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치열하게 산 40년… 발레 후배들 멘토 되고 싶어”
1983년 5월 24살의 재일교포 2세 발레리나 오타니 야스에(大谷泰枝)는 서울 남산 국립극장을 찾았다. 시마다 히로시(島田廣) 일본발레협회장이 자신의 제자인 임성남 국립발레단장을 만나보라고 권했기 때문이다.
재일교포는 대부분 일본식 통명을 사용하는 데다 교토에서 태어난 오타니는 10대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하지만 81년 유서 깊은 가이타니 발레단의 유망주답게 일본발레협회 국비 장학생으로 선발됐지만, 일본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문화청 지원 대상에서 탈락하며 전환점을 맞았다. 이듬해 자비로 프랑스 유학을 1년간 다녀온 이후에도 일본 활동에 대한 고민이 그를 계속 괴롭힌 것이다. 그런 그를 안타깝게 생각한 시마다 회장이 한국행을 권하고 나섰다. 사실 한국 이름이 백성규인 시마다 회장은 일제 강점기 조선 출신으로 이후 신국립극장 발레 부문 초대 예술감독까지 맡게 되는 거물이다. 1950년대 초반 시마다 문하에서 훗날 ‘한국 발레의 아버지’로 불리는 임성남이 공부했다.
임성남 국립발레단장은 일본에서 온 오타니를 따뜻하게 맞아줬다. 오타니가 한국인 최태지라는 정체성을 확실히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최태지는 국립발레단 객원 주역으로 그해 10월 고마키 마사히데 안무 ‘셰헤라자데’의 주인공인 조베이다 왕비 역으로 출연해 큰 주목을 받았다. 이듬해엔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에서 백조 오데트와 흑조 오딜을 연기하며 뛰어난 기량을 뽐냈다. 1987년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로 특채된 최태지는 92년까지 현역으로 무대에 선 뒤 김혜식 단장 시절인 1993~95년 지도위원으로 활동했다.
재일교포 출신인 그가 1996년 2년 임기의 단장 겸 예술감독으로 임명된 것은 예외적인 사건이었다. 게다가 역대 최연소인 37살에 단장이 된 이후 뛰어난 행정 능력과 예술 비전으로 국립발레단을 도약시키며 3연임 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후 국립발레단을 떠나 2004~2007년 정동극장장을 거쳐 2008~2013년 다시 국립발레단 단장으로 활동한 그는 2017~2021년 광주시립발레단 예술감독으로 ‘발레단 조련사’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두 발레단 예술감독 17년을 포함해 예술계 수장만 21년을 해온 셈이다.
약 1년간 손주들을 돌보며 휴식기를 보낸 최태지(64) 전 단장이 특별한 공연으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광명문화재단이 올해 4차례 광명극장에서 선보이는 ‘최태지와 함께하는 발레 스타워즈’를 통해서다. 공연과 토크로 진행되는 이 공연에는 한국의 대표 발레 스타인 이원국(4월 22일), 김주원(6월 24일), 김지영(8월 26일), 김용걸(10월 28일) 등 4명이 각각 자신들의 제자와 함께 출연한다. 올해는 최 전 단장이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지 꼬박 40주년이 된 해인 만큼 그와 한국 발레 르네상스를 함께 견인했던 4인방의 만남이 뜻깊을 수밖에 없다.
“광명문화재단이 작년 제게 ‘해설이 있는 발레’ 공연을 제안했는데요. 좀 더 특별한 공연을 만들기 위해 이원국, 김주원, 김지영, 김용걸과 함께하고 싶었어요. 지금은 지도자로 물러났지만, 이들이 얼마나 대단한 무용수였는지 조명하고 싶었거든요. 이들도 바로 OK 했는데, 각자 자신의 제자들과 어떤 공연을 보여줄지 저도 궁금해요.”
최 전 단장은 취임 이후 러시아에서 발레학교를 마치고 입단한 김지영(1997년)과 김주원(1998년)을 과감하게 주역으로 기용했다. 그리고 이원국-김주원, 김용걸-김지영 콤비는 서로 경쟁하며 국립발레단의 인기를 이끄는 쌍두마차가 됐다. 최 전 단장이 1997년 처음 시도한 ‘해설이 있는 발레’는 무용수 육성과 발레 대중화의 물꼬를 텄는데, 그 중심에 이들 4인방이 있었다. 국립발레단이 1999년 국립극장 전속에서 재단법인화 된 이후 세계적인 거장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와 장-크리스토프 마이요와 작업해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스파르타쿠스’ ‘로미오와 줄리엣’ 등을 레퍼토리로 구축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최 전 단장은 예산 확보를 위해 4인방과 함께 기획재정부 등을 찾아다녔는데, 한국어가 서툴렀던 자신을 대신해 국립발레단의 역할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이들 4인방은 그에게 어려운 시절을 함께한 동지이기도 했다.
“얼마 전 이번 공연의 포스터 사진을 찍느라 다 같이 모였는데요. 제가 2001년 첫 번째 국립발레단장을 그만둔 이후 처음이었어요. 예전에는 라이벌로 경쟁하는 사이였지만, 이제는 다들 지도자로서 원숙함이 보여서 좋았어요. 그래도 저는 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이번엔 따로따로 무대에 서지만 나중에 모두 함께 출연하는 무대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한국 발레리노의 교과서’로 꼽히는 이원국(56), 파리오페라발레의 첫 동양인 무용수로 활약한 김용걸(50), 무용계 최고 권위의 ‘브누아 드 라 당스’상을 받은 김주원(46),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주역으로 활동했던 김지영(45) 등 4인방에게도 이번 공연이 뜻깊다. 현재 대학에서 교편을 잡거나 발레단을 운영하는 이들 모두 국민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최 단장님께서 우리를 위한 무대를 만드신 것”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는 “다들 각자의 삶에 바빠서 모이지 못하다가 이번에 모두 만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고 말했고, 김주원 전 성신여대 교수는 “국립발레단에서 행복한 시절을 함께 보낸 만큼 오랜만에 가족이 모인 느낌”이라고 털어놓았다. 김지영 경희대 교수는 “오랜만에 만났지만, 어제 만난 것처럼 편안했다. 다들 나이를 먹으며 여유가 생긴 것 같아서 좋았다”고 덧붙였다.
이원국발레단의 이원국 단장에겐 이번 공연이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2021년 9월 식도암 수술을 받은 이후 투병과 회복의 시간을 보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수원국제발레축제 갈라 무대에 2인무로 깜짝 출연해 발레 관계자들의 격려를 받았던 그는 이번에 훨씬 건강해진 모습으로 가족 및 제자들과 무대에 설 예정이다. 제자로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완 이재우 등이 포함돼 있다. 이 단장은 “최 단장님이 다시 한번 내 울타리가 되어 힘을 주시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눈물이 난다”고 밝혔다.
한편 40년간 한국 생활에 대한 소회를 묻자 최 전 단장은 “정말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특별히 아쉬움은 없다”고 말했다. “부모님이 계시는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았던 것은 내가 조금이나마 한국 발레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또 돌아가실 때까지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던 부모님이 내가 국가를 위해 일한다며 자랑스러워했던 것도 큰 이유였다”고 회고한 그는 “임성남, 김혜식 선생님 같은 멘토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이원국, 김용걸, 김주원, 김지영을 비롯해 많은 후배에게 무엇이든 도움이 되고 싶다”고 피력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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