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영화를 사랑한 소년의 성장기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1988년에 연출한 영화 ‘시네마천국’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바이블과도 같은 작품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한 남자가 감독이 되기까지 일대기를 그린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큰 감동과 울림을, 영화 마니아에게는 영화를 더욱 사랑할 수 있는 계기 또한 마련해줬다. 최근 유명 감독들이 영화에 대한 애정을 담아 ‘제2의 시네마천국’을 만들고 있다. 영화의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파벨만스’를 통해 영화광이었던 소년이 감독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줬고, 데미안 셔젤 감독의 ‘바빌론’은 1920년대를 배경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욕망과 사랑을 그렸다. 12일 개봉한 인도의 판 나린 감독의 ‘라스트 필름 쇼’ 또한 인도판 시네마천국을 보여주고 있다.
인도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소년 사메이(바빈 라바리 분)는 우연히 영화를 보게 되고 영화와 열정적인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아빠(디펜 라발 분)가 운영하는 기찻길 옆 작은 찻집에서 일을 돕고 있는 사메이는 돈을 훔쳐 영화를 보는가 하면 영화를 보기 위해 학교를 빼먹기 일쑤다. 어느 날, 학교를 빼먹고 영화를 보러 간 사메이는 극장의 영사 기사 파잘(바베시 쉬리말리 분)을 만나 그와 은밀한 거래를 한다. 엄마(리차 미나 분)가 싸준 도시락을 파잘에게 주는 대신 공짜 영화를 보는 것이다. 그들의 거래는 우정으로 발전하면서 사메이는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게 된다.
영화가 꿈과 희망을 키우게 하는 매체라는 것을 강조한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극장에 가는 것도 힘들지만 어린 시절 사메이는 영화를 보면서 감독의 대한 꿈을 키운다. 사메이의 꿈을 아빠는 반대하지만, 실의에 빠진 그를 보고 결국 영화공부를 할 수 있도록 아들을 도시로 보낸다. ‘라스트 필름 쇼’는 영화를 보며 꿈과 희망을 키웠던 가난했던 우리네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며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인도의 가난한 9살 소년을 통해 영화가 꿈과 희망의 존재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도 보여준다. 브라만 출신이지만 차를 팔며 근근히 생계를 유지하는 사메이의 아버지는 전기로 움직이는 기차가 들어오면 더 이상 노점을 운영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는다. 디지털 영사로 대체되면서 영사기사였던 파잘은 일자리를 잃게 되고, 적자를 면치 못하는 영화관은 문을 닫으면서 쌓여있던 필름들은 폐기처분 당한다. 그리고 필름이 버려지는 곳을 따라간 사메이는 필름통을 녹여 숟가락을 만드는 과정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는다. 영화 ‘시네마천국’이 텔레비전이 등장하기 전의 향수를 담아냈다면, 영화 ‘라스트 필름 쇼’는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겪게 되는 극장의 안타까운 변화를 애정 어리고 따뜻한 시선으로 조명한다. 영화는 신구 문화의 혼재와 대립 속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를 빠르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다.
영화에 대한 애정과 본질을 놓치지 않는다. 판 나린 감독은 최초의 영화부터 스탠리 큐브릭, 데이비드 린, 타르코프스키 감독까지 수많은 고전 영화들을 오마주하면서 영화에 대한 애정을 보여준다. 또한 사메이는 극장에서 스크린으로 향한 한줄기 빛을 보고 영화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영화의 본질은 빛의 예술이다. 빛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이야기는 영화를 만들기 때문이다.
디지털 혁명으로 아날로그 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있다. IT산업과 AI의 발전으로 우리 생활은 물론 모든 산업환경을 급변하고 있다. 영화산업 또한 OTT로 인해 극장의 위기가 예고되면서 변화의 물결 속에 들어가 있다. 영화 ‘라스트 필름 쇼’는 아날로그 시대, 영화를 사랑한 한 소년의 성장기를 통해 아직도 영화가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중요한 매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양경미 / 전)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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