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고 대만 한 바퀴... 잠은 텐트에서 잡니다

최늘샘 2023. 4. 14.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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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방랑기 43] 내가 다시 여행길에 나선 이유

2018년부터 2020년까지 42회 연재한 세계방랑기의 연재를 다시 이어갑니다. <기자말>

[최늘샘 기자]

[이전 기사] 하루 22600원, 535일간의 세계일주가 끝났습니다 https://omn.kr/1my76 

3년만에 마스크를 벗었다. 조심스레 다시 여행을 시작한다. 2018년 페루에서 만난 동갑내기 여행자는 7년째 자전거로 세계를 일주하는 중이었다. 

"언젠가 자전거를 타고 여행해 봐. 너도 좋아할 거야. 꼭 추천하고 싶어!"

외국에서 자전거를 구하기는 어렵고, 무엇보다 나는 그럴만한 체력이 없다며 웃어넘긴지 5년이 지났다. 나이를 먹었고 육체는 점점 늙고 낡아간다.

평생 58개국을 여행하며 자주 걸어다녔지만 장거리 이동은 주로 로컬버스를 이용했다. 여행 중에 힘이 들 때면 자전거 여행자들을 떠올렸다. 탄소 에너지와 비용을 들이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의 힘만으로 페달을 저어 세계를 누비는 사람들. 같은 곳을 여행해도 그들은 자전거의 속도로 더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지 않을까.

끝났다고 생각했던 세계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돌아와 3년 동안 한국에서 일상을 사는 동안 여행에 대한 바람이랄까 향수는 어느덧 다시 자라났다. 아직 가본 적 없는 낯선 나라,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고 비교적 안전하고 물가가 비싸지 않은 나라, 90일 무비자로 여행할 수 있는 나라. 내 59번째 나라는 가까운 섬나라 대만이다.

반복되던 일상과 관계, 그 속에서 살아온 나에게 잠시 안녕을 고한다.
 
 대만 자전거 여행의 시작. 둘째 날 아침, 공항에서 27킬로미터 남쪽 시골길에서 맞이하는 태양
ⓒ 최늘샘
섬나라 대만 환도 1300킬로미터

2023년 4월 9일 일요일. 오전 11시 김해를 출발한 비행기는 오후 12시 반 타이베이 타오위안 공항에 도착했다. 13킬로그램 접이식 자전거도 다행히 파손되지 않고 실려왔다. 하마 부서질세라 고이고이 포장한 완충용 페트병과 포장재를 뜯어내고 자전거를 펼쳤다. 

"니 하오. 칭 웬. 짜이 날리, 아웃 에어포트?(안녕하세요. 실례합니다. 공항 바깥으로 가는 길이 어디인가요?)"

띄엄띄엄 몇 마디 실용 중국어를 기억해냈다. 물어물어 공항을 빠져나왔다. 대만에서는 섬 일주를 '환도(環島)'라고 부른다. 자전거로 대만 환도에 성공한 여행 선배들의 정보를 보니 대만의 둘레, 일주 거리는 약 1300킬로미터. 둘레만 1300이니 중간 중간 내륙을 여행하거나 길을 잃고 헤맨다면 거리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웬만한 자전거 라이더들은 하루 약 100킬로미터씩 2주 정도 일정으로 대만 일주를 해냈다. 나는 자전거 여행이 처음이고 발걸음이 느린 편이니 보통의 2배, 한 달쯤 걸리지 않을까. 여행 중에는 어떤 일을 겪을지 모르니 돌아오는 날짜는 미리 정하지 않았다.

대만이 한국보다 물가가 싸다지만 숙소를 검색해보니 정보가 적은 건지 가격이 비싸다. 여비를 아끼기 위해 1.5킬로그램 텐트에 쌓인 먼지를 털었다. 침낭, 빨고 말려 입을 옷 두 벌, 자전거 수리 도구, 스마트폰과 카메라 충전기 따위를 챙기니 40리터 가방이 금방 차고 넘친다.

고마운 벗들이 고이 쥐어 준 대만돈 3000위안(약 13만 원)이 있어 환전은 하지 않았고, 전기를 매일 쓰기는 쉽지 않을테니 대만 유심 데이터도 사지 않았다. 미리 폰에 저장해 온 지도를 켜고 남쪽 방향 지명을 확인한다. 해가 서쪽으로 기우니 저쪽이 남쪽. 

대만의 도로에는 오토바이, 자전거 전용 차선이 있다. 신호 체계와 거리 분위기에 적응하며 페달을 젓기 시작한다.

일상과 여행의 변증법 

오후 4시 30분, 네 시간쯤 달리니 온몸이 땀에 젖고 허기진다. 한적한 해안도로에서 벗어나 번화가의 편의점을 찾아 첫 끼니를 먹는다. 덮밥과 과일음료. 편의점을 나와 모퉁이를 도니 식당들이 눈에 띈다. 되도록이면 일회용품을 쓰지 않고 신선한 식당에서 끼니를 챙겨야겠다.

바다로 노을이 지고 잘 곳을 찾을 시간. 가도 가도 마땅한 야영지는 보이지 않고, 엉덩이와 무릎은 아프고. 시골집 앞을 서성이는 청년에게 무작정 도움을 구해 본다.

"칭 웬. 워 스 한궈런, 지싱처, 루싱쩌. (실례합니다. 저는 한국인, 자전거, 여행자입니다. 저기 한적한 길가에 텐트를 쳐도 안전한가요? 그리고 제 물병에 물 좀 채워주세요.) 씨에씨에."

옌친이라는 이름의 청년은 위험하지는 않다고 나를 안심시키며 물병을 채워주었다. 텐트를 치고 지친 몸을 누인다. 저녁 8시. 개 짖는 소리, 개구리 울음 소리, 비행기 소리가 귓 속을 때린다. 다섯 시간쯤 달린 거리를 검색해 보니 27킬로미터. 이 속도라면 48일이 넘게 걸리겠는데. 내일부턴 속도를 조금 내 봐야지.
 
 헝젠토우(Hengzhentou) 시골길에서 나를 도와 준 고마운 청년 옌친
ⓒ 최늘샘
무서워서 잠이 오지 않는다. 편안한 집을 떠나 나는 왜 다시 길을 나섰는지. 후회가 밀려온다. 위험, 불확실, 어려움, 배고픔을 감수하고 내가 구하고 얻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익숙해진 모든 것들은 영원하지 않고 나는 두려움 많고 미약한 존재이며, 매순간 죽어가고 있다는 것. 지금 이 순간 무사히 살아 숨쉬고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기 위해서. 일상의 불만족과 답답함을 벗어나 새로운 공기를 마시며 앞으로의 삶을 다시금 모색하기 위해서.

여행자의 몸 만들기

텐트를 접고 다시 자전거를 달린다. 아침 8시, 첫 식당을 찾아 뜨거운 국수 한 그릇. 오후 1시, 주난(Zhunan) 시내에서 또 다른 국수 한 그릇. 엉덩이가 아파 와서 앞으로 뒤로, 왼쪽 오른쪽으로 고쳐 앉으며 페달을 밟는다. 

오후 4시, 어제는 실패한 편의점 와이파이 연결에 성공. 가족과 친구들에게 생존을 알린다. 오후 6시, 바이샤툰(Baishatun) 마을 사원 인근 폐가에 텐트를 쳤다. 절의 관리인에게 부탁하여 스마트폰과 카메라 충전에 성공했다. 하나씩 하나씩 대만 여행에 적응하는 중.
 
 대만의 도로에는 오토바이 자전거 전용 차선이 있다
ⓒ 최늘샘
셋째 날에 해야할 일들. 마을에 하루 머물며 무리한 엉덩이와 무릎 쉬어 주기. 속옷, 양말 빨래해서 말리기. 잘 챙겨 먹고 소화 잘 시키기. 여행기를 쓰고 사진과 영상을 정리하기. 첫째날보다는 덜 낯설고 덜 무섭고, 사람들과도 좀 더 대화와 미소를 나누어서 위안을 얻은, 대만에서의 둘째날 밤이 깊어간다.
 
 대만 서해안에 이어지는 풍력발전기와 고속도로
ⓒ 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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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연재한 아메리카, 아라비아, 아프리카 여행기는 책 <지구별 방랑자>(2022, 인간사랑)로 출판되었습니다. 70여 군데 출판사를 돌고 돌아 마침내 출판된 책을 많은 분들이 읽고 공감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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