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기 인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조영재 2023. 4. 1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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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는 또 다른 눈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조영재 기자]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왜 이토록 민폐가 된 걸까요? 툭하면 언론에서 떠들어 댑니다. '2060년엔 노인이 절반 이상이 된다. 젊은이 한 명이 노인 한 명을 부양해야 된다. 2055년엔 국민연금 고갈이 된다. 월급의 30% 이상을 연금으로 내서 노인을 부양해야 한다' 등등.

그러니 세대갈등의 골은 깊어만 갑니다. 노인들이 나라의 짐 덩어리가 된 듯합니다. 경제의 잣대로만 재단해 선정적인 뉴스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뭘 그리 잘못한 걸까요? 무슨 큰 죄를 지은 걸까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다양합니다. 그런데 시대마다 당대 사람의 눈을 한 가지로 고정시켰던 주류 가치가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지배적 가치는 거의 돈입니다. 우리 눈을 덮고 있는 경제라는 색안경은 인생의 다양한 색깔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인구 고령화 문제 역시 마찬가지겠죠. 정말 초저출산, 초고령화 때문에 우리가 더 불행해질까요? 저는 살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초고령화는 사실 초저출산에 이어지는 현상입니다. 초저출산 현상은 죽을 힘을 다해 살아야 입에 겨우 풀칠하고 몸 뉠 공간 하나 마련할 '내전' 같은 상황에서는 오히려 자연스럽습니다.

자살률 1위, 한 해 500명이 넘는 과로사가 일어나는 나라, 방 한 칸 마련하기도 버거운 수도권에 기를 쓰고 모여드는 나라. 그러니 결혼이나 자녀 출산은 사치가 되어버린 전쟁통 같은 대한민국! 이런 '내전'같은 상황은 어떻게 하면 끝날까요? 곧 닥칠 인구위기는 어쩌면 어쩔 수 없는 통과의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무조건 올라가 경제관점이라는 똑같은 안경을 끼고 왜 오르는지도 잘 알지 못한 채, 무조건 오르고 또 오르려 한다.
ⓒ 조영재
저출산, 고령화를 바라보는 다른 색안경

초저출산, 초고령화에 접근하는 기사 대부분이 경제 관점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다른 관점도 존재합니다. 저는 하루 종일 노인 분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노인복지관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 아픈 이야기를 듣고 돌봐드리죠. 그러면서 경제가 아닌 다른 관점들에 눈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친, 외조부모님은 모두 제가 어릴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외모만 기억이 납니다. 기억이 선명한 걸 보니, 어릴 땐 밭고랑 같은 주름, 마디지고 비틀린 손가락, 땅을 파고 들어갈 것처럼 굽은 허리가 매우 이상했나 봅니다.

그런데 저와 하루를 함께 하는 노인 분들을 보며 제 조부모님의 삶이 궁금해졌습니다. '어떻게 사셨을까? 어떤 고생을 하셨고, 어떤 고민을 하셨을까?' 궁금해졌고 물어보고 싶어졌습니다. 흔히 노인 한 분 한 분은 '마을의 도서관'이라며 치켜세우는 말의 성찬이 유행입니다. 근데 딱 거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노인 분들에게서 무엇을 들을 수 있을까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제가 노인복지관에 있으면서 가장 많이 받은 선물이 있습니다. 각종 다양한 풀(^^)과 과일, 야채입니다. 농촌을 끼고 있는 일터라 좀 더 그런 것 같습니다만 노인 분들은 아직 '정'이라는 정서를 잃어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텃밭에서 직접 기른 풀과 야채들, 심지어 논두렁, 밭두렁 지나시다가 직접 뜯은 머위와 미나리들까지 말입니다. 검은 비닐봉지를 아무렇지 않게 내미는 손길에는 정이 묻어있습니다.
 
▲ 검은 봉지엔 정이 담겼다 검은 봉지엔 정이 담겼다. 푸른 빛깔 정의 마음.
ⓒ 조영재
그렇게 건네시는 정은 장마 같이 지루하고 힘든 일상에 잠시 비치는 햇살과 무지개 같습니다. 정은 공동체에서 형성되는 대표적인 정서입니다. 아직도 정을 수시로 나누시는 우리 노인 분들은 물러날 세대가 아니라, 어쩌면 대한민국의 '오래된 미래'일지도 모릅니다. 삭막한 자본적 경쟁과 진영대결의 논리만 판을 치는 세상에서는 어느 누구도 행복하기 힘들 겁니다. 심지어 대기업 총수나 대통령까지도요.

우리 노인 분들은 아직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검은 비닐봉지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으시죠. 지금처럼 펑펑 쓰고 버려도 되는 세상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요? 아마 지금 세대는 평생 이렇게 살아도 별 탈이 없었으니 영원히 이럴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추호의 의심도 없이 말이죠.

그래서 절약의 습관이 요즘 젊은이들에겐 '궁상맞음'으로 폄하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할머니들의 절약의 지혜를 소환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올 거라고 확신합니다.

삶을 관조하는 이야기들을 이 분들께 수시로 듣습니다. 젊은이들에게선 있을 수 없는 말들이죠. 열차가 마지막 역에 가까워질수록 쉼 없이 뿜었던 증기는 잦아들고 속도는 줄어듭니다. 인생의 종착지에 다가갈수록 뜨겁던 욕망도 식고 속도도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남아 있는 하나의 열망이라면 치매에 걸리지 않고 자식들 덜 고생시키는 것 정도랄까요.

저는 노인 분들과 지내면서 제 삶의 속도를 조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화장실에서 볼 일을 마치고 우연히 할아버지 한 분과 동선이 겹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강제적으로 쉼을 누립니다. 발걸음이 느려 저도 덩달아 큰 숨 쉬며 발걸음을 늦춥니다.
 
▲ 할아버지의 속도에 나도 맞춘다 살아보니 좀 느려도 되는 거였네. 할아버지의 속도에 나도 맞춘다.
ⓒ 조영재
살아가는 속도의 빠르기는 누가 결정하는 걸까요? 빠르다 늦다는 누가 판단할까요? 본디 빠르다 늦다는 없습니다. 그 속도는 한 사회의 구조가 결정합니다. 종종 한국인이 외국 관공서를 경험하고 느려빠진 일처리 속도를 비판하곤 합니다. 근데 그 나라 국민들에겐 당연한 속도입니다.

우리가 너무 빠릅니다. 도로의 차량 속도에도 그대로 반영됩니다. 우리는 수년째 교통사고 사망률 1위의 나라입니다. 다른 나라가 느린 게 아니라 우리가 비정상으로 빠른 겁니다. 한때 느림의 미학이니 뭐니 하면서 '슬로우 라이프'에 대한 찬양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노인 분들께 공짜로 '슬로우 라이프'를 배우고 있습니다.

한때는 늘씬하고 고와서, 몰래 흘기는 총각들의 눈빛을 무시로 느꼈을 할머니들. 또한 너른 어깨와 가슴으로 뭇 처녀들의 애간장 꽤나 태웠을 할아버지들. 하지만 지금 이곳 노인복지관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그 시절 영광을 떠올리긴 쉽진 않습니다.

패인 주름, 점점이 박힌 검버섯, 벗겨진 머리, 출렁이는 배와 엉덩이... 그저 인생무상일까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그걸 넘어서는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청춘의 때엔 마치 현재의 젊음과 아름다움이 영원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힘과 속도가 최상의 가치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압니다. '화무십일홍', 열흘 가는 꽃 없듯이 "청춘의 꽃도 잠시다." "화려하다 너무 자랑할 것도, 빈약하다 너무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이지요. 인생은 내가 할 수 있는 일보다 그저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할 일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는 운명과 우연 같은 것들이 인생을 지배하고 있으니 모든 존재 앞에 겸손해야 함을 깨우쳐 주고 계십니다.

할머니는 왜 살아남았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여주시는 '오래된 미래'의 모습은 현재, 구전으로만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부 구술 작가들에 의해 책으로 남겨지고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긴 합니다. 노년기 인생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대부분의 생물종은 번식기가 끝나면 수명도 끝난다지요. 단 인간종만 예외라고 합니다.

여성이 완경 후에도 오랫동안 수명이 연장된 진화적 이유를 설명하는 대표적 가설이 할머니 가설입니다. 할머니로 살아가며 돌봄과 지혜 전수의 역할로 손자녀의 생존에 엄청난 도움을 주었다는 겁니다. 이제 경제 논리의 색안경을 좀 벗어도 되지 않을까요? 인생은 다양한 색깔을 발산하는 신비입니다. 선진국 대한민국, 이 만하면 이제 다른 색깔의 안경을 써 봐도 되지 않을까요? 아마 노년기가 좀 다르게 보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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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5월 부산환경운동연합 웹진에 게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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