화번호 뒷자리 5593이 적힌 사진이 나온다.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하숙생들은 방 1칸을 홀로 쓸 수도 있었지만, 지금 같으면 혼자 써도 시원찮을 비좁은 방에서 서너 명이 함께 기숙하는 경우도 많았다. 타향 사람들과 한 방에 기거하면서 서로의 습관과 체취를 공유하며, 국 냄비 하나에 이 숫가락 저 숫가락 들어가는 것을 보며 바삐 식사하는 풍경도 많았다. 이런 광경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서울 법대 출신이라는 이력 때문에도 관심을 끌었던 가수 최희준이 만 30세 때인 1966년에 히트시킨 노래가 '하숙생'이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하숙집 문화를 담지는 않았지만, 나그네 같은 인생사를 하숙생이라는 제목으로 해석한 작품이다. 이 노래가 대히트를 친 데는 최희준의 이미지도 한몫 했다는 평가가 있다.
음악평론가 선성원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대중가요>는 이 작품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당시 코미디언인 구봉서가 찐빵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는데, 그의 구수하고 수더분한 모습에서 풍기는 인간미가 정말 찐빵처럼 친근하다"고 평했다.
평론가의 설명에서 느껴지듯이, '하숙생'이 인기를 얻은 것은 하숙집과 어울리는 최희준의 이미지와도 무관치 않으리라고 볼 수 있다. 대중의 인식 속에 자리잡은 하숙집 이미지가 최희준에게서 어느 정도라도 느껴졌기에 대히트가 가능했을 것이다.
▲ SBS <꽃선비 열애사>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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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하숙의 역사는 상당히 긴 편이다. 선비들 상당수는 한양 같은 대도시에서 하숙 생활을 해본 경험이 있었다. <꽃선비 열애사>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하숙은 그들의 객지 생활에서 중요한 요소였다.
정조시대의 성균관 유생인 윤기(1741~1826)가 쓴 <반중잡영>이란 시집에 따르면, 성균관에서는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기 사흘 전에 주변의 반촌 주민들을 초대하는 행사가 있었다. 이 부분에 관한 시에서 윤기는 "방외 유생들의 반주인(泮主人)을 데려오게 하고서는"이라고 읊었다. 반주인은 지방 출신 유생들이 기거하는 하숙집 사장들의 호칭이었다. 반(泮) 즉 학교가 있는 곳의 하숙집 주인인 이들도 성균관 행사에 불려갔던 것이다.
윤기가 세상을 떠나고 103년 뒤인 1929년에 출생하고 윤기처럼 서울에서 학교를 다닌 언론인 리영희는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서울 흑석동에서 하숙을 했다. 그는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과의 대화록인 <대화>에서 "중학생 하숙비는 두 사람이 한 방을 쓰는 것이 대체로 23원이었을 거요"라며 부모님이 매월 보내준 돈이 40원이었다고 말한다. 아버지의 월급이 80원 정도였다고 하니, 그의 하숙 생활이 집안 재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을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하숙이 한국에만 있었던 것은 당연히 아니다. 19세기 영국의 하숙집 풍경을 보여주는 장면이 코난 도일의 <노란 얼굴>이란 작품에 나온다. "홈스는 초인종을 눌러 허드슨 부인에게 차를 부탁했다"는 대목이 그것이다. 전보를 기다리는 셜록 홈즈가 하숙집 주인에게 차를 부탁해 마시는 장면이다.
일제강점기 막판인 1945년 2월에 향년 28세로 숨진 시인 윤동주의 기억에는 도쿄 하숙집의 이미지가 남아 있었다. 그가 남긴 '사랑스런 추억'이라는 작품에 "봄은 다 가고 - 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는 대목이 있다.
한국 핵무장론 때문에 박정희 정권과 미국이 불편했던 시절에 미국에서 세계적인 핵물리학자로 활동하다가 1977년에 의문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휘소 박사의 삶에도 하숙이 있었다. <광주일보> 및 <전남일보> 신춘문예 출신인 이은유 작가가 쓴 <현대 물리학의 별 이휘소>에는 생활비가 부족해 쩔쩔매던 이휘소가 공과대학 교수의 집에 들어가 하숙하게 된 이야기가 나온다. "하숙비는 하루에 세 시간씩 건축 자재를 보관하고 차에 옮겨 싣는 일로 대신했다"고 이 책은 말한다.
이렇게 세계 각국에서 오래 전부터 있었던 하숙 문화가 점점 더 자취를 감추고 있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렇다. 주방 도구가 거의 없어도 음식을 조리하기가 어렵지 않고 어디서든 쉽게 음식을 사먹거나 주문할 수 있게 된 것도 이런 변화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꽃선비 열애사>에서 묘사되는 하숙 생활은 윤동주의 작품명에도 적혔듯이 이제는 이미 추억의 영역으로 넘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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