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 모르고 끌려가서 골프 대박[정현권의 감성골프]
사업하는 후배가 금요일 밤 늦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느닷없었는데 별다른 일정이 없어 응했다.
본인도 초청받아서 가는데 한 명 더 동반해도 된다는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원래 가기로 한 사람이 취소한 모양이었다.
집까지 픽업하러 오는 데다 그린피도 무료라는 말에 내심 이런 경사가 있나 싶었다. 매주 골프를 하다가 그 주에만 골프 일정이 비었다.
골프 전성기에 일주일 쉰다는 게 어떤 고통인지 골프 애호가들은 잘 안다. 근질근질하던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타이밍이었다.
호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초청하는 측에서 스킨스 게임비를 제법 준비해 왔다. 열심히 경기에 열중했다. 한창 골프에 빠져 있던 때였다.
전리품으로 상금도 두둑하게 챙겼다. 귀가하는 차 안에서 후배에게 듬뿍 상금을 재분배했다.
“앞으론 절대 미안하다고 하지 말고 이런 경우라면 당일 새벽에도 불러줘. 만사 제치고 뛰쳐나갈 테니까~~.” 웃으면서 후배에게 말했다.
우연히 발생하는 행운이 골프에 소소한 재미를 더한다. 위 사례와 거꾸로 원하지 않던 골프 약속이 갑자기 취소되는 행운도 있다.
필드를 딱 3번 나가고 3년째 골프채를 창고에서 묵히는 아내가 느닷없이 2주일 뒤에 함께 골프장에 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내 친구가 아내를 포함해 초보 두 명을 골프장에 데리고 나가는데 혹시 멤버가 차지 않으면 남편을 동반해도 된다고 했단다.
아내 친구들과 골프를 쳐본 적 없고 얼굴도 몰랐다. 순간 초보 2명을포함해 여자들과 골프를 친다는 게 어떤 상황인지 떠올렸다. 약간의 트라우마가 있어 흔쾌하지 않았다.
생 초보 2명과 골프를 하면서 어떤 스탠스를 취할 것인지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아내 혼자라면 모르지만 친구까지 돌봐야 한다는 불안이 스멀스멀 들었다. 당일 나의 골프는 완전히 물 건너 갔다고 봐야 한다.
골프를 일주일을 앞두고 사정 때문에 주최측인 아내 친구에게서 골프를 다음으로 연기하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내심 기뻤다. 해방이다.
얼마전 세상을 떠난 숀 코너리는 영화사에서 가장 멋지고 뛰어난 골퍼였다. ‘007 골드 핑거’에 악당의 알까기 장면이 나오는데 마지막 홀에서 상대 공을 바꾸는 역속임수로 내기에 이겨 황금 바를 차지한다.
골프의 고향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근처에서 자란 그는 영화를 찍으려고 골프를 배워 훌륭한 기량을 뽐냈다. 쇠락한 로열 트룬 골프장을 살려 디 오픈을 다시 개최한 주역이다.
모로코의 한 대회에서 ‘평생의 본드 걸’인 아내 미슐링 라커브룬을 만났는데 남자는 코너리, 여자는 라커브룬이 우승자였다. 두 사람은 조용하고 골프장이 많은 스페인 마르베야에서 살다가 바하마에서 골프를 하면서 말년을 보냈다.
필자의 아내는 아직 골프에 재미를 못 붙여 클럽만 창고에서 주인을 기다린다. 동면 중인 클럽을 깨워 역동적인 샷을 휘두르는 아내를 평생의 ‘골프 본드 걸’로 맞는 날이 내게도 올까.
장례식장이 분당에 있는 병원이라는 걸 알고 옳거니 싶었다. 마침 골프장도 기흥CC였다. 골프를 끝내고 서울 집으로 오는 일직선 방향이었다. 저녁 식사도 장례식장에서 해결했다.
마침 동반자들도 조문을 한다고 했다. 한 명은 집에서 도보로 불과 10여분 거리였다. 골프와 조문을 동시에 해결한 소소한 기쁨이다.
언젠가는 골프 당일 차를 끌고 갈 수 없어 곤란했다. 아내가 일 때문에 차를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아침부터 골프 치러 간다면서 차를 뺏을 수는 없었다.
동반자들도 모두 강남 강북 일산으로 흩어져 있어 카풀도 원활하지 못했다. 이 때 일산에 사는 동반자가 오후에 필자가 사는 동네에서 약속이 있다면서 아침부터 나를 픽업하겠다고 말했다.
불감청이언정 고소원. 너무 기분 좋아 그 날 귀가하면서 만땅 주유비를 대줬다. 골프가 안겨주는 작은 행복이다.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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