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요구르트와 멸균우유
유산균 음료인 요구르트는 섭씨 10도 이하 냉장 보관해야 한다. 유통기한 열흘을 포함한 소비기한은 20일이다. 영양식품인 생우유도 요구르트처럼 유통기한이 짧고 냉장 보관은 필수다. 똑같은 영양식품인데 멸균우유는 다르다. 140도 초고온에서 가열 처리해 상온에서 60~90일 보관할 수 있다. 제품을 취급하는 사람을 위한 설명에 불과하던 요구르트와 우유의 보관방법과 소비기한은 고독사와 연결돼 의미가 달라졌다. 기획 ‘교회, 외로움을 돌보다’를 시작해 외로운 이웃을 돌보는 교회들의 다양한 사역을 취재하면서 교회는 요구르트와 멸균우유에 가치를 더했다.
서울 마포구 서현교회는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 가정을 위해 요구르트 배달을 신청했다. 교회 담임 이상화 목사는 한 성도가 반지하 방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은 걸 경험했다. 성도의 속사정을 죽음 뒤에야 알게 된 이 목사는 외로운 죽음을 막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리고 새벽예배를 마치고 나온 골목에서 한 사람을 봤다. 아침이면 집집이 찾아가 요구르트를 배달하는 프레시매니저였다. 위기가구의 요구르트 비용을 교회가 내고 프레시매니저가 이를 배달하면서 안부를 확인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혹여 프레시매니저가 위기 상황을 인식하면 교회로 연락하도록 당부도 했다. 교회와 기업의 협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을 아찔한 상황을 막기도 했다.
고독사 예방에 활용될 요구르트 배달이 맞지 않는 곳이 있다. 프레시매니저가 없어 배달할 수 없는 데다 냉장 시설이 열악한 농어촌 지역이다. 20년 넘게 어르신들에게 우유를 배달해온 사단법인 어르신의안부를묻는우유배달의 호용한 목사는 우유 배달을 전국으로 확장하면서 멸균우유를 대안으로 꼽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자살률 1위, 사회적 고립도 2위인 대한민국 사회에서 요구르트와 우유는 교회가 외로움과 그로 인해 나타나는 사회적 문제를 막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사실 고독사 등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된 건 최근이지만 교회는 오래전부터 이 문제를 고민해 왔다. 어쩌면 교회라는 특성과 마침맞아서일 듯하다. 노원구 주양교회 표세철 목사는 성도의 이야기를 들은 뒤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위기 가구를 발굴해 주민센터에 알렸다. 골목마다 촘촘히 자리한 교회는 이웃들과 접촉면이 넓은 데다 지역 주민인 성도를 통해 어려운 이들의 소식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런 이웃들을 교회는 외면하지 않았다. 신명기 15장은 도와야 할 가난한 사람, 부채를 면제해줘야 할 사람 등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도움을 줘야 할 이들을 이웃과 형제라 표현했다. 기독인이라면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외면하지 말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는 뜻이다.
문득 2018년 통계청의 전국사업체조사(2016년 기준)가 떠오른다. 당시 통계청 발표 직후 쏟아진 기사는 교회가 편의점보다 많다는 것이었다. 이후 대중들은 일부 교회의 일탈을 지적할 때마다 이 통계를 근거로 ‘지나치게 많은 교회’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냈다. 교회가 많다는 시선은 한국을 찾은 외국인도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10여년 전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한 외국인의 글은 한동안 온라인에서 회자됐다. ‘외국인이 보는 우리나라의 야경’이란 제목의 글엔 서울 도심의 빨간 조명을 밝힌 십자가 사진과 함께 “서울에는 왜 이렇게 공동묘지가 많냐”는 설명이 붙었다. 이는 한국에 교회가 많다는 걸 돌려서 표현하는 말이 됐다.
외로움을 취재하면서 문득 외국인의 글이 떠올랐다. 한 목사님에게 그때의 글을 얘기하며 질문을 하니 의미심장한 답이 돌아왔다. 강남중앙침례교회 최병락 목사의 얘기다. “서울의 야경을 보면 ‘십자가 조명이 너무 많다’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알고 보면 빨간 십자가가 있다는 건 그 지역을 돌볼 교회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생각해요.” 요구르트와 멸균우유는 바로 그 십자가의 의미를 보여준 게 아닐까.
서윤경 종교부 차장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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