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人사이드]"무엇이든 좋아, 시작하면 돼" 日 감동시킨 91세 치어리더 할머니 이야기

전진영 2023. 4. 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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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고 싶어' 53세 미국 유학·63세 팀 결성
90세에 꺾이지 않는 도전 정신으로 日 감동시켜

요새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격려 문구는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인것 같습니다. 듣기만 해도 다시 힘을 내서 뛰어들 채비를 하게 되죠.

일본에서도 얼마 전 91세 현역 치어리더 타키노 후미에씨 이야기가 방영됐습니다. '나답게 살고싶다'며 53세에 홀로 미국 유학을 떠나 치어리딩을 배웠고,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무대에 올라 일본에서는 유명세를 탄 인물입니다. 그의 삶의 태도는 사람들에게 많은 울림을 주기도 했는데요. 오늘은 열도를 감동시킨 91세 타키노씨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지난해 대회에 참가해 춤을 추고 있는 타키노씨의 모습.(사진출처=닛테레)

타키노씨는 원래 평범한 주부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상은 그저 행복하지 못했다고 회상합니다. 27년간의 결혼 생활 중 남편과는 대화가 단절됐고, 자녀 교육은 거의 타키노씨가 도맡았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모두 직장인으로 정착한 52세때, 결국 따로 혼자 나가 살겠다고 선언합니다. 오랜 기간 주부로 살았던 탓에 결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독립하면 혼자 살자'라고 생각했다가도 '딸이 결혼할 때 까지 참자', '아니 손자가 태어났을 때까지 참자'로 계속해서 미루게 됐던 것이죠. 가족을 위한 삶 속에서 점차 자신이 지워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큰 마음을 먹고 집을 나온 순간부터 그의 세컨드라이프가 시작됐습니다. 타키노씨는 혼자 살 곳을 정해 이사한 날을 '독립기념일'로 부릅니다.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인생을 다시 바라 볼 마지막 기회"라며 미국에 유학을 가서 노인학 관련 공부를 하겠다고 결심합니다.

타키노씨는 미국 대사에게 "나는 나이가 많아 느긋하게 기다릴 수 없다. 당장 비자를 달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는데요, 이에 미국 대사관에서는 빠른 비자 발급과 함께 격려 편지도 함께 보내줬다고 합니다.

3년간 미국생활을 하며 대학에서는 석사학위를 따고, 뉴욕의 한 양로원에서 연수까지 거쳤다고 합니다.

지난해 대회에 출전한 타키노씨 팀의 모습.(사진출처=닛테레)

타키노씨가 다시 일본 땅을 밟았을 때는 어느덧 57세가 됐을 때입니다. 일본에 와서 무엇을 이어나갈까 고민하던 중, 미국에서 보내 준 노인학 관련 서적에서 '시니어 치어리딩'을 소개한 것을 보게 됩니다. '애리조나 노인 커뮤니티인 선시티에는 선시티폰즈라는 치어리더 그룹이 있다'라는 두 문장을 발견하고, 바로 그룹 리더에게 이메일을 보내 의상, 선곡, 연습 방법 등의 조언을 듣기 시작합니다.

타키노씨는 결국 63세 지인 5명을 모아 '재팬 퐁퐁'이라는 팀을 결성합니다. 가입 자격은 55세 이상. 5명으로 활동을 시작했는데, 현재는 20명이 넘는 멤버들이 모여 평균연령 70세의 대형 그룹이 됐다고 합니다.

시니어 그룹이라 새 곡을 배우면 이전 곡에서 배웠던 동작을 잊어버리는 등 한계가 있지만, 타키노씨는 "나이는 변명거리가 되지 않는다"라는 좌우명으로 난이도를 낮추지 않고 팀 연습을 일주일에 한 번씩 진행한다고 합니다. 춤을 출 때도 미국에서 들여 온 미니스커트, 반짝이 등 화려한 의상과 화장을 선보입니다.

팀 연습에서 지시를 내리는 타키노씨.(사진출처=재팬퐁퐁 홈페이지)

타키노씨의 리더십도 주목을 받았었는데, 시니어지만 50대부터 9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있다보니 연습이 사회생활처럼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연습 때 인원 수 만큼 간식 준비하기 금지, 무대 당일 팀에 돌리는 도시락 금지 등의 조치를 내렸다고 합니다.

다만 코로나19로 치어리딩 대회가 계속해서 미뤄지면서 타키노씨도 육체의 한계, 그리고 팀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의 한계에 봉착하기도 합니다. 이번에 화제가 된 다큐멘터리는 그가 현명하게 이를 풀어나가 일본 최고령 치어리더의 자리를 지켜내는 모습을 보여줬는데요. 저도 시니어팀의 무대에 대한 기대가 낮았었는데, 젊은 선수들 못지않게 쉬는 구간 없이 끊임없이 대형을 이동하는 모습을 보며 나중에는 박수를 치게 됐습니다.

타키노씨는 입버릇처럼 "무엇이든 좋으니 일단 시작하면 돼"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사회의 시선에 밀려, 책임감에 꺾여 혹시 이루지 못했던 꿈이 있으신가요? "나 답게 사는 것에는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타키노씨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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