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도청 미스터리' 스노든 때 韓 정부는 어떻게…

윤슬기 2023. 4. 15.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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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한국 등 동맹국 불법도청 논란
'스노든 폭로' 땐 美 원론적 입장만
정치권 "강경 대응해야" 목소리

미국 정부가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을 도·감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과거의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미국은 2013년에도 불법 도청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당시의 외교부는 미국 정부에 한국 정상이 도청 대상에 올랐는지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미국 측은 "한국 입장을 이해한다"는 원론적 대답만 내놨다.

뉴욕타임스(NYT)·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은 지난 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미군 기밀 문건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유출된 사건과 관련, 미국이 동맹국들을 감청해온 정황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문건은 미 국가안보국(NSA), 중앙정보국(CIA), 국무부 정보조사국 등 정부 정보기관 보고서를 미 합동참모본부가 취합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보도에 따르면 100쪽에 이르는 문건에는 한국 정부가 '살상 무기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기존 원칙을 어기고 미국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를 제공할지를 놓고 김성한 전 안보실장과 이문희 외교비서관이 토론을 벌인 내용이 담겼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미국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이런 보도에 대통령실은 9일 "제기된 문제에 대해 미국 측과 필요한 협의를 할 예정"이라며 "과거의 전례, 다른 나라의 사례를 검토해 대응책을 한 번 보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실의 대응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과거의 전례와 다른 나라의 사례도 이미 다 알고 있지 않으냐"라며 "한심하고 비굴하기 짝이 없고, 항의해도 시원찮을 판에 무슨 협의를 한다는 말인가"라고 일갈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는 당장 미국 정부에 강력히 항의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받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10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주권 침해이기 때문에 강하게 (미국에) 항의하고 원인을 분석하고 거기에 대한 재발 방지를 요구하고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마치 우리가 이해하는 것처럼 입장을 먼저 내는 것은 이건 외교적으로나 우리 주권의 관점에서 봤을 때 적절치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 정부의 불법 도청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2013년 전 CI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은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적대국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프랑스, 브라질, 이탈리아, 일본, 멕시코, 인도 등 다른 동맹국의 미국 주재 대사관을 염탐했다고 폭로했다.

영국 가디언이 스노든으로부터 입수한 NSA의 문건에 따르면 NSA는 워싱턴DC에 있는 대사관 38곳을 '표적'으로 지정하고 도청과 사이버 공격 등을 통해 무차별 정보수집을 해왔다. 2007년에 작성된 문건에는 "워싱턴 DC의 유럽연합(EU) 대사관을 염탐해 정책상 이견 등 EU 회원국 간의 불화를 포착하려 한다"라는 목적이 명기돼있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013년 북부 하노버의 전자제품 박람회 ‘세빗(CeBIT)’의 한 부스에서 블랙베리 휴대전화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제공=AP연합뉴스

당시 유럽연합(EU)은 미국의 EU 도청 의혹 보도와 관련해 미국 당국에 해명을 요구했다. 마틴 슐츠 당시 EU 의회 의장은 "이게 상호 신뢰에 바탕을 둔 건설적 관계의 초석이냐"며 "사실일 경우 큰 충격이다. 유럽을 마치 적으로 대하며 위협을 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도청 대상으로 거론된 당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수십 년 우방국 최고지도자의 대화를 엿듣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의 경우 항의 차원에서 미국 국빈 방문을 취소했다.

도청 파문으로 인해 미-EU 자유무역협정(FTA)인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은 좌초 위기를 맞기도 했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미 정보기관의 스파이 행위는 용인할 수 없다며 미국 정부의 해명을 요구했는데,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은 의혹이 명확히 밝혀질 때까지 미국과의 협상을 중단해야 한다며 미국을 압박했다.

이후 양측은 일단 FTA 협상하기로 했지만, 일부 EU 국가의 반발 끝에 미국의 도청 문제를 다룰 별도의 전문가 회의를 함께 열어 두 가지 현안을 동시에 논의했다.

윤병세 전 외교부장관이 2013년 10월3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확인감사에 출석해 미국 정부의 도청 파문과 관련 "앞으로 구체적인 사안이 밝혀지는 대로 사안의 성격에 따라 엄중하고 분명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표현과 관련 없음.

한국 외교부는 스노든 사태 당시 적절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며 한미간의 외교채널을 통해서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사안을 엄중히 주시하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후 2013년 10월 외교부는 미국 측에 한국 대통령에 대한 도청 여부를 확인할 것을 공식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의 의문 제기에 대해 "입장은 이해할 수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사실상 미국으로부터 관련한 해명이나 적절한 조치를 얻어내지 못하면서 외교부의 대응은 비판 대상이 됐다.

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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