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제3자 변제의 한계

라동철 2023. 4. 15.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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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채무 관계는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합당한 대가를 제공하는 것으로 해결된다.

이런 통상적인 방식이 여의치 않을 경우 우리 법은 제3자가 채무를 대신 갚는 것도 허용한다.

민법 제469조(제삼자의 변제) '채무의 변제는 제삼자도 할 수 있다'는 조항이 근거다.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15명 중 10명의 유족은 제3자 변제를 수용해 배상금을 수령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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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동철 논설위원


채권·채무 관계는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합당한 대가를 제공하는 것으로 해결된다. 이런 통상적인 방식이 여의치 않을 경우 우리 법은 제3자가 채무를 대신 갚는 것도 허용한다. 민법 제469조(제삼자의 변제) ‘채무의 변제는 제삼자도 할 수 있다’는 조항이 근거다. 흔치 않은 경우인데 2018년 대법원의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피고기업의 배상 판결 해법으로 윤석열정부가 이달 초 이 방식을 채택해 관심사로 떠올랐다. 정부는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른 국내 수혜 기업들로부터 기부받은 자금으로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대신 지급하고 있다.

제3자 변제가 피해자의 채권을 소멸시킬 수 있느냐를 두고 이견이 팽팽하다. 정부는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제삼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등의 조항을 들어 원천 무효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피해자들 간에도 의견이 갈린다.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15명 중 10명의 유족은 제3자 변제를 수용해 배상금을 수령했다고 한다. 하지만 생존 피해자 3명을 포함해 5명은 수령을 거부하고 피고기업들로부터 직접 배상을 받는 절차를 밟고 있다. 일본 정부나 피고기업의 사죄와 금전적 기여 등이 없는 방식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입장이 갈리지만 피해자들의 선택은 양쪽 모두 존중돼야 마땅하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피해자 중심주의는 지켜야 할 중요한 원칙이다. 국가나 집단의 이름으로 특정한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강제징용 배상 건은 한·일 정부 간 소송이 아니다. 피해자가 가해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라 정부 간 합의로 종지부를 찍을 수도 없다. 강제징용 배상 소송은 현재 여러 건이 진행 중이다. 이견이 팽팽한 상황에서 일괄 해법만 내세우는 건 과욕이고 미망일 수 있다. 화살이 시위를 떠났다고만 생각할 게 아니다. 제3자 변제가 아닌 다른 선택도 마땅히 존중돼야 하지 않을까.

라동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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