띄어쓰기 복잡하죠? 국어 선생인 저도 그렇습니다만

이준만 2023. 4. 14.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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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사의 자격을 부여할 수 있는 말들은 띄어 쓴다, 조사는 붙여 쓰고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준만 기자]

국어 선생인지라 동료 선생님들한테 한글맞춤법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는다. 동료 선생님들의 맞춤법에 관한 질문이 엄청나게 까다롭지는 않아서 웬만한 건 그리 어렵지 않게 척척 대답할 수 있어 체면치레를 한다. 그런데 띄어쓰기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곧바로 대답할 수 없는 경우가 가끔 있다. 다음과 문장을 가지고 이야기해 보자.

'우리말 맞춤법에 맞게 띄어 쓰는 건 쉽지 않다. 우리말 띄어쓰기 규정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위 문장에서 '띄어 쓰는'은 띄어 쓰고, '띄어쓰기'는 붙여 써야, 한글맞춤법 규정에 들어맞는다. 뭐,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데, 이렇게 써야 한다. 왜 그럴까?

한글맞춤법 제1장 총칙 제2항에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해 놓았다. 이 규정이 우리말 띄어쓰기의 대전제이다. 그러니까 우리말 띄어쓰기는 단어 단위로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단어와 단어는 띄어 쓰고, 단어가 아닌 것은 붙여 쓰라는 말인 것이다.

문제는, 우리말에서 '단어'가 무엇인지가 뚜렷이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학자들마다 견해가 조금씩 다른 듯하다. 일단 표준국어대사전에 기대 보자.

단어(單語) 「명사」 『언어』 분리하여 자립적으로 쓸 수 있는 말이나 이에 준하는 말. 또는 그 말의 뒤에 붙어서 문법적 기능을 나타내는 말. "철수가 영희의 일기를 읽은 것 같다."에서 자립적으로 쓸 수 있는 '철수', '영희', '일기', '읽은', '같다'와 조사 '가', '의', '를', 의존 명사 '것' 따위이다.

단어가 무엇인지 감이 좀 잡히시는가? 그런데 조사도 단어라고 했다. 그렇다면 조사도 띄어 써야 하나? 당연히 그렇지 않다.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고 했다. 원칙이 있으면 예외도 있다. 한글맞춤법 제5장 제41항에 '조사는 그 앞말에 붙여 쓴다'고 규정해 놓았으니, 조사는 반드시 그 앞말에 붙여 써야 한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를 일단 정리해 보면, '단어 단위로 띄어 쓰되, 조사는 그 앞말에 붙여 쓴다'가 된다. 사실 조사가 단어라고 인식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테니, 그냥 '단어 단위로 띄어 쓴다'고 생각해도 되겠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더 편할 듯하다.

여전히 단어가 무엇인지 헷갈릴 수 있다. 그러면 단어를 '품사'라는 말로 바꾸어 생각해 보자. 중고등학교 다닐 때 우리말의 품사에 대해 배웠으리라. 기억을 떠올려 보자.

'명사, 대명사, 수사, 동사, 형용사, 관형사, 부사, 감탄사, 조사'

이처럼 우리말에는 총 9개의 품사가 있다. '사과', '하늘'은 명사, '나', '너'는 대명사, '하나', '둘'은 수사, '먹다', '뛰다'는 동사, '바쁘다', '좋다'는 형용사, '온갖', '모든'은 관형사, '매우', '아주'는 부사, '앗', '어머나'는 감탄사, '은', '는', '이', '가'는 조사다. 품사의 자격을 부여할 수 있는 말이라고 판단되면, 그 말들 띄어 쓰면 된다. 물론 조사는 붙여 써야 하고. 그래서 다음과 같이 써야 한다.

나는 온갖 종류의 사과를 아주 잘 먹는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아! 오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우 바쁘게 지냈다.

이게 다냐고? 아니다. 좀 더 가야 한다. 자, 다음과 같은 낱말들에 품사의 자격을 주어야 할지 생각해 보시라.

'것, 데, 만, 바, 번, 뻔, 뿐, 수, 적, 줄, 지, 채, 체, 터, 대로, 만큼'

위 단어들의 품사는 명사이다. 그런데 문장 내에서 홀로는 쓰일 수 없고 다른 단어에 기대어 쓰인다. 그래서 의존 명사라고 한다. 어쨌든 명사다. 그러므로 다른 단어와 띄어 써야 한다. 물론 이들 중, 똑같은 모습으로 어미나 보조사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앞말에 붙여 써야 하는데, 일단 그런 경우는 나중에 생각하자. 너무 복잡해지니까. 몇 가지 문장을 예로 들어 보자.

거기에는 먹을 것이 철철 넘쳐흘렀다.
그는 슬픈 표정으로 먼 데를 바라본다.
네가 어찌 그럴 수 있냐?
집 떠난 지 벌써 3년이 되었다.
철수는 앉은 채 꾸벅꾸벅 졸았다.

조금만 더 가 보자. 다음과 같은 단어들은 띄어 써야 할지, 붙여 써야 할지 생각해 보자.

'지난주, 이번주, 보잘것없다, 알은체하다, 한번, 밖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용례를 가져와 보자.

지난주와 이번 주에는 수입이 시원치가 않았었다.
보잘것없지만 제 성의로 알고 받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무도 나에게 알은체하는 사람이 없었다.
제가 일단 한번 해 보겠습니다. 
딱 한 번만 제 부탁을 들어주세요.
나는 그 카페가 너무 좋아서 또 갈 수밖에 없었다. 
대문 밖에 웬 이상한 사람이 서성이고 있었다.

'지난주'는 하나의 단어로 굳어져서 붙여 쓴 반면, '이번 주'는 아직 하나의 단어로 인정받지 못해서 띄어 쓴 것이다. 마찬가지로 '보자고 할 것이 없다'에서 온 '보잘것없다'도 하나의 단어로 인정받아 표준국어대사전의 표제어로 올랐기에 붙여 쓴다.

또 '사람을 보고 인사하는 표정을 짓다'라는 뜻을 지닌 '알은체하다'도 하나의 단어이다. 당연히 붙여 써야 한다. '지식을 뽐내는 듯한 태도가 있다'라는 의미를 전달하려면 '아는 체하다'처럼 띄어 써야 한다.

'한번'이 '어떤 일을 시험 삼아 시도함'을 의미하면 한 단어이므로 붙여 쓰고, 횟수를 의미하면 '한 번'처럼 띄어 쓴다. '밖에'도 경우가 비슷하다. '밖에'가 '그것 이외에는', '피할 수 없는'의 뜻을 가지면 보조사다. 앞말에 붙여 쓴다. 그런데 '밖에'가 '어떤 공간의 외부에'라는 뜻을 가지면 '밖'이라는 명사에 '에'라는 조사가 붙은 말이므로 앞말과 띄어 써야 한다.

이만하면 어지간히 됐냐고? 어지간히는 됐다. 물론 좀 더 가긴 가야 한다. 이것도 복잡한데, 어떡하냐고? 원래 우리말 띄어쓰기가 그리 만만하지 않다. 국어 선생인 나도 그렇다.

자, 총정리 해 보자. 이렇게 기억하면 좋을 듯하다. 품사의 자격을 부여할 수 있는 말들은 띄어 쓴다. 조사는 붙여 쓰고. 하나만 더. 띄어 써야 할지 붙여 써야 할지 헷갈리면 사전을 찾아보자. 사전에 표제어로 올라 있으면, 하나의 단어로 인정받은 것이다. 붙여 쓰자.

블로그, 유튜브, 페이스북 등 각종 SNS를 통해 글을 쓸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럴 때마다 맞춤법, 특히 띄어쓰기가 고민인 사람들이 많을 듯하다.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 띄어쓰기 좀 틀리면 어떠랴.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 주고 촉촉하게 적셔 주는 글이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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