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나침반이 된 성경말씀] 지금 내 것이 내 몫인가… 결국 주신 은혜였다

2023. 4. 1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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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어머님 손에 이끌려 부산 초량동에 소재한 삼일교회(당시 한상동 목사 시무)를 출석했다.

어머님께 배운 신앙생활은 첫째 아버지와 큰집의 명절 제사와 관련된 모든 우상숭배를 단절하는 것이었고, 둘째 철저한 주일성수, 마지막으로 헌금을 정성껏 바치는 것이었다.

그런 내가 목사가 되고 교수가 되고 기독대학 총장이 된 것은 기적 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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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이병수 고신대 총장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1967년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어머님 손에 이끌려 부산 초량동에 소재한 삼일교회(당시 한상동 목사 시무)를 출석했다. 어머님께선 마음의 병이 생겨 무엇인가 해결책을 찾는 중에 내 친구 어머니의 전도를 받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분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였고 어머니는 그 포교 대상이었다. 그런데 친구 어머니가 갑자기 미국에 이민을 가게 됐다. 어머니가 영적 해결책을 찾는 중에 가게 된 곳이 삼일교회였다. 친구 어머니의 미국행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 가족은 모두 ‘여호와의 증인’이 됐을지 모른다.

어머님께 배운 신앙생활은 첫째 아버지와 큰집의 명절 제사와 관련된 모든 우상숭배를 단절하는 것이었고, 둘째 철저한 주일성수, 마지막으로 헌금을 정성껏 바치는 것이었다. 당시엔 5원과 10원도 지폐였다. 어머님께서는 넉넉하지 않은 여건에 10원 지폐를 주일헌금으로 바치도록 나와 동생을 훈련하셨다.

어머님께서는 정성껏 헌금을 준비하기 위해 토요일이면 다리미로 빳빳하게 돈을 다리셨다. 10원이란 돈은 약간 큰 금액이라 어린이들이 주일헌금으로 바치는 게 쉽지 않았다. 소년 이병수도 그 10원을 주일헌금으로 바치는 게 몹시 아까웠다. 그래서 10원 중 2원으로 ‘달고나’를 해 먹었다. 3원은 교회 가는 길목 만화 가게에 들어가 탕진하고 나머지 5원만 헌금으로 드렸다.

그럴 때마다 두 살 아래 여동생은 “오빠야, 그러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신다”라며 말렸다. 동생의 ‘애절한 요청’을 거절하고 급기야 헌금을 1원만 하던 때도 있었다. 그런 내가 목사가 되고 교수가 되고 기독대학 총장이 된 것은 기적 같기만 하다.

최근 우리 사회에 ‘능력주의’라는 말이 논쟁이 됐다. 마이클 샌델은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 윤리는 승자들을 오만으로, 패자들을 굴욕과 분노로 몰아간다”고 비판했다. ‘내가 가진 재능과 사회로부터 받은 대가는 과연 온전히 내 몫인가’라는 질문에서 샌델은 그것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보았다. 그럴 때 우리가 그 능력을 우리 자랑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게 되고 겸손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신이다.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고린도전서 15장 10절이 오롯이 담긴 찬양 가사가 내 삶과 너무도 일치한다.

약력 △부산울산경남이주민네트워크 상임대표 △고신대학교 글로벌교육학부 교수 역임 △미국 리폼드신학교 대학원 선교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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