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몸엔 이게 더 좋아! 못생긴 농산물의 반란 [ESG 세상]
새로운 시대정신이자 미래의 침로인 'ESG'가 거대한 전환을 만들고 있다. ESG는 환경(E), 사회(S), 거버넌스(G)의 앞자를 딴 말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세계 시민의 분투를 대표하는 가치 담론이다. 삶에서, 현장에서 변화를 만들어내고 실천하는 사람과 조직을 만나 그들이 여는 미래를 탐방한다. <기자말>
[안치용, 이수빈, 이은서, 이윤진 기자]
못난이라 무시당하던 과일이나 채소가 '식품 외모지상주의'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못난이 농산물은 고르기, 형태, 색깔, 결점, 선별 등 품질 구분 기준을 미달하여 판매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비규격 농산물을 의미한다.[1] 우리나라 농산물은 물류 표준화에 적합하도록 규격을 정함으로써 유통 능률을 높이고 유통 비용을 절감하고자 한다. 또 정해진 규격이 상품성을 높인다는 이유로 농산물 표준규격을 활용한다.[2] 예컨대 여름 오이를 뜻하는 '가시계 오이'는 구부러진 정도가 2cm 이내면 특, 4cm 이내면 상, 특과 상에 미달하면 보통 등급을 받는다.[3]
▲ 오이 품질 구분 사진 |
ⓒ 농산물 표준 규격 등급도감 |
유통과정의 표준규격을 통과해도 소매업체 자체의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버려진다. 2021년 유엔환경계획(UNEP)의 식품 폐기물 보고서에 의하면 식품의 약 17%가 소매 및 소비자 수준에서 버려졌다.[5] 외적으로 매력적이지 못한 농산물을 구매하는 행위가 소비자로 하여금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또한 농산물의 겉모습이 못났다는 이유만으로 그 식품의 맛과 영양에 대해 평가절하하는 경향을 보였다.[6] 따라서 소매업자는 판매를 촉진하기 위하여 더 예쁜 식재료를 선택하여 판매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못난이 농산물 대부분이 아예 생산단계에서 산지 폐기된다. [7] .
버려지는 농산물의 현주소
버려지는 농산물은 산지 폐기가 되거나 가공업체에 헐값으로 팔린다. 우리나라 못난이 농산물은 등급 외 판정을 받으면 대부분이 산지 폐기되는데 이때 발생하는 비용만 연간 6000억원에 달한다.[8] 2020년 우리나라 총 폐기물 발생량이 1억9546만 톤이고 이중 생활폐기물이 8.9%(1730만 톤)를 차지한다.[9] 생활계 폐기물의 22.9%가 음식물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연간 약 350만 톤의 음식물이 버려지는 셈이다.[10]
서울신문이 농림축산식품부에 의뢰해 총 27개의 농산물을 대상으로 전국 128개 산지농협에 설문조사한 결과 등급 외 농산물이 전체 농산물 생산량에서 11.8%를 차지했다.[11] 못난이 농산물로 농가의 소득 손실이 발생할 뿐 아니라 팔리지 못한 못난이 음식물이 쓰레기 배출에 일조한다는 점에서 국내 농식품 폐기 현황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2019년 UNEP의 식량 위기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식량의 약 14%가 수확 후 판매되지 못하고 낭비된다.[12] 2021년 UNEP의 식품 폐기물 지수 보고서에서는 소비되지 못하는 식량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8~10%를 차지하여 기후와 가뭄, 홍수와 같은 극단적인 기상 현상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식량의 손실과 폐기물 감소를 우선시하여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13]
2021년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음식물 쓰레기 환경영향에 관한 보고서는 매년 미국 식량의 손실과 폐기물이 1억7000만 톤에 해당하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고 추산했다. 42개 화력 발전소에서 내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맞먹는다.[14]
▲ 못난이 농산물 |
ⓒ 조명신 |
국내 및 해외의 푸드 리퍼브 시장
프랑스 슈퍼마켓 엥테르마르셰(Intermarche)에서 2014년 '부끄러운 과일과 채소' 캠페인을 통해 "못생긴 당근, 수프에 들어가면 상관없잖아?"라는 슬로건으로 시세에서 30~50% 낮은 가격으로 못난이 당근을 판매한 것이 푸드 리퍼브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18] 이 이후로 푸드리퍼브 시장은 식품 시장뿐만 아니라 화장품 업계와 같은 비식품 시장으로 확대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더본코리아 대표 백종원과 신세계 그룹 부회장 정용진이 협력한 프로젝트 '못난이 감자'가 가장 대표적인 푸드 리퍼브의 사례로 남아있다. 백종원 대표는 판로를 찾지 못한 못난이 감자 30톤을 기존 농산물보다 싼 가격인 900g당 780원으로 판매하는 전략으로 소비자의 구매를 이끌었다.[19] 직접적인 농산물 구매 장려에서부터 시작하여 '파머스페이스'와 같이 버려지는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가와 식품 가공 업체를 연결해주는 사업까지 등장했다.[20]
▲ 네덜란드 크롬코마의 야채수프와 장난감(오른쪽). 어글리시크 화장품 사진 |
ⓒ 각사 홈페이지 |
푸드 리퍼브는 화장품 업계에서도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어글리시크는 못난이 농산물을 이용하여 화장품으로 업사이클링 하는 국내 브랜드로 지역 농가에서 생산한 유기농 못난이 농산물을 활용한다.[26] 전북 무주의 유기농 못난이 사과를 활용하여 저자극 여성 청결제를 만들고, 제주도의 유기농 브로콜리를 활용하여 자외선 차단제를 만든다.[27] 쏘내추럴은 못난이 감자로 마스크팩을 만들어 판매한다.[28]
못난이 농산물의 이점
저렴한 가격, 친환경적인 판매와 구매는 푸드 리퍼브의 많은 장점 중 일부다. 생각과 달리 재료 자체의 장점이 있다. 못난이 농산물이 오히려 더 좋은 맛과 영양성분을 갖고 있기도 하다. 2014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 버지니아 남서부가 원산지인 사과 중 흉터가 있는 사과가 같은 나무의 다른 사과보다 당도가 2~5% 더 높았다. 못난이 과일이 일반 과일에 비하여 더 영양소가 풍부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29] 과일을 대상으로 한 여러 연구에서 못난이 농산물이 페닐프로파노이드라는 산화 방지성이 있는 페놀 화합물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30] 식물이 곤충이나 질병으로부터 성장에 스트레스를 받아 못난 겉모습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영양학적으로 좋은 대사산물을 생산한다는 게 요지이다.[31]
▲ 식당에서 충청북도의 '어쩌다 못난이 김치'를 제공하며 홍보하고 있다. |
ⓒ 충청북도청 홈페이지 |
치솟는 물가에 못난이 농산물은 가계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준다. 한국소비자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못난이 농산물을 구매하는 이유로 "가격이 일반 농산물보다 저렴하다"는 답변이 46.4%로 가장 많았다.[34] 코로나19 장기화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농산물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소비자 부담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못난이 농산물은 못난 선택이 아닌 것이 된다.[35] 울퉁불퉁하고 상처 난 피부를 가진 탓에 소비자를 만날 기회를 원천 차단당한 못난이 과일과 채소가 지구와 경제를 살리는 영웅이 되고 있다. 외모지상주의 폐해가 사람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들었다.
글: 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이수빈·이은서 기자(지속가능바람), 이윤진 ESG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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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참고자료 [1] 못난이 농산물, 경기농정, https://farm.gg.go.kr/agri/34320 [2] 농산물 표준 규격 등급도감, 국립농산품질관리원, 2021.12 https://www.naqs.go.kr/ebook/spm/index.html#page=4 [3] 농산물 표준 규격 등급도감, 국립농산품질관리원, 2021.12 https://www.naqs.go.kr/ebook/spm/index.html#page=4 [4] ‘못난이 농산물’ 지구를 살린다, 경기농정, http://www.ikp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6387 [5]Food loss and waste,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of the United Nations, https://www.fao.org/nutrition/capacity-development/food-loss-and-waste/en/ [6] Why Consumers Devalue Unattractive Produce https://journals.sagepub.com/doi/epub/10.1177/0022242918816319 [7] 못난이 농산물, 경기농정, https://farm.gg.go.kr/agri/34320 '못난이 농산물'로 농가 살리고 환경도 지켜요, Ktv 국민방송, https://www.ktv.go.kr/content/view?content_id=638395 [8] 못난이 농산물, 경기농정, https://farm.gg.go.kr/agri/34320 '못난이 농산물'로 농가 살리고 환경도 지켜요, Ktv 국민방송, https://www.ktv.go.kr/content/view?content_id=638395 [9] 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 현황(2020), 환경부http://www.kwaste.or.kr/images/sub04/0101/20_2.pdf [10] 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 현황(2020), 환경부 http://www.kwaste.or.kr/images/sub04/0101/20_2.pdf [11] 과일·채소 ‘못난이’ 판정에 농가소득 연간 최대 5조 날아간다, 2020.8.24.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825021004 [12] 유엔식량농업기구, 2019, https://www.fao.org/3/ca6030en/ca6030en.pdf [13] UNEP Food Waste Index Report 2021, https://www.unep.org/resources/report/unep-food-waste-index-report-2021 [14] The Environmental Impacts of U.S. Food Waste, 2021.11, https://www.epa.gov/system/files/documents/2021-11/from-farm-to-kitchen-the-environmental-impacts-of-u.s.-food-waste_508-tagged.pdf [15] 유엔지속가능발전목표, https://www.undp.org/ko/seoul-policy-centre/sustainable-development-goals [16] 그린포스트코리아, http://www.greenpostkorea.co.kr [17] 예쁜 감자와 못난 감자는 맛이 다를까? , 그린포스트코리아 http://www.greenpost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9826 [18] Lutte anti-gaspi : Intermarché veut aller plus loin avec Too Good To Go, LSA, https://www.lsa-conso.fr/lutte-anti-gaspi-intermarche-veut-aller-plus-loin-avec-too-good-to-go,334441 [19] 트렌드 코리아 2021: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의 2021 전망 [20] 파머스페이스, http://www.fspace.co.kr/company.php [21] 크롬코마 ,https://www.kromkommer.com/english/ [22] 크롬코마, https://www.kromkommer.com/english/ [23] Plan Toys x Kromkommer Crooked Shaped Fruit & Vegetable Set, https://www.elenfhant.com/products/plan-toys-x-kromkommer-crooked-shaped-fruit-vegetable-set [24] Full harvest – vision, https://www.fullharvest.com/vision [25] Full harvest, https://www.fullharvest.com/ [26] 어글리시크 브랜드, https://uglychic.kr/brand.html [27] 어글리시크 상품, https://uglychic.kr/product/list.html?cate_no=42 [28] 쏘내추럴 못난이 감자 마스크팩, http://www.sonatural.co.kr/m/product.html?branduid=2172326#target2 [29] Higher antioxidant and lower cadmium concentrations and lower incidence of pesticide residues in organically grown crops: a systematic literature review and meta-analyses , https://www.semanticscholar.org/paper/Higher-antioxidant-and-lower-cadmium-concentrations-Bara%C5%84ski-%C5%9Arednicka-Tober/67b2ca87a2b52e77e58f8e8f990d783a24f26afd [30] Higher antioxidant and lower cadmium concentrations and lower incidence of pesticide residues in organically grown crops: a systematic literature review and meta-analyses , https://login.proxy.library.uu.nl/login?url=https://www.cambridge.org/core/journals/british-journal-of-nutrition/article/higher-antioxidant-and-lower-cadmium-concentrations-and-lower-incidence-of-pesticide-residues-in-organically-grown-crops-a-systematic-literature-review-and-metaanalyses/33F09637EAE6C4ED119E0C4BFFE2D5B1 [31] Beneath An Ugly Outside, Marred Fruit May Pack More Nutrition, https://www.npr.org/sections/thesalt/2016/04/26/475739569/beneath-an-ugly-outside-marred-fruit-may-pack-more-nutrition [32] ‘어쩌다 못난이 김치’ 김치의병운동 전국 확산, 충청북도청https://www.chungbuk.go.kr/www/selectBbsNttView.do?key=429&bbsNo=65&nttNo=250182 [33] 충북 ‘어쩌다 못난이 김치’ 호주 첫 진출, 충청북도청https://www.chungbuk.go.kr/www/selectBbsNttView.do?key=429&bbsNo=65&nttNo=249955 [34] 못난이 농산물, 맛‧식감 및 가격 만족도 높아, 한국소비자원file:///C:/Users/%EC%88%98%EB%B9%88/Downloads/210209_%EB%AA%BB%EB%82%9C%EC%9D%B4+%EB%86%8D%EC%82%B0%EB%AC%BC+%EA%B5%AC%EB%A7%A4%EC%8B%A4%ED%83%9C+%EB%B0%8F+%EC%9D%B8%EC%8B%9D_%EB%B3%B4%EB%8F%84%EC%9E%90%EB%A3%8C.pdf [35] 2020년 주요 농산물 품목별 전망과 현안, 한국 농촌 경제 연구원 https://library.krei.re.kr/pyxis-api/1/digital-files/375cc6ae-56dd-4dd2-a415-047ea24028f3 주요 농자재 가격 동향과 시사점, 한국 농촌 경제 연구원 https://library.krei.re.kr/pyxis-api/1/digital-files/908391ee-5c26-4753-8d99-22a991972d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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