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대졸 임금 프리미엄’… 미·영, 위기의 대학 시장
졸업후 수십년 학자금 빚 허덕
전공 과목 간 불균형 갈수록 심화
미국 오하이오주 로레인에 거주하는 50세 여성 대니얼 터바이어스는 2003년 레이크이리대에서 말 산업을 전공해 학위를 받았다. 학사학위와 함께 남은 건 학자금 대출금 8만5000달러(약 1억1212만원). 졸업 후 승마장에서 수년간 일했지만 생활비를 쓰고 학자금을 갚을 만큼 돈을 벌 수 없었다. 직업을 바꾼 그는 현재 병원에서 투석을 돕는 기술자로 일하며 연 3만6000달러(약 4748만원)를 받는다.
꼬박꼬박 학자금 대출을 갚고 있지만 대출 잔금은 오히려 14만5000달러(약 1억9126만원)로 불어났다. 매달 내는 금액이 125달러(16만4875원)로 소액에 불과한 데다 이자가 붙은 결과다. 그는 고교 졸업을 앞둔 아들에게 진학 대신 취업에 도움이 되는 ‘기술’을 배울 것을 제안했다.
등록금 등 교육비가 오르고 학위 소지자들의 소득이 정체되면서 대학 진학에 회의감을 느끼는 미국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했다. WSJ가 시카고대와 함께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의 56%가 4년제 대학 학위를 취득하는 것은 ‘잘못된 선택(bad bet)’이라고 답했다. 전 연령대 중 18~34세 집단에서 대학 진학에 대한 회의론이 가장 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0년 조사에 따르면 학사학위를 얻기 위해 가장 많은 교육비가 필요한 나라는 영국이다. 연간 9250파운드(약 1559만원)가 든다. 미국도 해를 거듭할수록 교육비가 치솟고 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 조사 결과 1970년대는 연 2300달러(약 303만원)로 학위를 얻을 수 있었지만 2018년에는 연 8000달러(약 1055만원)가 필요했다.
교육비는 오르는데 대졸과 고졸 간 임금 격차는 정체되거나 줄고 있다. 영국 싱크탱크 재정연구소(IFS)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 학위 소지자의 각각 25%, 15%는 그들이 직장에서 경력을 쌓을 동안 학위가 없는 고졸보다 더 적은 임금을 벌고 있다.
학사 이상 졸업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 간 연봉 차이, 즉 ‘대졸 임금 프리미엄’은 1980년대 증가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대졸자는 고졸자보다 평균 35% 더 많은 수입을 올렸고, 2021년에는 그 차이가 66%로 증가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차이가 줄고 있고, 오히려 대졸자들이 높은 교육비 등으로 빚 부담을 떠안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지난 10년간 미 대학 등록률은 약 15% 감소했다.
‘대졸 임금 프리미엄’의 감소는 대학 전공의 존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2월 미 버지니아주 메리마운트대 이사회는 영어와 역사, 철학, 신학을 포함한 9개 전공을 폐지하기로 했다. 미시간주의 캘빈대와 워싱턴DC의 하워드대도 2021년 고전 관련 전공을 포기한 대학 중 하나다. 영국 셰필드대에선 고고학이 존폐 위기에 처해 있다.
전공별 소득수준 전망을 보면 앞으로 인문계열 과목의 소멸 속도가 더 빨라질 것으로 예측된다. IFS에 따르면 예술, 사회·복지, 농업을 공부한 영국 대졸자에게서 교육비 투입 대비 가장 높은 ‘마이너스 수익’이 관측됐다. 미국에서는 기술, 컴퓨터·과학, 경영 분야 졸업생의 수익이 제일 높게 조사됐다. 미 싱크탱크 프리롭(freopp)의 프레스턴 쿠퍼는 “미국 내 학사학위 과목의 4분의 1 이상이 대부분 학생에게 마이너스 수익률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대학 진학의 대안으로 미국에서 ‘견습’ 제도의 확산이 목격된다. 견습제는 특정 직종에 초점을 맞춘 직업 전문교육이다. 한국의 ‘인턴’ 제도와 유사하지만 고용 연계 부분에서 더 효과를 내고 있다. 일부 프로그램의 경우 인기가 급상승해 아이비리그 대학 입학 경쟁률에 견줄 정도로 합격이 어렵다.
디나 소사 크루즈(18)는 WSJ에 대학 진학과 견습제도를 놓고 고민하다 견습제를 택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나에게 대학 진학이란 4년 뒤 22살 나이에 학위와 빚만 있고 직장 경험은 없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등록한 에이온피엘시(Aon PLC)의 견습 프로그램은 2016년 시작됐다. 그해 지원자의 40%가 취업에 성공했다. 지난해 90명 모집에 1100명의 지원자가 몰렸는데, 올해는 100명 모집에 1500명이 지원해 약 7%만 합격했다. 아이비리그 대학인 코넬대, 다트머스대 입학 경쟁률과 맞먹는 수준이다.
미 연방정부 데이터와 싱크탱크 어반 인스티튜트의 노동경제학자인 로버트 러먼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대학 등록률은 15% 감소한 반면 견습생 수는 50% 이상 증가했다. 주로 건설 분야에서 운영되던 견습제도는 맥도날드, JP모건체이스, 컨설팅 등 분야로 확대되는 추세다. 일부 주정부도 대학 진학 감소 추세를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주는 일부 주정부 일자리에 대한 학위 요건을 낮췄다. 메릴랜드주는 2031년까지 고등학생의 45%가 견습 과정을 거치는 것을 주 전체 목표로 세웠다.
견습제도를 옹호해 온 민주당 소속 제임스 로사페페 상원의원(메릴랜드주)은 “우리는 3분의 1을 위해 길을 닦아 놨지만 나머지 3분의 2는 숲속에서 정처 없이 방황하게 내버려 뒀다”며 “‘모든 사람을 위한 대학’ 모델은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장은현 기자 e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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