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도 떠난 문제아, 인서울 시켰다…'갱생 전문 학원' 비밀
“문제를 보자마자 뇌 정지가 왔다니까요. 합성함수를 미분해서 푸는 거 아니에요?”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의 한 학원에서 김민수(가명·17)군이 4점짜리 수학 문제를 두고 강사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문제를 틀려 아쉬워하는 모습이 여느 고등학교 2학년과 다를 바 없지만, 김 군에겐 말 못할 ‘어두운 과거’가 있다.
지난해 6월 서울 강남에서 자동차를 훔친 뒤 무면허로 강원도 동해안 일대를 돌아다닌 중·고등학생 5명이 경찰의 추적 끝에 체포됐다. 언론에도 보도된 이 사건의 주인공 중 한 명이 김 군이다. 오토바이 절도와 도박, 사기를 일삼던 김 군은 이제 대학 진학을 꿈꾼다. 그는 “학교를 자퇴하고 이곳에 온 게 신의 한 수였다”고 했다.
학교도 포기하니…사설 갱생 학원에 모인다
김 군이 다니는 학원에는 총 25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었다. 김 군을 포함한 20명은 자퇴생으로, 학교처럼 이곳으로 매일 아침 등원한다. 대부분 술과 담배 경험은 기본이고 도박과 사기, 절도 등의 범죄로 보호처분을 받은 이력도 수두룩하다. 평소 가출을 일삼던 박주원(가명·16)군은 집에서 자신을 내쫓은 엄마를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신고해 신문 기사에 난 적도 있다.
엄격한 징벌과 보상으로 8등급 학생 ‘인서울’
이런 규정에 따라 학생들은 매일 아침 학원에 출석해 학교처럼 국어와 영어, 수학 등 수능에 대비하기 위한 수업을 듣는다. 중학교를 유급한 학생은 검정고시를 준비한다. 학원에 상주하는 매니저는 매일 학생과 학부모 면담을 진행하며 기상과 등원시간·공부량·학습태도 등을 파악해 보상으로 지급할 용돈의 액수를 정한다. 학업과 진로에 대한 고민 상담이나 생활지도도 병행한다.
중학생 때부터 학교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고 주차장에서 술을 마시며 부모님 속을 썩인 안태훈(가명·19)씨는 이 학원의 졸업생이다. 안씨는 “무단결석을 해도 학교에선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학원에 오니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휴대폰이 정지되고 용돈도 받지 못하게 됐다”며 “처음에는 불합리하다고 느꼈지만, 담배 줄이기와 같은 규칙을 지키는 게 오히려 나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점차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학원에서 본 첫 모의고사에서 7~8등급이 나왔던 안씨는 올해 정시로 숭실대에 입학했다.
허지원 대표(지원 센터 큐)는 “가출이든 쫓겨나든 집을 나간 아이들은 길게는 한 달 정도 바깥에서 고생하다가 결국 되돌아와 집 문을 두드리게 된다”며 “규칙을 지키면 안전한 집에서 지낼 수 있고 목표를 성취하면 용돈이라는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알게 하는 게 핵심이다”고 말했다.
땅에 떨어진 교권, 방치되는 문제학생들
갱생 학원에 자녀를 보낸 학부모들은 학교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김 군의 어머니 우모(45)씨는 “요즘 학교에선 벌점만 줄 뿐 아이의 잘못을 바로잡아 줄 선생님들의 의지가 아예 없다”며 “무단결석을 해도 학생이 밖에서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 김모(49)씨는 “학교는 다른 아이들이 피해를 보니 오히려 학부모에게 자퇴 등 결단을 내리라는 식으로 나온다”며 “체벌이 사라지고 교권이 땅에 떨어진 건 학부모들의 잘못도 있지만, 현재는 방황하는 사춘기 아이들을 제도권 내에서 바로 잡아줄 수 있는 장치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학교 현장에선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을 선도할 수 없는 현실을 지적하며 교권 보호가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측은 “현재 교원들은 수업방해, 폭언‧폭행 등 교권침해 상황에서 즉각 제재할 방법이 없고 교권보호위를 통한 사후 징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게 현실”이라며 “학교폭력 처리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교권침해 사안 처리에 교원들의 자존감이 무너지고 교실이 붕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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