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제일 열심히 한 일은 누군가의 목 조르기 [양민영의 한 솔로]

양민영 2023. 4. 14.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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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영의 한 솔로] 혼자 할 수 없는 주짓수, 혼자서는 못 쓰는 글

[양민영 기자]

"민영씨, 그만하고 다른 걸 해요!"

다른 건 원하지 않는 게 문제였다. 그날도 목을 원했다. 어리석은 욕망이 상대의 목을, 정확히는 경동맥을 조를 때 손에 전해지는 감각을 느끼고 싶어 했다.

그러나 상대는 블루 벨트인 나보다 모든 면에서 월등한 퍼플 벨트(주짓수의 벨트 체계는 화이트, 블루, 퍼플, 브라운, 블랙순)였고 완벽하게 목을 숨긴 채 빈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등 뒤에서 반복적으로 초크(목 조르기)만 시도하는 걸 한참이나 봐주다가 그만 포기하라고 타일렀다.

그러나 발동걸린 사악한 욕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집요한 공격이 이어졌고 결국 관용을 베풀기로 한 상급자가 보우 앤 애로우 초크(도복 깃과 바지를 잡아당겨 활시위 당기듯 목을 조르는 기술)에서 탭(항복을 뜻하는 손짓)을 쳐주었다.

"이래서 테이핑한 사람을 피한다니까…."

거의 브라운에 가까운 퍼플인 그는 경험상 귀를 다친 사람이나 손에 테이프를 감고 있는 사람을 피한다고 했다. 그 두 가지가 공격적인 성향을 나타내는, 일종의 표식이라는 거다.

손가락에 테이프를 감기 시작한 건 불과 두어 달 전이었다. 주짓수를 하면 어쩔 수 없이 손을 과도하게 쓰기 때문에 손가락 염좌를 앓거나 손가락이 개구리 발처럼 변형된 사람이 드물지 않다. 그동안에도 이런 사실을 모르지 않았지만, 특별한 징후가 없어서 손을 마냥 방치했다.

어느 날, 스파링하던 중에 손가락 하나가 꺾였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행히 부러지지 않았지만 그 일이 있고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손가락이 멀쩡해도 글을 쓰지 못해 몸부림치는데 부러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글을 쓰지 않아도 되는, 아주 좋은 핑계만 생기는 셈이다.

그렇게 보호를 목적으로 시작한 테이핑이 공격성의 표식이라는 게 아이러니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방어막을 겹겹이 두른, 겉으로는 취약해 보이는 사람이 어쩌면 가장 끈질긴 악인일 수 있다. 나만 해도 손을 보호하겠다고 하면서 그 손으로 제일 열심히 한 일이 누군가의 목을 조르는 거였으니까.

글쓰기
 
▲ 글쓰기 작가의 손이 피아니스트가 건반을 터치하듯 노트북 위를 분주하게 오간다.
ⓒ 게티이미지뱅크
문득 궁금했다. 초크와 글쓰기 중에 어느 쪽이 더 사악한가? 초크는 나만 즐겁고 상대는 괴롭다는 점에서 사악하다. 글쓰기는 누구를 괴롭히진 않지만 쓰고 싶다는 욕망부터 글쓰기가 진행되는 전 과정이, 철저하게 이기적이라는 점에서 사악하다.

쉽게 말해서 무엇에 관해 쓸 때마다 그게 무엇이든 주변 사람을 팔아넘기는 기분이다. 대표적인 예로 엄마가 나에게 '네가 내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쓸 줄 몰랐다'고 했다(하지만 나는 엄마의 그 말조차도 여기에 쓰고 있다).

그러니까 주위에 글 쓰는 사람이 있다는 건 거의 모든 이야기와 사건이 가공돼 만천하에 공개될 가능성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는 뜻이다. 변명하자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주짓수를 허공에 대고 혼자 할 수 없듯 글쓰기에서 일인극은 애초에 성립 불가다.

설상가상으로 나는 무력한 초보 작가다. 오래 산다고 숨쉬기의 메커니즘을 아는 게 아니듯 아무리 글을 써도 쉽게 쓰는 방식을 모르겠다. 그래서 쓰고 싶은 욕망을 무작정 좇는데 이 욕망은 어리석고, 또 어리석다. 뻔히 실패할 것 같을 때는 우회할 줄도 알아야 하지만 왜 하필 이건지도 모르면서 맹목적으로 끌려간다.

단 하나 위로가 되는 건, 이는 글 쓰는 사람 모두가 겪는 딜레마이며 그들은 모두 어느 정도는 맹목적이라는 사실이다. 프랑스와즈 오종 감독이 연출한 영화 <스위밍풀>은 이 어리석은 욕망의 실체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영화의 주인공은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소설을 쓰면서 최고의 흥행 작가의 반열에 오른 사라 모튼이다. 그는 무수한 히트작을 써냈지만 불행하게도 슬럼프에 빠졌고 그런 만큼 글쓰기의 열정을 다시 불러일으킬, 새로운 소재를 갈망한다.

그가 사는 런던의 날씨처럼 침울했던 사라는 우연히 어린 여성을 만난 후 쓰고 싶은 욕망을 회복한다.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건조한 얼굴에 피가 돌고 빛나는 눈동자와 미소를 되찾는다. 그는 새로운 이야기를 위해서라면 거짓말, 계략, 회유, 심지어 살인까지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긴장감 넘치는 사건 전개보다 더 기억에 오래 남은 건 주인공의 손이었다. 아무것도 쓰지 못하던 사라의 손이 피아니스트가 건반을 터치하듯 가벼우면서도 힘있게 노트북 위를 분주하게 오가는 장면은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손과 힘
 
▲ 콤바치 주짓수 스파링은 손바닥을 마주친 다음 주먹을 맞닿게 하는 동작으로 시작한다.
ⓒ 박종혁
27개의 뼈로 이뤄진 인간의 손은 팔이나 다리와 비교하면 훨씬 연약하다. 그러나 인류의 노동, 교육, 창조를 도맡는 유능하고도 강인한 기관이며 알고 보면 대단한 싸움꾼이기도 하다. 주짓수의 스파링은 상대와 손바닥을 마주친 다음 주먹을 맞닿게 하는 이른바 '콤바치'(싸움이나 전투를 뜻하는 포르투갈어) 동작으로 시작한다. 상대에게 예의를 갖추는 동시에 절대 생략해선 안 되는 절차이기도 하다.

싸움이 발차기나 업어치기가 아니라 연약하고 무력해 보이는 손에서 시작된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그뿐만 아니라 공격과 방어에서도 손의 역할은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다. 그래서 '손 싸움'이라는 말도 따로 있다. 만약 손 싸움을 잘하고 싶다면, 아주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 손아귀 힘을 키우는 훈련을 반복하면 된다.

악력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그래플러('얽혀서 싸우다'는 뜻의 그래플링은 격투기를 뜻하며 이 부류 무술가를 그래플러라고 부른다)라면 그보다 더 폼나는 게 어울린다. 불가리아에서 유래해 '불가리안 백'이라고 불리는, 마치 거대한 크루아상같이 생긴 기구가 있다. 이걸로 '스윙'이라고 부르는, 양쪽 손잡이를 잡고 휘두르거나 어깨에 둘러메고 스쿼트하거나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리프팅 동작을 반복한다.

아주 두꺼운 가죽으로 감싼 불가리안 백은 '헉' 소리가 날 정도로 무거운데 오래 들고 있기만 해도 손이 얼얼하고 전완근이 팽팽하게 당긴다. 이러한 고통의 보상이 이른바 '괴물 악력'이다. 불가리안 백으로 악력을 키우듯 소재를 붙드는 힘도 키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포기하고 다른 걸 써!'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내면의 목소리가 수도 없이 들려왔다. 하지만 다른 건 원하지 않는다. 항상 그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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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게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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