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만 쳐다본 가뭄·산불…봇물 터진 '4대강 보 물그릇론' 논쟁
지난달 31일 윤석열 대통령이 전남 순천 주암 조절지댐을 찾아 "그간 방치된 4대강 보 최대한 활용하라"고 한화진 환경부 장관에게 지시한 이래 환경부 등 각 부처는 가뭄 대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런 가뭄 대책에 대해 시민·환경단체에서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등 대책을 둘러싸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14일 오전에는 대통령 직속 국가 물관리위원회(위원장 배덕효) 주관으로 '영산강·섬진강 유역 중·장기 가뭄대책 정책토론회'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같은 시각 시민환경연구소·한국 강살리기네트워크 등 환경단체도 서울 중구 환경재단에서 '윤석열 정부의 중장기 가뭄대책 진단과 우려'라는 제목으로 토론회를 열었다.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 다른 장소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놓은 것이다.
극한 가뭄 대비 61만㎥ 추가 확보
박 정책관은 지난 3일 내놓은 영산강·섬진강 유역 중장기 가뭄 대책을 다시 한번 설명했다.
유역 내 댐을 도수로로 연결하고,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을 돌려 용수로 사용하는 등 물 공급 체계를 조정하고, 대체 수자원을 개발해 하루 61만㎥의 용수를 추가 확보한다는 내용이다.
지난 3일 발표한 계획에는 한강 등 4대강 본류의 16개 보를 물그릇으로 최대한 활용, 가뭄에 도움이 되도록 운영하는 방안도 병행 추진한다고 발표했는데, 이날 토론회에서도 일부 소개됐다.
나주호에서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농경지에는 영산강 죽산보에서 취수한 물을 공급하고, 대신 나주호의 물은 생활용수·공업용수로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박 정책관은 "최근에 내린 비 덕분에 가뭄 심했던 광주·전남 지역 생활용수 문제는 해결됐고, 농업용수 문제도 섬진강을 제외하면 큰 고비는 넘긴 상태"라며 "지난해 11월부터 환경부에서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선제 가뭄 대책을 이행한 것도 도움이 됐다"라고 자평했다.
그는 "(전국적으로) 5~7년 주기로 닥치던 가뭄이 최근에는 거의 매년 발생하고 있다"며 "30년 빈도의 상시 가뭄 때는 유역 내에서 하루 24만6000㎥가, 유역 내 모든 댐에서 물이 부족해지는 과거 최대 가뭄을 적용하면 하루 36만8000㎥가, 향후 기후변화를 고려한 극한 가뭄 때는 하루 57만3000㎥가 부족할 것이란 시나리오에 따라 대책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한강 등에도 중장기 대책 마련
토론자로 참석한 최재화 전남도 물환경과장은 "섬진강은 수자원의 83%를 유역 변경으로 다른 유역으로 보내고 있어 합리적인 배분이 필요하다"라며 "이런 내용은 지역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유역 물관리위원회에서 검토 심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가물관리위원인 최진용 서울대 교수는 "주민들이 가뭄에 내성을 키울 수 있도록 민방위 훈련처럼 단수에 대비해 훈련할 필요가 있다"라며 "물 배분과 관련해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갈등 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아직 구성되지 않은 유역물관리위원회를 뛰어넘어 국가물관리위원회에서 유역의 중장기 가뭄 대책을 결정하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느냐는 질문도 나왔다.
배덕효 국가물관리위원장은 "영산강·섬진강은 하나의 유역관리위원회에서 관할하지만, 유역이 다르기 때문에 국가물관리위원회에서 결정해도 문제가 없고 법률 검토까지 마쳤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이번 계획에는 섬진강 물을 더 취수해 영산강 수계가 아닌 광양 산업단지로 보내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유역물관리위 역할 강화해야"
최 대표는 "기후위기 시대에 댐과 저수지, 하천시설과 농업생산 기반시설 등 전체 물관리 시설의 통합적 관리가 필요하다"면서도 "중앙 정부 중심의 물 관리에서 지역 정부와 주민 중심의 물관리로 전환하고, 유역 갈등을 유역 거버넌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역 주민들의 참여를 활성화하고, 유역물관리위원회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염 위원은 "이번 광주·전남 가뭄은 '관심' 단계 수준의 '약한 가뭄'이었고, 환경부도 3월 말까지 매뉴얼에 따라 현실 가능한 대책을 진지하게 집행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4대 강 보 '물 그릇론'이 대두했다"고 지적했다.
4대강 보 없이도 가뭄을 잘 해결하고 있었는데, 대통령 지시 이후 환경부에서 4대강 보에 물을 채워서 사용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물 그릇론 현실성 없어"
4대강에서 물을 취수해 농업용수로 활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도 "농업용수는 중력을 이용한 내리 흘림 식으로, 생활용수는 수압을 이용해 용수를 공급한다"고 설명했다.
전력을 사용해 멀리까지 농업용수를 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날 토론회 주변에서는 영산강에서 물을 나주호 유역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더라도 죽산보에 물을 채울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나왔다.
수문을 개방해 수위를 낮게 유지해도 취수구 위치를 낮추면 영산강에서 취수하는 데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또, 환경부가 가뭄 대책에서 추가로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수량과 관련, 환경부가 가뭄 때 물 공급이 줄어드는 부분만 고려하고 시민 노력으로 물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수자원 전문가는 "극한 가뭄 때 하루 57만3000㎥의 공급이 줄어든다고 해도 수요관리, 즉 물 절약으로 생활용수·공업용수의 부족을 일부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과도한 인프라 설치는 비효율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극한 가뭄 때 수십 년에 한 번 사용할 시설을 설치하고는 유지 관리에 예산을 계속 투입하는 것은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2월 전남 12개 지자체에서는 물 절약 실천으로 지난해 2월보다 물 사용량이 8.2%나 줄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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