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더레코드]이선균 "'킬링로맨스' 마음껏 갖고 노세요"
장발·스모키 변신에 가족도 외면
"이츠 굿" 애드리브 도수치료中 영감
깔끔한 수트를 입고 반짝이던 순애보, '봉골레 하나'를 외치던 로맨틱 셰프는 없다. 배우 이선균(48)은 진한 아이라인에 콧수염을 달고 '이츠 굿'(It's good)을 외치는 부호로 돌아왔다. 그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오스카 4관왕에 빛나는 '기생충' 주연으로 주목받았다. 자연스럽게 다음 행보에 관심이 쏠렸고, 코미디 영화 '킬링 로맨스'를 차기작으로 받아들었다. 궁금했다. 무엇이, 어째서 그를 코미디로 눈 돌리게 한 걸까.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선균은 "이원석 감독이 나한테 왜 '킬링 로맨스' 대본을 줬는지 궁금했다"며 "'기생충' 아카데미 시상식 참석차 미국에 가는 길에 거절하기 위해 감독과 만났다"고 떠올렸다.
이선균은 "'킬링 로맨스' 대본은 정말 재밌었다. 깔깔대고 봤지만, 조나단은 뭔가 많은 걸 해야 할 것 같아 부담됐다. 캐릭터 강한 배우가 하면 변주가 쉬울 텐데 왜 나였는지 궁금했다. 감독님과 만났는데 '아니다. 너는 할 수 있다'고 설득하셨다. 립서비스에 당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감독님과 친한 형 동생 사이가 됐지만, 당시에는 인연이 깊지는 않았다. 감독의 전작인 '남자사용설명서'(2013)을 재미있게 봤다. 독특해서 인상적이었다. 연출자와 배우로서 시너지가 날 거라는 기대가 생겼다. 이하늬가 합류하면서 안 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운명처럼 나타난 '킬링 로맨스'
2020년 2월 '기생충'(감독 봉준호)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 등 4관왕을 차지했다. 이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한 장소에서 열린 애프터 파티에 참석한 이선균은 이하늬와 우연히 마주쳤다. 당시를 떠올리며 이선균은 "이하늬가 '킬링 로맨스 진짜 할 거예요?' 묻길래 '너 하면 하겠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하늬도 '오빠가 하면 하겠다'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킬링 로맨스'는 운명처럼 찾아온 작품"이라고 했다.
"운명을 믿는 편이에요. 오늘 점심 먹으러 식당에 갔는데 냅킨에 '덕이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쓰여 있더라고요.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올라서 저희 톡방에 사진 찍어서 올렸어요(웃음). 지나가는데 청국장집 앞에서 사람들이 웨이팅하고 있더라고요. 청국장도 영화에 나오잖아요. 우리한테 좋은 기운이 오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죠."
영화는 어른들의 동화를 표방한 코미디. 조나단은 극적인 개연성에서 자유로운 캐릭터다. 이선균은 연기하며 비로소 자유로웠다고 했다. 그는 "이전까지 영화를 끌고 가는 역할을 해왔는데, 이번에는 과장된 캐릭터고 현실적이지 않은 인물이라서 마음대로 해도 되는 배역이었다. 하고 싶은대로 했고, 재밌었다"고 했다.
그는 "감독님과 연출자와 배우 관계를 넘어 형, 동생 사이로 편하게 대했다. 그래서 더 자유로웠다.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현장이 좋았다. '이츠 굿' 추임새도 애드리브였다. 하루는 담에 걸려서 병원에 도수치료를 받으러 갔는데, 도수치료사가 외국에서 생활하다 오셨는지 치료를 하시면서 '굿, 굿. 이츠 굿' 그러더라. 재밌어서 바로 배역으로 가져왔다. 주어진 상황에 맞게 잘 놀았다"고 말했다.
이선균은 조나단의 강렬한 외형을 표현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붙이고 진하게 화장도 했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아내인 배우 전혜진을 비롯해 두 아들도 등을 돌렸다며 웃었다.
"조나단의 머리 모양을 5~6개 후보를 두고 고민했어요. 촬영 한 달 전에 스타일이 픽스돼서 머리카락을 미리 붙였어요. 가발이 아닌 진짜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죠. 촬영을 포함해 4달 동안 장발 스타일을 하고 다녔네요. 그 머리로 편하게 어디든지 다녔어요. 그런데 가족들이 한강에서 저를 외면했어요. 모르는 사람인 척하더라고요.(웃음) 아이라인도 진하게 그리고 다녔는데, 촬영이 끝나고 거울을 볼 때마다 허전했어요."
백만짤 예약…1020 관객 사로잡을까
이원석 감독의 전작인 '남자사용설명서'는 시대를 앞서간 영화라는 평을 받는다. 지금 그 영화가 나왔다면 100만 '짤'(인터넷상에서 사진이나 그림)을 양산했을 터다. 이러한 맥락에서 '킬링 로맨스'도 기대가 크다.
이선균은 "관객들이 영화를 가지고 마음껏 놀았으면 좋겠다. 적극적으로 활용해달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유튜브 콘텐츠가 지상파나 예능보다 관심도가 높고 많이 소비되다 보니 부캐(부 캐릭터)나 과학 캐릭터가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시기에 젊은 관객에게 '킬링 로맨스'가 편하게 다가가지 않을까"라고 기대감을 보였다.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6학년 두 아들을 보며 달라진 콘텐츠 소비 환경을 더욱 실감한다고 했다. 이선균은 "아이들은 TV를 잘 안 본다. 유튜브만 본다. 홍보 환경도 바뀌었더라.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에 나간다고 했더니 '아빠가 어떻게 그런데 나가'냐고 묻더라"며 웃었다. 이어 "플랫폼 확장은 소비하는 입장에서는 좋지만 다른 차원의 공간인 극장에서 여행하는 기분, 영화를 보는 재미를 젊은 친구들이 느끼길 바란다"고 했다.
"'킬링 로맨스'의 엉뚱한 전개와 과한 캐릭터들의 향연에 '얘네 뭐야?' 하지 마시고, 20분만 마음을 열고 봐주세요. 굉장히 재밌게 보실 거예요. 저와 이하늬, 공명이 어우러지기 시작하면서 영화가 더 재밌게 흘러갑니다. VIP 시사회가 끝나면 동료 영화인들이 '좋다'고 말씀하시는데요,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거든요. 최근 시사회 끝나고는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 관계자들이 '오랜만에 독특한 한국영화가 탄생했다'며 축복해주셨어요."
흥행에 대한 부담감도 숨기지 않았다. 이선균은 "성적에 대한 부담은 물론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한국영화가 성장한 것은 관객의 사랑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부상했고, 숏폼(짧은 형식) 콘텐츠가 떠오르면서 특정 매체에 대한 지구력이 약해졌다. 짧은 영상, 자극적인 콘텐츠가 사랑받는 분위기다. 젊은 관객들이 극장에 안 가는 건 영화관람료 인상 배경도 있지만, 다른 물가도 많이 오르지 않았나.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도록 열심히 만들겠다"고 했다.
예능 도전 OK, 선물 받는 기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선균은 예능프로그램과는 다소 거리가 먼 배우였다. 그는 "예전에 배우들이 예능 출연을 주저한 건 개인적인 모습이 드러날까 봐서다. 방송에 나가서 잘 놀 자신도 없고, 개인기에 대한 압박감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최근 여행 예능은 편하게 출연자들끼리 임하는 모습을 편집으로 잘 만들어주신다. 신경을 안 써도 된다. 방송 자체가 선물 같다. 앨범을 받아보는 것 같은 재미도 느낀다"고 했다.
이선균은 최근 tvN 예능프로그램 '아주 사적인 동남아'에서 장항준 감독, 배우 김도현·김남희와 함께 출연 중이다. 최근 방영 중인 캄보디아 편에 이어 태국 여행기가 그려질 예정이다. 그는 "캄보디아에서 귀국 후 열흘 후에 태국으로 떠났다. 태국 이야기도 재밌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어 "한번 여행 다녀와서 친한 관계가 돼서 태국은 더 재밌게 다녀왔다"고 말했다.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웃긴 사람이 장항준, 이원석 감독이에요. 제작진에 제안해서 장항준 형이 같이 여행을 떠나게 됐는데, '리바운드'(감독 장항준)는 이미 배급이 결정된 상태여서 최대한 영화 홍보에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했거든요. 그런데 두 번째 여행지인 태국에 갔을 때 갑자기 '킬링 로맨스' 배급이 잡힌 거예요. 그다음부터는 경쟁에 돌입했죠. 아마 굉장한 경쟁 구도가 방송에서 펼쳐질 거예요.(웃음) 극장도 그렇고 한국영화가 침체기를 겪다 보니 서로 응원하고 있어요. 저도 아이들 데리고 '리바운드'를 보러 다녀왔어요. 두 작품이 함께 잘 돼서 영화관 부활의 신호탄을 쏘길 바랍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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