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0원짜리 이 생명…유기동물보호소가 햄스터 못 받는 이유
‘세계 햄스터의 날’인 지난 12일 찾은 서울 중구 서울역 인근의 대형마트 펫숍. 노란 푸딩햄스터 1마리와 하얀 펄햄스터 1마리가 각 9000원에 팔리고 있었다. 빛을 피해 은신처에서 먹이를 오물거리던 작은 햄스터들의 목숨 값은 고작 커피 두 잔과 같았다.
세계 햄스터의 날은 1930년 4월 12일 이스라엘 동물학자 이스라엘 아하로니(Israel Aharoni)가 시리아 알레포의 옥수수밭에서 야생 햄스터 무리를 발견하며 시작됐다. 이후 햄스터는 실험용으로 길들여지다 여러 개량을 거쳐 대표적인 반려동물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햄스터는 싸고 작은 탓에 유독 잔인한 학대를 겪는다. 지난해 6~9월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와 텔레그램에는 햄스터 여러 마리를 전기 파리채로 고문하고, 펜치로 피부를 벗겨 장기를 쏟아지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잔인하게 살해하는 모습이 수 차례 전시됐다. 햄스터 여러 마리를 욕조에 가두고 다른 햄스터들이 보는 앞에서 공기총으로 쏘기도 했다. 경찰 수사 결과 학대범은 18세 미성년자로 밝혀졌다.
지난해 6월에는 햄스터를 테이프로 묶어 칼로 위협하는 등 ‘햄스터 애꾸눈 만들기’란 글이 올라온 적도 있다. 서울 강남경찰서가 국제공조까지 요청해 학대범을 붙잡았지만, 미성년자라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김동훈 동물법 전문 변호사는 “햄스터는 작고 저렴하단 이유로 동물학대범의 타깃이 된다”며 “특히 학대 사진·영상을 인터넷에 전시하는 행동은 동물을 이용해 과시욕이나 관심받고 싶은 심리를 푸는 것이라 더욱 악질적”이라고 말했다.
햄스터 유기는 더 흔하다. 유기동물 입양 플랫폼 포인핸드에 따르면 유기 햄스터는 2021년 153마리(67건)에서 지난해 213마리(76건)로 늘었다. 10여 마리씩 박스나 비닐봉지 등에 넣어 집단 유기한 경우가 다수였다. 영역동물인 햄스터는 한 우리당 한 마리를 키우는 ‘1햄 1케(1햄스터 1케이지)’가 원칙이다. 이를 무시하고 번식을 감당 못하자 유기한 것이다. 지난해 4월 경기도 과천시에 집단 유기된 드워프햄스터 15마리 중 하나인 ‘만복이’를 입양한 오모(32)씨는“고작 2~3년 사는 생명들인데 책임 못 질 거면 키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동물과 달리 유기 햄스터는 국내에 전용보호소도 없다. 비영리단체 한국햄스터보호협회 관계자는 “국가에서 지원하는 동물보호소는 개·고양이를 필수로 보호해야 해, 고양이와 천적 관계인 햄스터를 들이기 힘들다”며 “전용보호소가 생긴대도 햄스터가 지금처럼 싼 값에 사고팔리는 이상 유기 범죄를 부추길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햄스터는 개·고양이·토끼 등과 함께 법적 반려동물 6종 중 하나다. 하지만 다른 동물만큼 사회적 관심을 끌지 못해 환경이나 제도 개선이 더딘 편이다. 한국햄스터보호협회는 “구독자 수십만 명의 유명 햄스터 유튜브나 지상파 동물 프로그램조차 비좁은 우리와 낮은 바닥재, 혀 끼임 사고를 유발하는 볼 급수기, 야행성을 고려하지 않은 투명한 은신처 등 잘못된 양육 환경을 버젓이 노출한다. 학대·유기도 개나 고양이만큼 관심을 받지 못한다”며 “키우기 쉬운 동물로 알려져 있지만 햄스터는 사실 겁이 많고 예민한 동물이다. 적절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 때만 입양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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