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론 차트보다 빌보드에 먼저 간 걸그룹
[이현파 기자]
▲ 'CUPID'를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진입시킨 걸그룹 피프티 피프티 |
ⓒ 어트랙트 |
케이팝 시장의 고도화된 경쟁 속에서 중소 기획사의 아이돌이 빛을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뉴진스, 아이브, 르세라핌, 에스파 등 최근 4세대 걸그룹의 시대를 주도하고 있는 걸그룹은 대부분 대형·중견 기획사 출신이다. 수많은 중소 기획사 출신의 아이돌 그룹이 이름조차 알리지 못하고 해체되기 일쑤다.
그러나 지난 11월 데뷔한 4인조 걸그룹 '피프티 피프티(새나, 아란, 키나, 시오)'는 그런 운명과는 거리가 멀게 되었다. 이들은 중소 기획사 '어트랙트' 출신이다. 케이팝에 큰 관심이 없는 대중이라면, 회사의 이름도, 그룹의 이름도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얼마 전까지는 국내 최다 점유율을 자랑하는 멜론 실시간 차트에서도 이들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 피프티 피프티의 첫 싱글 앨범 'The Beginning: Cupid' |
ⓒ 어트랙트 |
그러나 현재 이들의 이름은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이 지난 2월에 발표한 'CUPID'는 지난 4월 1일 빌보드 핫 100 차트 100위에 진입했다. 이후 'CUPID'는 다음주 94위에 올랐고, 다음주에는 85위까지 오르면서 최고 순위를 갱신했다. 영국의 오피셜 차트의 탑 100 차트에서도 61위까지 올랐다. 이로써 피프티 피프티는 케이팝 아티스트 가운데 데뷔 이후 가장 빠르게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진입한 아티스트의 기록을 세웠다. 동시에 원더걸스,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트와이스, 뉴진스의 뒤를 이어 역사상 여섯 번째로 핫 100 차트에 진입한 케이팝 그룹으로 기록되었다.
'스포티파이' 등 글로벌 스트리밍 차트에서의 성적은 더욱 놀랍다. 4월 12일 기준, 'CUPID'는 스포티파이 글로벌 인기 곡 차트 7위에 올라 있다. 얼마 전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를 차지한 위켄드와 아리아나 그란데의 'Die For You', 랩스타 드레이크의 신곡 'Search & Rescue'도 넘어선 수치다. 월별 청취자수가 1780만 명을 넘어섰다. 웬만한 팝스타가 부럽지 않은 수치다. 추이상 더 높은 순위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
▲ FIFTY FIFTY (피프티피프티) - 'Cupid' Official MV ⓒ 어트랙트 |
케이팝의 영향력이 세계적으로 확장되고 있지만,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입성한 아티스트는 극소수다. 대형 기획사의 아이돌도 뚫기 어려운 길을, 어떻게 중소기획사의 신인 걸그룹이 뚫을 수 있었을까? 우선 노래의 힘이 유효했다. 'Kiss Me More' 등 도자 캣(Doja Cat)의 디스코풍 팝을 닮은 이들의 노래는 경쾌하다. 네 명의 보컬 역시 강점이다. 여타 걸그룹들과 달리 원숙한 느낌의 보컬이 따뜻하고 안정적인 무드를 만들어낸다. '백예린이나 카펜터스로 구성된 것 같은 걸그룹'이라는 찬사 역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노래가 좋다는 사실만으로는 이만큼의 열풍이 설명되지 않는다.
더 상세한 해답은 숏폼 플랫폼인 '틱톡'에 있었다. 틱톡에서는 원곡의 속도를 두 배 이상 높인 '스페드 업(Sped Up)' 버전이 소비자들에 의해 애용되곤 한다. 한 틱톡커가 'CUPID'의 스페드 업 버전을 '최고의 프리 코러스'라 극찬하면서, 'CUPID'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많은 사용자들이 'CUPID'에 맞춰 각자의 콘텐츠를 재생산했고, 곡의 영향력은 스트리밍 시장과 빌보드 차트로도 연결되었다. 피프티 피프티는 국내 시장만을 바라보고 탄생한 팀이 아니다.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CUPID'의 영어 버전(Twin Ver)은 호응을 증폭시키는 데에 한몫했다. 현재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진입한 곡 역시 'CUPID(Twin Ver)'이다.
팝 음악의 경우, 틱톡을 통해 이름을 알린 히트곡이 매우 많다. 더 키드 라로이의 'STAY', 릴 나스 엑스의 'Old Town Road',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Driver's License'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틱톡이 아직 대중적인 플랫폼으로 자리 잡지 못했고, 더 나아가 플랫폼에 대한 반감이 심한 것도 현실이다. 빌보드 차트와 국내 음원 차트의 확연한 온도 차는 그 때문이다.
그러나 바다 건너에서 불기 시작한 파도는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데뷔 당시에도 쇼케이스를 열지 않았던 피프티 피프티는 13일, 첫 기자 간담회를 열고 국내 언론을 만났다. 국내 실시간 음원 차트에서도 100위권에 진입하는 등 유의미한 상승을 거듭하고 있으니 '역수입'의 사례라 부르기 충분하다. 기적을 일으킨 걸그룹의 여정은 아직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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