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은 왜 입 다물었을까…'2500조원' 석유 제국의 절대 반지 [딥다이브 중동]

김종학 2023. 4. 15.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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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TV 김종학 기자]

석유수출국기구와 러시아 등 산유국 모임인 OPEC+ 회원국들이 다음 달부터 하루 116만 배럴의 원유를 추가로 감산한다는 발표와 미국 내 원유 재고 감소 영향으로 5월 인도분 국제유가는 배럴당 80달러선을 회복했습니다. 3월 저점에서 20% 넘게 올랐고, 1월 이후 최고치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석유 생산을 늘려달라고 압박하던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엔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하고 속 앓이 하고 있습니다. 중국에는 수십 조 원의 투자금을 쏟아붓고, 급기야 숙적 이란과 관계 회복까지 나선 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 때문이죠.

OPEC+ 회원국을 대표하며,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을 난감하게 만들 정도의 힘은 바로 '석유' 생산과 정제로 매년 벌어들이는 천문학적인 재력에서 나옵니다. 바로 사우디아라비아 국내총생산 GDP 70% 이상을 책임지며 석유 생산과 정제산업을 모두 쥐고 있는 지구 최대기업 아람코(Aramco)입니다.

지난해 순이익만 1,611억 달러(약 213조 7천억 원), 배당 195억 달러 (약 25조 8천억 원). 우리나라 삼성전자 '22년 연간 순이익의 4.2배, 미국 최대 기업 애플 순이익의 1.3배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돈을 벌어들이는 회사.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에 막대한 현금을 쓸어담고 있는 유일무이한 이 기업, 대체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 전세계 정세를 바꾼 '석유 수저'…절대 왕정의 탄생 지난 2019년 사우디아라비아 증권거래소 타다울(Tadawul)에 상장해 시가총액 약 2,500조원에 달하는 아람코는 20세기 전쟁과 세계 경제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업입니다. 아직 100년 역사도 채 되지 않는 사우디 역사와 경제력을 모두 설명하는 기업이라고도 할 수 있죠. 지난해 기준 아람코 소유 유전 내 매장량은 원유 2,008억 배럴과 액화천연가스(NGL) 252억 배럴 등 개발 가능한 탄화수소만 2,558억 배럴에 달합니다.

아람코의 역사와 떼려도 뗄 수 없는 나라 '사우디'의 공식 국가명은 사우드 가문의 이름을 딴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입니다. 몇 안 되는 '왕정' 국가인 사우디는 국기 속 기다란 칼처럼 '석유의 보고(寶庫)' 아라비아 반도를 쥐기까지 무수한 전쟁을 치러온 나라입니다.

1700년대초 무함마드 빈 사우드와 빈 압델 와하브가 기반을 닦은 사우디 왕가는 19세기초 이슬람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 지역까지 장악하지만, 당시 오스만 군대에 밀려 아라비아 구석 쿠웨이트로 쫓겨나다시피 합니다.

이랬던 가문을 다시 일으킨 인물이 '석유 산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초대 국왕 '압둘 아지즈 이븐 사우드(이하 이븐 사우드)'입니다. 이븐 사우드 국왕은 1902년 라시드 가문으로부터 아라비아반도 한 복판에 있는 지금의 수도 리야드를 탈환하는데 성공하며 나라 재건의 기반을 만듭니다.

그러나 매년 10만 명 메카 성지 순례자로 경제를 키워가던 사우디는 1930년대 전 세계에 닥친 대공황을 피하지 못합니다. 코로나 이후 다시 개방한 지난해 그랜드 모스크를 찾은 순례객 인파만해도 100만 명을 넘어섰으니, 종교적으로도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행사라고도 할 수 있죠. 무슬림이 일생에서 건강과 가정 형편이 허락하는 한 반드시 찾아야 하는데도 경기악화로 성지를 찾는 사람이 반토막이 나니 이븐 사우드는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할 필요가 생기게 되죠.

국왕 이븐 사우드는 마침 네덜란드 출신 기술자 '프랭크 홈즈'의 도움으로 아라비아반도에 끈적한 검은 기름, 유전이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얻게 됩니다. 마침 이 시기는 페르시아 지역에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었을 무렵입니다. 대영제국과 네덜란드, 프랑스 등이 석탄보다 운송에 효율적인 석유 채굴 사업에 뛰어들어 '로열 더치 쉘', 프랑스 '토탈' 등의 기업이 탄생하던 때이기도 하죠.

대영제국은 이때만 해도 바다건너 아라비아 반도에서 유전을 개발해도 페르시아 만한 수익을 얻기 어렵다고 오판하는데, 그 기회가 신생국가였던 미국으로 모조리 넘어가게 됩니다. 마침 석유 채굴 기술과 무기를 쥔 미국에게 사우디는 최고의 파트너가 됩니다. 두 나라가 손을 잡게 되면서 사우디는 1930년대 중반 지금의 쉐브론(Chevron), 당시 미국 최대 재벌이었던 록펠러의 미국 '스탠다드 오일 오브 캘리포니아(SOCAL)'와 손잡고 60년간 석유 채굴권을 넘겨주게 되죠.

이때 스탠다드 오일이 합작한 '사우디 캘리포니아 아라비안 스탠다드 오일사'(CASOC)를 통해 7번째 광구인 동부 다란 지역 내 '담맘 7번' 이른바 '번영의 우물'에서 첫 석유를 찾게 됩니다. 다란은 현재 아람코 본사와 연구개발 센터 등이 위치한 상징적인 곳이기도 합니다.

사우디는 이를 발판으로 1938년부터 본격적인 원유 상업 생산에 돌입해 이후 수석 지질학자 맥스 스테인케와 함께 1940년 아브카이크 유전, 1951년 사파니야 해상유전을 찾아 잇따라 성공시키고 1946년부터 라스 타누라 원유 터미널을 확장해가며 중동 원유 주도권을 쥐게 됩니다.

● 홍해 군함서 만난 미국-사우디…전쟁이 키운 검은 황금

아람코는 70년대 이후 폭발적인 유가 상승과 달러를 통한 재무적인 안정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랐는데, 이러한 성장사는 모두 전쟁 이후 미국과 사우디 동맹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도 합니다.

결정적 계기 중에 하나는 2차 세계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얄타회담 직후 홍해로 향하면서 만들어집니다. 미국은 당시 중립국이던 사우디를 설득해 북아프리카 전선의 기갑 부대에 필요한 석유 공급망을 만들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죠.

수에즈 운하 군함 위에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이븐 사우드를 만난 루스벨트 대통령은 연합국 승리에 결정적 기여를 하게 되는 거래를 성사시킵니다. 하지만 국제 정세에서 영향력을 키우던 두 나라의 관계는 1973년에 중동 전쟁을 기점으로 극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미국이 우방인 이스라엘을 지원한 것에 실망한 사우디는 유정을 모두 폐쇄해 원유 가격을 단숨에 3배씩 올리는 '오일 쇼크'를 일으키게 되죠. 배럴당 3.2달러 수준이던 석유 가격이 11달러를 넘어 70년대 후반까지 완만한 상승을 지속하게 됩니다.

극심한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진 미국 닉슨 대통령은 이란 등 다른 중동 국가로부터 사우디의 안전을 지켜주는 대신 원유 대금을 달러로 결제하는 권리를 얻는 거래를 성사시킵니다.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이자 OPEC 리더인 사우디가 아람코를 통해 생산한 원유를 달러로 결제하면 다시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페트로 달러' 시대가 개막하게 된 겁니다.

● "해볼테면 해보세요"…중국에 패권 열쇠 쥐어줄까

세계 대전 이후 80년 가까이 이어진 미국의 절대적인 영향력은 사실 아람코가 뽑아올린 석유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우디는 이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죠.

전 세계 원유 수출액에서 사우디는 16.5%로 러시아, 캐나다, 미국 등을 압도합니다. 대부분 자국에서 소비하는 북미 국가와 전세계 제재를 받은 러시아를 빼면 사우디 수출액에 따라 원유 가격이 변동하는 불가피한 구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재 미국이 중국과 이란을 견제하고 세계 경제에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도와준 사우디를 이끄는 것은 선대 국왕이 아니라 형제들로부터 권력을 장악한 신흥 세력 '무함마드 빈 살만'입니다.

지난 미국 대선 때부터 "국제적 왕따를 시키겠다"던 바이든 대통령의 말과 달리 사우디는 보란 듯 적대국가였던 이란과 손을 잡고, 나아가 아시아 투자를 늘리며 중국과 석유룰 위안화로 거래하는 '페트로 위안화' 가능성까지 열어두기 시작했습니다.

실제 무함마드 빈 살만은 지난해 더아틀란틱과 인터뷰에서 "전세계에서 가장 잠재력있는 나라는 사우디이고, 기회를 놓치면 동쪽(중국) 나라가 매우 기뻐할 것"이라는 경고를 내놓은 바 있습니다.

이미 사막 위에 건설하는 1조 달러 규모의 '네옴시티', 신재생에너지와 정보기술 산업에 투자를 늘리면서 새로 광구를 뚫을 비용 예산이 줄고, 즉각적인 증산을 할 여력이 부족하다는 진단도 나옵니다. 사우디 국부펀드는 외부 투자 외에 내부에서 연간 400억 달러를 지출할 예정인데, 매년 이를 감당하려면 국제유가가 100달러에 가까운 수준으로 유지되어야 합니다.

사우디는 감산을 통해 원유 가격을 유지하는 한편으로 1천만 배럴 이상 생산하는 아람코를 점차 석유 채굴 중심의 업스트림에서 정제와 기반시설 관리의 다운스트림으로 확장하며 수익을 다각화하는데 무게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석유 시대 이후를 서서히 대비하는 움직임이 이 기업의 사업 구조에서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죠.

그동안 석유 생산을 기반으로 국민들 세금조차 잘 걷지 않았던 사우디는 이제 돈 써야 할 이유가 늘어나고 있기도 합니다. 아예 작정하고 중국을 설득해 홍콩증시에 아람코의 추가적인 지분을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기도 합니다. 미국 뉴욕증시와 금융산업에게는 커다란 손실이 되는 이벤트가 될게 자명하죠.

사우디가 80년 우방이던 미국과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모두 끊을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석유 이후의 세기를 준비하기 시작한 차세대 권력자 무함마드 빈 살만에게 경제적인 이해관계를 보장해줄 대안과 이를 노린 나라들간의 경쟁이 시작된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2) 韓·中에만 20조 투자...원유 정제·건설산업 큰손 아람코가 그리는 빅픽처 [딥다이브 중동] (3) 캠핑도 같이 가던 사이가 어쩌다…사우디 아람코로 본 석유 메이저의 탄생사 [딥다이브 중동]
김종학기자 jhkim@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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