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썰] 한국 독자 핵개발, ‘신기루’일까…북핵 대응 네 가지 시나리오
<안보와 군 관련 이슈는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문제지만, 기사 측면에서는 어려운 내용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軍썰]은 국민일보 정치부에서 국방부를 출입하는 정우진 기자가 안보 관련 이슈를 쉽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연재 기사입니다>
한·미 확장억제, 전술핵 재배치, 나토식 핵공유 그리고 한국 독자 핵개발까지….
북한 핵·미사일 위협의 대응 방안에 대한 각종 논의가 한국사회에서 분출하고 있다.
이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 수준의 차원이 달라졌다는 국민적 우려 때문이다.
국내외 분석들을 종합하면, 북한은 2023년 현재 80~90여기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핵탄두 소형화·경량화를 입증할 7차 핵실험만 남겨뒀을 뿐, 핵탄두와 발사·이동 수단을 모두 갖추고 핵무기 사용 규정까지 마련해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높아지는 북핵 위협과 관련해 거론되는 대응 방안은 한·미 확장억제, 전술핵 재배치, 나토식 핵공유, 독자 핵개발 등 네 가지다.
그러나 각각의 방안이 가진 구체적 근거와 배경은 생략된 채 단편적 주장으로만 논의되면서 용어를 둘러싼 혼란만 가중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네 가지 북핵 대응 방안의 정확한 개념과 역사, 실현 가능성 등을 따져본다.
“미국이나 동맹국 및 우방국들에 대한 비전략핵(전술핵)을 포함해 어떠한 핵공격도 용납할 수 없으며, 이는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다”
지난해 11월 3일 미 워싱턴DC에서 열린 제54차 한·미안보협의회(SCM) 공동성명에 포함된 문구다.
SCM은 한·미 국방부가 한해 동맹 현안을 결산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다. 통상 ‘핵우산(Nuclear Umbrella)’으로 일컬어지는 ‘확장억제’의 핵심이 이 문구에 집약돼 있다.
먼저 ‘억제(deterrence)’라는 개념은 적의 군사적 위협을 응징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보여주면서 적의 핵공격을 방지하는 전략이다.
적이 공격으로 얻는 이득보다 보복으로 인한 피해가 훨씬 크다고 판단한다면, 공포심을 느껴 공격을 단념할 것이란 합리적 추론이 억제전략의 뼈대를 구성한다.
미국의 억제 개념은 미국 본토에 대한 적의 핵공격을 막는 ‘직접억제’와 동맹국에 대한 핵공격을 막는 ‘확장억제’가 있다.
미국이 보유한 억제 수단은 재래식 전력과 미사일 방어체계 그리고 핵전력이 있다. 이 세 가지는 ‘전략자산’의 개념으로 포괄된다.
이중 핵전력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핵탑재가 가능한 전략폭격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한 전략핵잠수함(SSBN) 등으로 압축되며, 이는 ‘3대 핵축’으로 불린다.
핵추진 항공모함이나 세계최강 전투기인 F-22 등은 핵을 탑재하지는 않지만, 전략자산으로 분류된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은 한국이 북한의 핵공격을 받는다면, 미국은 핵을 포함한 통합 전력으로 북한을 초토화시키겠다는 약속이다.
이런 압박을 통해 북한의 핵공격 시도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한·미 확장억제의 목적이다.
‘핵우산’이 정치적 선언 수준에 머무르는 수비적 표현이라면, 구체적인 보복 수단까지 마련한 공격적인 전략이 ‘확장억제’다.
한국에 대한 ‘핵우산 제공’이 처음 명문화된 것은 1978년 SCM 공동성명이었다.
1970년대 주한미군을 감축하고 철수 가능성까지 내비쳤던 미국 정부에 불안함을 느낀 박정희정부가 독자 핵개발 움직임을 보이자, 미국 정부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핵우산 제공을 명문화했다는 것이 정설처럼 여겨진다.
이후 2006년 10월 SCM 공동성명에서 한국 측의 요구로 처음 ‘확장억제’란 표현이 등장했다. 이는 같은 달 진행됐던 북한의 1차 핵실험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SCM에선 “미국의 핵우산, 재래식 타격능력 및 미사일 방어능력을 포함하는 모든 범주의 군사능력”을 확장억제의 요소로 제시했다.
그러나 유사시 미국의 확장억제가 실제로 작용할지 여부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한 상황이다.
냉전 시기 유럽 동맹국들이 미국의 핵우산에 품었던 의심도 같은 맥락이다.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1961년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적 정찰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해외 기지에 전술핵을 가져다 놓지 않는다는 미국의 정책 방향을 고려할 때, 전술핵 재배치나 독자 핵개발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동시에 지금의 확장억제 전략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를 강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우선, 미국이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 공약을 구체적인 문구로 반복·재확인해 신뢰성을 높이고, 한·미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와 억제전략위원회(DSC) 등 기존 협의체보다 높은 수준의 조직을 상설화하는 시도가 필요하다”며 “아울러 군사적 측면뿐만 아니라 외교, 경제 등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통합된 확장억제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술핵 재배치는 한반도에 미국의 전술핵을 다시 배치하자는 주장이다.
‘핵에는 핵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핵균형이 주된 근거다. 한국이 자체 핵개발에 나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전술핵 배치가 아니라 ‘재배치’인 이유는 1958년부터 1991년까지 소련에 대한 견제 목적으로 주한미군에 전술핵이 배치됐던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1960년대 후반에는 약 900기에 달하는 전술핵이 한반도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991년 7월 미국과 소련 사이에 체결된 ‘전략무기감축조약(START)’을 계기로 한반도 내 전술핵 철수가 추진됐고, 같은 해 9월 미국 정부는 이를 공식화했다.
이후 남북은 1992년 1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체결했다. 당시 남한은 전술핵을 철수했고, 북한은 모든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기로 약속했다.
최근의 전술핵 재배치 주장은 의미가 달라졌다.
주한미군 기지에 전술핵을 배치하고 운용도 전적으로 미국 측에 맡기는 과거 방식보다, 우리 정부가 핵운용에 관한 기획에 함께 참여하거나 한국군 전투기를 투발수단으로 활용하는 등 한국의 관여를 일부라도 보장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개념이 변화했다.
전술핵 재배치를 단계적으로 실행하는 구상도 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전술핵 상시 배치가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게 어렵다면 선행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며 “한·미가 핵사용을 상정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작전계획을 작성하고 이에 따라 연습·훈련하는 것과, 괌 미군기지 등 인도·태평양 지역에 전술핵을 우선 배치하고 유사시 한반도에 긴급 배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차 수석연구위원은 “전술핵 재배치는 북한 공격에 대한 실시간 대응이 가능하고, NPT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면서 “핵전력에서 북한에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는 미국이 북한에 핵 보복을 가할 수 있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차 수석연구위원은 ‘전술핵 재배치가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에 위배된다’는 지적에 대해선 “당연히 위배된다”면서도 “그러나 북한이 사실상 이를 무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만 비핵화 공동선언을 준수해야 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역시 지난 1월 전술핵 재배치와 한국의 독자 핵개발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제시하면서도, 확장억제 전략이 북한에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에 대비해 전술핵 재배치를 위한 사전 준비 작업에는 착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의 전술핵 재배치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는 지난해 10월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전술핵에 대한 이야기가 푸틴에게서 시작됐든, 김정은에게서 시작됐든 무책임하고 위험하다”며 전술핵 재배치가 한반도 긴장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골드버그 대사는 이어 “위협을 증가시키는 핵무기가 아니라, 긴장을 낮추기 위한 핵무기 제거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이미 2만8000명 이상의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고, 미국은 핵전력을 포함한 확장억제 공약과 관련해 철통같은 의지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나토식 핵공유는 유럽판 ‘핵우산’이 구체화된 버전이다.
핵공유라는 용어로 인해 ‘미국과 나토가 핵무기를 공유한다’는 의미로 알려졌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나토식 핵공유는 ①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유럽 동맹국들의 영토 내에 배치하고, ② 유럽 동맹국이 보유한 ‘이중용도항공기(DCA)’를 핵 투발수단으로 활용하며, ③ 미국과 유럽 동맹국들이 ‘핵기획그룹(NPG)’을 통해 핵운용 계획에 참여하는 체계다.
이중용도항공기는 평시엔 재래식 전력으로 운용하다가 핵사용 결정 시 미국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항공기다.
현재 미국의 공중투하용 전술핵탄두 150여기가 나토 회원국 5개국(벨기에·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튀르키예) 내 6개 공군기지에 분산배치된 상태다(①의 내용).
나토군은 핵전쟁 상황을 가정해 핵탄두를 이중용도항공기에 장착하고 투하하는 과정을 숙달하는 핵억지연습 ‘Steadfast Noon’ 훈련과 핵이 없는 동맹국의 재래식 공중전력으로 핵투발 항공기를 엄호·지원하는 ‘Snowcat(설상차·눈 위를 달리는 특수자동차)’ 훈련을 연례적으로 실시한다(②의 내용).
NPG는 미국과 나토 회원국이 핵무기 정책·구상·배치·운용 등을 협의하는 기구로, 나토 국방장관들은 1년에 두 차례 NPG 회의에 참석해 핵전략에 대해 논의한다(③의 내용).
이는 전술핵 재배치 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차 수석연구위원은 “나토식 핵공유와 전술핵 재배치가 완전히 다른 방안이 아니다”라며 “나토식 핵공유는 전술핵 배치 상황에서 투발 수단을 공유하고, 평소 핵에 대한 정책에 대해 충분히 의견을 나눈다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핵탄두에 대한 소유권이 없고, 또 핵사용에 대한 결정권·거부권이 없다는 점에서 한계점도 분명하다.
동맹국에 배치된 전술핵탄두는 미군 통제 하에 있고, 동맹국은 시설과 경비만 제공한다.
핵사용에 대한 최종 권한 역시 미국 대통령이 독점적으로 보유하며 나토 동맹국이 이를 거부할 권한은 없다.
이에 따라 나토식 핵공유는 실제적인 군사적 효과보다 정치적 상징성이 큰 방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박상현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은 나토식 핵공유에 대해 “핵무기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핵억지 임무와 그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공유하는 것”이라며 “나토식 핵공유는 상징성이 더 크다”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은 이어 “한·미는 연합방위체계가 있고, 미군과 같이 짠 작전계획을 바탕으로 훈련하기 때문에 사실상 더 강력한 억제 체제를 가진 것”이라며 “한·미 동맹과 나토식 핵공유를 비교하는 것은 박사급 논문과 대학생 에세이를 비교하는 수준”이라고 비유했다.
기존의 확장억제 전략에 나토식 핵공유의 일부를 선별적으로 차용하는 방식도 대안으로 꼽힌다.
박 연구위원은 “핵 공동기획은 핵사용에 대한 책임을 공유함으로써 억제 신뢰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며 “아직 핵사용에 대한 작계는 없는 것으로 아는데, 한·미 양국이 다양한 채널을 활용해 공동 핵기획을 추진한다면 더욱 강력하고 신뢰성 높은 ‘핵 동맹’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독자 핵개발은 말그대로 한국이 자체적으로 핵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핵은 핵으로 억제한다’는 핵균형의 관점에서 가장 확실한 방안으로, 이를 지지하는 국민 여론도 강하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은 다른 대안 중 가장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독자 핵개발의 기저에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우리 국민의 불안 고조, 그리고 미국의 확장억제 전략에 대한 의구심이 깔려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한은 이미 2017년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했고,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 개발에도 상당한 진전을 보여 우리가 미국의 핵우산과 확장억제에 전적으로 의존해도 되는가에 대한 의문이 계속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실장은 이어 “북한이 남한을 핵무기로 공격하면 미국이 한국을 위해 북한을 핵무기로 보복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미국이 북한을 핵무기로 공격하면, 북한도 미국 본토를 핵무기로 공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향해 핵 사용을 결정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은 여전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북핵 대응 수단으로 거론되는 확장억제와 전술핵 재배치, 나토식 핵공유는 핵사용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미국 대통령이 지닌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에서 독자 핵개발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은 것도 이런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 때문이다.
정 실장은 “현재 미국 정부가 한국의 독자 핵개발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 정부가 긴 호흡을 가지고 독자 핵개발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최종현학술원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2022년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1대1 면접조사를 실시해 1월 30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76.6%는 ‘한국의 독자적인 핵 개발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독자 핵개발 주장과 관련해 핵개발로 인한 국제사회의 고립을 자초하고, ‘불량국가’로 낙인찍힌 북한의 길을 걷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또한, 한·미 동맹의 파탄 가능성, NPT 탈퇴로 예상되는 국제사회의 제재, 남북 간 핵대결 구도로 인한 상시적 갈등과 충돌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한국이 미국의 반대에도 독자 핵개발에 나서는 것은 곧 미국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미국 측이 한·미 동맹 및 주한미군의 역할과 규모를 재검토할 가능성이 있다”며 “극단적으로는 주한미군이 철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어 “한국이 독자 핵개발에 나설 경우 당장 국제사회의 제재가 부과될 것인데, 수출 위주의 개방경제체제인 한국이 이를 감당할 여건이 안 된다”며 “더욱이 우라늄 등 원자력 발전에 필요한 핵물질도 전량 수입하고 있는데, 당장 이것부터 끊길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한국이 핵무기 개발을 6개월 내 완료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핵개발이 핵폭탄 생산 이외에도 핵무기 유지·보수·관리 등 국가 차원의 총체적 프로그램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독자 핵개발의 실현 가능성은 떨어진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도 지난 6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 핵개발 여론이 커지고 있는 것과 관련해 “많은 국민이 원한다고 해서 중대한 정책을 거기에 따라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가 있다”며 “국민의 희망사항과 실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달리 봐야 한다”고 독자 핵개발 주장에 선을 그었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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